메뉴 건너뛰기

글 창고

상식 이전에 보이는 것

“제가 어렸을 때 촌에서 자랐는데요. 집에서 기르던 송아지 한 마리만 팔아도 그 어미 소가 밤새 울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시끄럽다고 불평하지 않고 다들 소가 울음을 멈출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런 것처럼) 유족들에게 ‘이제 그만 좀 하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슬픔의 기한은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유족)의 눈물이 멈출 때까지입니다.”

 

 

인간의 연민과 도리를 피력한 김기덕 영화감독의 글이 SNS에서 널리 회자되고 있다. 한낮 미물에 불과한 가축에 대한 인간의 정서가 그러할진대, 인간 우월의 진화가 끊임없이 이어졌던 인류사에 전례 없는 안타까운 반목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이제 명분이며 가치, 체면이나 도리에 아랑곳 하지 않는 억지와 힘의 논리가 한국 현대사를 멍들게 하고 있다.

 

 

김감독은 또한 영화 ‘일대일’로 ‘제11회 베니스 데이즈’에 참석 중에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The truth shall not sink with SEWOL)는 스티커를 가슴에 붙이고 약 30여 개의 해외 언론에 세월호 사건을 은유적으로 알렸다. 왜 이렇게 집안의 아픔이 대외적 시선을 쫒아 하소연을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을까? 정녕 막히지 않은 곳이 없으니 순리대로 흘러야 할 민의나 진실의 목소리는 ‘쥐구멍에 드는 햇볕조각’이라도 찾아 헤매는 것은 아닐까? 작금 자녀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인 의려지정(倚閭之情)까지 몰수해버린 전제국가 시스템이 아니고서야 상상하기 힘든 일이 목도되고 있음이다.

 

 

 

유민 아빠 김영호씨의 단식이 줬던 의미는 인간의 생리 생체 실험적 논의 대상이 아니다. 또한 자격을 호도하고 전력을 왜곡하면서까지, 그 모순의 메시지를 언론이 앞 다투어 중계하는 모습 또한 비정상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인데, 우리는 그 통제의 룰도 잊은 지 오래다.

 

새끼 새들이 어미 곁을 떠나 울부짖는 이별의 아픔을 사조지별(四鳥之別)이라 하였다. 이런 애통함에 자유로울 수 있는 자 아무도 없을진대, 슬픔의 저변에 침잠한 가족사를 매도한 잔혹한 집단테러는 우리가 어찌 우월한 동물로서 사유와 행동을 겸하는 영장(primates)의 우두머리라고 칭함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아울러 낳은 아비로서의 못다 한 도리에 대한 여한과 한탄이 없고서야 가능했을 단식 이었겠으며, 죽음을 불사한 용기는 그러한 애틋한 가족에 대해 스스로 감내해야 할 짐이었음을 왜 모르는가. 아무도 엄두내지 못할 저항의 방식이 곧 자신의 속죄로부터 시작된 순전한 ‘혈육의 역할’이었음을 그들은 왜 자신의 양심 속에 접수하지 않으려는 것일까.

 

 

그러한 인간사 섭리에 대한 근본적 부정을 앞세운 정치논리가 비단 정치인들에게 그치지 않고 사회적 카르텔로서 불특정 그룹으로 조직 세력화를 시켜, 마치 이념의 대립양상으로 가십화하려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경시풍조까지 만연하고 있다. 이러한 비정함으로 정쟁이나 권력의 유지 내지는 보전을 위하여, 어떠한 명분이라도 ‘먼저 쓰고 보면 장땡’이라는 저급한 승부논리로 부화뇌동함은, 이 세상 어떠한 규범과 양식도 거부한다는 방종에 다름 아니다.

 

 

궤변의 논조와 격식은 점점 진화해 나가기 마련이고, 그렇게 말꼬리 이어잡기 하듯이 모든 것이 ‘네 탓’이 되는 복잡한 방정식으로 내몰아, 본말이 전도되는 형국을 전개하는 것 또한 그들의 전략적 수순이 된지 오래다. 어떻게 풀어가야 가장 명징한 도리와 섭리인가는 애당초 관심도 없었을 뿐, 오로지 흐르는 것이 세월이고 또 ‘세월이 약’이라는 복합변수로 점점 함몰시켜 진실의 전도, 호도, 퇴색, 역전의 승부수만 생생히 이 시간에 첨가시키려는 도덕률로 치장하고 있다. 오호라, 이것은 정녕 세대를 이어 갈 후세들에게 진실의 지엄도, 어른의 체면도 부질없는 기성의 박제에 불과하다는 허망함만을 전해 주고 있음이다.

 

나뭇잎 하나가 떨어짐을 보고 가을이 옴을 안다는 뜻으로, 한 가지 일을 보고 장차 오게 될 일을 미리 짐작한다는 일엽지추(一葉知秋)의 전조(前兆)는, 앞으로 우리시대의 어떠한 정의와 진실도 바른 자리를 차지 못할 것이라는 탄식과 함께 가을비는 구슬피 울며 내리고 있다.

 

박 병 도 (전주대학교 입학처장, 연출가)

 

[전라일보 칼럼]2014-09-11

 

전라컬럼-2014-0911.jpg


제목 날짜
구미속초(狗尾續貂)의 눈가림 2015.02.20
문화정책 일고(一考) 2015.02.20
입학사정관제도 小考 2015.02.20
상식 이전에 보이는 것 2015.02.20
열어야 소통이다 2015.02.20
심허(心許)와 어목혼주(魚目混珠) 2015.02.20
표류하는 세월 2015.02.20
‘국제공연축제’에 거는 기대 2015.02.20
논공행상(論功行賞) 불식 천명을 요구한다 2015.02.20
아닌 길을 왜 고집 하는가? 2015.02.16
근열원래(近悅遠來) 2015.02.16
비려비마(非驢非馬)의 정체성 2015.02.15
온고지신(溫故知新) 아닌가 2015.02.15
모두 잠들어 있는가? 2015.02.15
점이(漸移) 시대의 SNS 2015.02.15
몽환(夢幻)의 문화시대 2015.02.15
문화 완장(腕章)을 염려한다 2015.02.15
전라북도립국악원 발전방안을 대하며 2015.02.15
가도멸괵(假道滅虢)의 문화 자존(自尊) 2015.02.15
도이불언 하자성혜 (桃李不言 下自成蹊) 2015.02.15

주소 : 전주대학교 공연엔터테인먼트학과 예술관 308호
전화 : 063-220-2708 HP : 010-6777-6111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