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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속초(狗尾續貂)의 눈가림

미국 담배 제조회사와 식품의약국(FDA) 간에 ‘멘솔담배’를 둘러싼 진실공방이 이루어졌다. 담배의 멘솔(menthol)은 진통제와 같은 효과가 있기에 흡입시 통증을 완화함으로써 담배연기의 흡입량을 많게 한다는 FDA의 발표 때문이었다. 제조사는 식품의약국의 음모라고 반발하였고 FDA의 자문위원들을 법원에 고소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다.

 

 

두 제조사(로릴라드, 레니놀즈타바코)는 FDA의 자문위원회 멤버 중 ‘편견과 이해관계 갈등’ (conflicts of interest)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서 자문위원회를 걸고넘어진 것이다. ‘conflicts of interest’는 미국 의료분쟁에 주로 사용되는 용어라 한다. 일종의 제척사유를 밝히라는 것인데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이익이나 손해를 미리 고지하는 것임을 뜻한다.

 

 

‘자문(諮問)’이라 함은 어떤 일을 좀 더 효율적이고 바르게 처리하려고 그 방면의 전문가나,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기구에 의견을 묻는 일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문위원’은 더 말할 나위 없이 그 분야의 물음에 답해주고 의견을 제시해 주는 ‘제삼자’에 다름 아닐 것이고, 당자의 조직이나 집단에 ‘아주 객관적인’ 응답을 제공해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자문은 제반 경영 등에 대해 점검과 검토, 지적과 대책, 설계와 조언을 해주는 일이며, 경영자문은 매니지먼트 컬설턴트(management consultant)로, 사외자문은 아웃사이드 컨설턴트(outside consultant)로 불리고 있다. 통상적으로, 자문은 민감한 사안일수록 조직 외부로부터 얻어내야 한다는 ‘과전이하’(瓜田李下 : 오이 밭에서 미투리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밑에서 갓을 고쳐 쓰지 마라)의 상식을 따르고 있으나, 그도 저도 아닌 목적에 의해 ‘중이 제 머리를 깎는다.’고 바리캉을 들어버린 꼴의 공무 조직이 많아진 요즘이다.

 

 

‘중도 속환이도 아닌’ 명분 미달자가 ‘중 양식이 절 양식이다’는 식의 위험한 목적수반의 발상으로 자문위원회에 속해서는 아니 될 일이 ‘눈 감고 아웅’이라고 번연히 이루어지고 있으니 탈이다. 좀 더 명확히 설명하자면, 자문을 받아야 할 사람이 자문위원회의 멤버로 들어가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상황은 필시 그 자문위원회라는 것이, 조직이나 조직의 수장이 필요로 하는 어떤 비정상적인 사안의 처리를 놓고, 상시 ‘원하는 자문(답)’을 얻어 내려는 꼼수로 보여 질 수밖에 없다. 미투리도 갓도 보이지 않는 시절이라고 남의 밭이며 이웃 과수원을 용감하게 누비는 이 시대 산쵸(Sancho Panza)들의 재주라 아니할 수 없다.

 

 

기관장 자신을 포함함은 물론, 어쩌면 향후 거취의 자문을 받아야 할지 모르는 당자까지 포함한 내부인원이 30퍼센트나 자문위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현상은 어찌 설명되어야 할까? 그런 상황에서 외부 자문위원 70퍼센트는 내부의 당자 앞에서 자문사항에 대해 모진 답이나 의견을 소신껏 원활히 제공할 수 있을까? 자문이라는 명목으로 제반 경과조치를 필터링하고 있는 현장에서, 면(面)대 면(面)의 지적과 결정에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것은 관(官)의 대표 주종 난센스다.

 

 

향후 이를 감독해야 할 상급기관의 조처도 주목해야 할 사안이고, 뭐든지 얼크러 설크러 ‘좋은 게 좋은 세상’이라는 ‘관계의 카르텔’이 만연한 사회에서,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중국 ‘관시(關係)의 병폐’를 쉽게 들먹여서도 아니 될 일이겠다.

 

 

진정한 ‘관시’는 양적 네트워크보다는 정직한 일의 노하우를 나누는 관계라고 한다. 모든 것이 원칙없이 뒤섞여 있고, 적당한 명분만 들이대면 안 되는 일이 없는 ‘외면포장’에 능한 리더가 이끄는 조직은 미래가 없다. 사람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분위기를 만든 우둔함은 애시 당초 리더의 스타일이 던져 놓은 ‘자기 덫’이기에 누구를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다.

 

 

무사(無私)와 공정(公正)의 원칙을 세워 공무 조직이 주민의 칭송 받을 날을 기대한다면, 이제 관리자들의 단호한 읍참마속(泣斬馬謖)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어차피 조직이란 한 두 사람의 판단과 지시가 전체 구성원 삶의 질을 통째로 귀속시키는 불확실성의 얼개이기 때문이다. 구미속초(狗尾續貂)라 하여 담비의 꼬리가 모자라 개꼬리로 잇는다 한들, 지록위마(指鹿爲馬)의 허망은 결코 감춰지지 않을 것이다.

 

박 병 도 (전주대학교 교수, 연출가)

[전라일보 칼럼] 2015년 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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