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보는 정책의 주파수
최근 정부조직개편 과정에서 여야가 주파수 정책 기능을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 국무총리실로 분리하는 문제가 거론되며, 소위 ICT 산업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졌다. ICT는 정보(Information)와 통신 기술(Communication Technology)을 합한 말로 국가 전략 기반산업 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한국전자파학회, 한국통신학회, 정보통신정책학회 등 12개 정보통신기술(ICT) 관련 학회장들이 이의 분리 잠정합의안을 두고 공동 선언문을 발표하는 등 반발이 거세다.
즉 국민 소유의 주파수를 정치적 목적에 따라 방송용과 통신용으로 나누는 오류를 지적하며 중립적 시각으로 정책을 펼칠 것을 요구하였는데, 여야 합의안 대로 분리할 경우, TV 디지털 전황에 따라 기존 방송용 주파수 중 여유대역으로 남게 되는 700MHz 대역을 방송용으로 재배치 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세계 추세에 역행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기존 모든 극장시설 및 공연용으로 무수히 생산 배치된 무선마이크 시스템의 주파수대역이 이 700MHZ 대역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통신용으로 분류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러한 편리성의 구분이라면, 우리는 그간 뮤지컬을 감상하며 배우들의 ‘상호 통신’을 지켜봤던 재미있는 통신 감청자들인 셈이다.
그간 우리는 어려운 하드웨어적 여건에서 아끼고 모아서 수천만원대의 공연용 무선마이크 송수신 세트를 구입하여 각종 공연에 사용해 왔다. 한정된 주파수 안에서 그나마 등장인물이 많을 경우, 그 700메가헤르쯔 대역 안에서 주파수를 쪼개고 쪼개어, 여유없는 대역 내의 근접 전파간섭 속에서 어려운 창작행위를 이끌어 왔다.
한 두푼 하는 장비도 아니고, 하루 이틀 사용해 온 전례도 아니며, 유일하게 풀어 놓았고 허락해 주었던 민간공연의 주파수 대역. 이제 그 대역마저 방송용으로 넘긴다면 방송에 우선권을 빼앗긴 공연예술에 있어서 대형뮤지컬의 웅장한 사운드나 메머드 창극의 빼어난 예술성은 설 자리를 잃고 관객은 향유권을 잃어 버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어떠한 배려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를 묻고 싶다.
주파수 권역은 한정된 지역 내에서의 ‘땅따먹기’나 다름없다. 또 다른 송출 신호나 메커니즘이 개발되지 않는 한 이 문제는 풀리지 않는 전파전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가 극장에 앉아 ‘공간예술’의 조건인 인간(배우) 목소리 전달의 한계 선상에서 자족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시각적 자극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브라운관에서 PDP, LCD, LED, OLED 등으로 점점 세밀 ․ 명증해져 가는데, 청각도 라이브한 인간 육성만으로 이미 크래시컬한 서정 안에 만족할 수 없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는 얘기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보여주는 저 생생한 현장성은, 무대 위에 헬기가 뜨고 무대에 총탄 파편이 튀기며(미스 사이공), 지하 컴컴한 호수의 뱃전에 앉은 크리스틴의 절절한 노래(오페라의 유령)가 첨단의 음향시스템의 도움 없이는 그 환상의 일루젼을 제공할 수 없음을 모른단 말인가.
국제적 보편성에 의거하여 비교하지 않더라도 전례에 없는 이러한 정책발상은, 아마도 당파와 정권이 첨예하게 염두하지 않을 수 없는 ‘방송의 영향력’ 때문이 아닌가 싶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지역마다 신문발행사도 과부하로 넘쳐나고, ‘방송 채널’의 컨텐츠 건강성 여부를 차치하고라도 국민의 선택권을 윤택하게 한다는 미명으로 계속 늘려야 하는 이러한 수요 공급의 불균형을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가. 똑같은 한계 주파수 대역 내에서, 우리보다 열배 스무배 큰 땅덩어리를 커버하는 외국의 보편적 가치를 타산지석으로 들여다 봐야 할 일이기도 하다.
2001년 국민의 정부 시절, 정부는 문화기술 혹은 콘텐츠기술을 의미하는 CT를 국가 '6대 핵심기술'의 하나로 선정하였고, 참여정부에 들어서도, CT지원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분명했다. CT는 IT, BT, NT, ET, ST 등과 함께 6T라 불리고 있고, 이 용어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용어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만 사용되는 신조어일만큼 가히 우리의 디지털 콘텐츠 기반은 선도적이다.
이러한 시대에 자칫 편향된 개념으로 전기, 전자, 통신, 영상 등의 output에만 치우쳐, 이러한 콘텐츠의 원형적 소스인 ‘공연’이나 ‘인간예술’의 input을 간과한다면 새로운 산업의 엘도라도인 문화콘텐츠의 미래를 핑크빛이라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박 병 도 (전주대학교 공연엔터테인먼트학과 교수, 연출가)
[새전북신문 칼럼] 2013.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