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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방안의 코끼리

방안의 코끼리

 

얼마 전 집회에서 들은 말이 심중에 남게 되었다. 어지러운 가슴 밑바닥을 헤매고 다니던 그 구절은 다름 아닌 현실의 지옥은 깨어진 관계에서 사는 것이라는 평범한 일성이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관계란 참으로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던가? 돌연변이 강낭콩을 한 줌 손바닥에 얹어 놓고 차마 아까워서 그중 못생긴 것부터 골라 먹은 사람과, 제일 잘생긴 것부터 찾아 먹은 사람의 차이에서, 전자는 모두 못난 콩을 먹은 자가 되었으며 후자가 먹은 콩들은 전부 잘생기고 맛난 콩을 먹은 것이라는 결과는 무엇을 말함일까?

 

관계는 취한대로 자기 안에서 용해되는 것인지, 아니면 그 얄궂은 현실의 방정식은 상대적이어서 또 다른 함수를 적용해야 생존하는 것인지? 쌓기는 어려워도 허물기는 쉬운 것이 그것이어서 일생 풀어도 해답 없는 계산식이 아닐 수 없다.

 

술잔에 비친 활의 그림자를 뱀으로 보았다는 글로서, 의심이 많고 믿음에 인색한 사람을 두고 배궁사영(杯弓蛇影)’이라 하였다. 친구가 권하는 술잔에 드리워진 뱀 그림자를 보고 의심과 근심으로 앓아누웠다는 것인데, 이를 알고 다시 친구를 불러 벽에 걸린 활을 치우고서야 그 술잔의 진위를 일깨워주었다는 일화다. 가족이건 남이건, 위건 아래건 믿음과 신뢰 없이는 살 수 없는 인간사의 단면이다.

 

예로부터 막둥이는 귀여움을 먹고 자란다고 하였다. 아니 그것에 익숙해져 그 조청 같은 달콤함이 떨어지면 못 견디는 습성이 있다고 하였다. 그러다 보니 만사에 있어 추임새 같은 나섬으로 관심병을 앓는 부류가 일부중휴(一傅衆咻)’로 남아 있다. 글이 사, 스승이 말씀하시는데 대중이 끼어 지껄인다는 것이지만, 뜻이야 따지고 보면 옳은 말을 하는데 곁에 있는 자들이 다른 목적의 곁다리를 놓는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것도 아니면 말고라는 식으로 말이다.

 

얼마 전에 온라인 통해 본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 눈에 선하다. 달리기에서 항상 꼴찌로 달리는 비만 학생을 친구들이 다 함께 손을 잡고 들어오는 모습 말이다. 그것은 장경(壯景)이었다. 최근 불시에 테러를 당해 온 세계를 놀라게 한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전파하여 만인에 회자된 같이 갑시다.’가 이 장면을 두고 생성되었을 성싶다.

 

동행의 미학이야 교과서적으로 통용되는 상생의 도덕률이다. 그러나 정치를 보자면 여()나 야()나 모두 서로에게 발목 잡는 물귀신이라 호칭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나만 아니면 되고, 나만 살면 되며, 내가 집안을 살리고, 내가 이웃도 구제하며, 내가 나라를 구하고 인류를 구원한다는 주체가 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의 울치기심성은 끝없는 외세의 침탈 속에 숙성되어 온 네거티브 면역력이란 말인가.

 

한국 식민지화의 가장 큰 이유는 자기 가문에 대한 울치기 세도정치 때문이라고 한다. 독립운동이 좌절된 것도 출신성분, 가문, 학연, 지연으로 서로 주장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이며, 한국인은 결국 우리라는 용어로 공동체 의식을 고양해 왔건만 우리끼리의 우리는 먼저 남에 대한 을 치는 것으로 발전하여, 종국에는 우리’ ‘우리하고 몇 번 외치다가 최후에 남는 것은 하나에 집착하는 상태에 빠진다는 것이다.

 

세상사 관계에 따르는 배려는 최선(最善)이다. 그러나 배려란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는 잔소리꾼인 등에(gadfly)’로 에고(ego)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깨물어대야 터득이 가능한 덕목이다.

 

그런데 세상은 때로 그 관계를 이용하여 자기 실리를 채우는 사람들이 승기(勝氣)를 잡고 살아감도 아이러니다. 아주 명백한 문제지만 무시되거나 관계를 꺼려 언급을 자제하는 불편한 진실을 묵과하고 지나가는 상황, 그러나 제안자는 원하는 이득을 취하게끔 관계를 이용하고 있다는 그 방안의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로 우리는 오늘도 참으로 애매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제 진실한 관계(關係)를 위해 금이 간 관계, 퇴색된 관계, 굴절된 관계, 왜곡된 관계는 없는지 내 삶의 관계(關契 : 통행 표찰)를 살펴볼 나이가 아닌가 싶다.

 

박병도(전주대학교 교수, 연출가) 201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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