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글 창고

전북도립국악원이 지향했던 창극의 방향

[전북국악] 99년 봄호 특집 원고

전북도립국악원이 지향했던 창극의 방향

박 병 도  (연출가, 전 도립국악단 예술감독 겸 상임연출)

  • 창극은 우리민족의 독창적인 음악형태인 판소리(聲樂)와 민속악(器樂)등을 총체적인 무대공연예술로 승화시킨 극예술양식이다. 그러나 창극은 90여년의 짧지 않은 역사를 갖고 있지만 아직껏 독자적인 무대어법의 틀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음으로써 전통극의 정형화에 대한 논의를 지속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창극은 민족의 전통연행인 판소리를 모태로 하였지만 공연의 형식에 있어서는 서구식 극장 공간을 차용한 형태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행형식은 전통적인 연행요소가 현대적인 무대구조에 대입됨으로써 형식미에 관한 구조적 논의와 전형 구축을 위한 방법적 논의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이로 말미암은 창극의 공연형태는 현대 메커니즘에 용해된 상태의 '개량된 고전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고, 이렇게 발전해온 창극은 특별한 변형의 장치가 도입되지 않은 한, 앞으로도 서구식 극장주의 논법에 의해 그 전통의 맥락을 이어갈 것이다.

  • 각국의 전통무대가 고유의 독자적 무대를 구축하여 민족적 정체성(identity)을 유지시켜온 바에 견주자면, 우리의 전통무대는 그 태동으로부터 이미 다양한 고유의 틀거리를 외면 또는 사장시킨 채 기형적 성장을 거듭난 것이라 할 수 있다. 가령 가부키가 무대천정이 없고 무한한 수평적 구조로 전개되어 있음으로써 그것은 현세로 열려 천상과 천상의 존재 이원성을 거부한 반면, 서구의 무대가 수직선상에서 꽃을 피운 대조는 무대분할의 철학적 컨셉과 무관하지 않다. 즉, 서구의 수직은 감춰져 있는데, 이는 그로부터 모든 것(무대장치도, 사람도)이 나오고 들어갈 수 있음이다. 머리막(manteau d'Arlequin) 위에는 '숨은 신(Dieu cache)'의 세계가 열리는데, 이러한 기독교적인 유럽의 무대구성이 요구했던 바는 '천상으로의 이끔'을 말하는 것이리라. 연극의 장소는 비록 인간사나 신의 세계를 다룰지라도 궁극적으로는 영적 세계를 보고 읽을 수 있게 직접적으로 공간화한 점이다. 곧 창극무대가 도달해야 할 철학적 지향점(these ; concept)이 어떻게 지정되어야 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이다.

  • 따라서 창극이 버티고 일어서야 할 우리 식의 무대구조는 어떠한 것이어야 할 것인가? 수평인가 수직인가, 원형인가 사각인가, 단면인가 삼면인가 사면인가로부터 시작하여 '입체적 소리(唱)의 무대적 구성'에 족하는 것인가, 아니면 한(恨)이라는 오감의 통로를 붙잡고 관객과 밀교(密交)를 나누는 주입적 감상주의의 결정체인가 등등을 철저히 검증할 필요성을 갖는다.

  • 그러나 오늘날의 창극은 판소리의 연행적 요소가 서구식 무대로 옮겨졌음에도, 극장주의적 공연술에 따른 실용적 관점이 배제됨으로써, 전통이 재생산(현대에) 되어지는 제작현장의 실증적 요인들을 발전적으로 수용하지 못하였는데, 이는 창극이 대중화를 이룩하며 민족전통음악극의 경쟁력을 갖춘 대표적 장르로 발전하는데 부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바로 이러한 문제의 제기에서부터 전북도립국악원(이하 국악원)이 지향한 일련의 창극제작을 논의할 수 있겠다.

  • 창극은 오늘날 연극요소의 적극적 도입에도 불구하고 판소리와 국악의 권외에 있었으며 한편, 소리라는 음악적 요소의 강성(强性)으로 말미암아 연극에서도 역시 국외자의 존재로 부유하고 있는 게 저간의 실정이었다. 게다가 작금의 창극은 전통추수적(傳統追隨的)입장으로 발전방향을 설정함으로써 더더욱 대중의 외면을 부채질하고 있다. 이는 소수 감상층의 전유물로 그 연행범위를 축소시키는 현상이며, 다만 판소리연행의 대중적, 보편적 강점만을 무대화로 이끄는데 필요했던 초창기 공연술에 만족하는 전통안주의 현상이라고 지적할 수 있겠다. 따라서 창극이 고유의 명칭으로 확고하게 자리잡기 위해서는, 창극이 국악이나 연극의 변종(變種)이 아니라, 각각의 그 친연성으로부터 분리되어 창극으로서의 독자적인 차별화를 꾀하는 적극적이고 실천적인 무대어법이 계발되어야 할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 한편 창극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다시 말하면 창극이 고정불변의 실체로서 탈역사적인 장르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를 다른 각도에서 보면 전통의 개념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재고를 요청하는 논리라 할 수 있다. 보존의 의미가 아니라 현재의 문화창조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전래의 문화를 변형, 계발, 창조하는 행위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질 때 전통은 그 내재적인 참 의미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전통은 양호하게 박제(剝製)되고 보존된 유형적 사물의 전수행위로 규정할 성질은 아니다. 그것은 새롭게 창출하고 현재적인 의미와 가치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수용하는 무형의 정신이 곧 전통의 본질적 개념이라 할 수 있다.

  • 또한 한국 전통극의 독자적 영역을 확보해야 한다는 시대적 명제에 부응하여야 한다. 지역적으로 고유의 삶의 풍토성을 지닌 문화일지라도 그것이 탈지역화되어 인간의 보편적인 정신가치를 지향하는 것이며 보편적인 삶의 원리가 내재되어 있는 것이라면 세계화에 동참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창극이 민족전통극으로서 독자적인 장르로 확립되기 위해서는 어차피 주어진 판(무대)의 구조에 따라 현대의 극장주의적 무대원리에 입각한 정형화가 시급히 달성되어야 한다는데 초점이 맞추어졌다.

  • 첫째, 창극본에 관한 새로운 가능성의 문제로써, 초창기 창극의 특장인 '토막대목'의 확장적 응용에 대한 문제점과, 장면조합에 간섭하는 '소리와 극의 융섭문제'에 대한 극복이다. '토막대목'은 당시대엔 나름대로의 극적 재미 요소가 부각된 점이 있었으나 시대의 변천에 따라 관객의 감흥て감각에 비례적으로 부응하지 못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이는 판소리 판짜기 이중구조 가운데 성악적 재능의 발휘와 놀이적 흥미에 천착한 일면이, 판소리의 교훈적 관점에 입각하여 정선된 어법의 대입으로 극복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무적(歌舞的) 요소와 드라마적 요소의 필연적 조합상태를 이해하는 '소리와 극의 융섭(融涉)문제'(interact)는 음악극의 면모를 더욱 강화시켜줄 것이다.

  • 이에 따라 창극본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논점은, 선행된 공연텍스트들을 비교 분석하여 연극적 현전성(現前性)을 확보하는 창극의 '장면구성' 원리와, 개성적 인물 창출에 의한 '성격구축'의 문제를 구축하는 점이었다. 즉 서사적 얼개를 해체て조합하여 '물리적인 공간'을 '창조적인 공간'으로 전위시키고, '그려지는 구조'를 '보여지는 구조'로 재구성해야 하는 장면 구성의 문제가 선결과제였다. 그리고 진화의 꼬리처럼 그 활용값을 잃고 있는 도창의 기능을, 단순한 서사적 위치가 아니라 참여적 위치로 다루는 문제도 재고되었다.

  • 아울러 '사설에서의 감성의 저장과, 이면의 확장'은 판소리 사설의 가사전용(歌辭轉用)에 따른 감성과의 친화력(親和力), 그리고 정선된 사설이 극적 서정과 감흥을 축적시킴으로써 사설의 이면이 효율적으로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 창극본의 '인물성격 구현방식'에서는 개성적인 인물의 대립과 갈등의 구조를 통하여 극적 효과를 강조하고자 하였고, 또한 정체성 있는 인물들을 통해 역동적인 인물구도를 형성하고자 했다.

  • 둘째, 배우술의 문제로서, 단조로운 화법의 정형으로 굳어 있는 '아니리조 화술'을 다양한 '심리, 무대적 언어'로 변화시켜야 하는 당위와, '발림의 확장된 응용'이 다면적 연기술을 획득케 하는 문제, 그리고 창극의 제반 상황에 적용되는 '연기술의 형태' 등을 계발토록 하였다. 이를 적극 수용하는 창극의 연희술은 전통극의 신체언어를 다각적으로 확장시킬 수 있음을 알 수 있었고, 창극의 연기는 음악과 무용을 동반하는 가무적 연기술로써, 다양한 극적감흥에 구체적으로 대응해야하는 조건들을 대입하였다.

  • 셋째, 음악에 관한 문제로서, 악보 없이 즉흥적 선율로 연주되는 '수성반주'와 기존창극과의 불가분의 관계를 지적하고, 이에 따른 해결방안으로 음악극의 특징을 고양시킬 '관현악의 복합적인 가용범위와 효용성'을 여러 면으로 시도하였다. 단선율적인 수성반주의 몽환주법은 현대인의 다양한 극적감흥을 외면함으로써 전통음악극이 갖는 대외 경쟁의 기본값인 음악적 활용의 확장을 저해하는 요인인 바, 이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창극음악의 작, 편곡화를 도모하여 반주음악에 관현악을 포함하는 당위를 실천토록 하였다. 이는 음악극으로서 창극의 무한한 가능성을 확대시키기 위한 발전적 전환이기 때문이다.

  • 넷째, 극장주의 무대어법의 최종 발현장소인 무대에서의 제반 기술적 요소들인, '미술 디자인과 장치물의 구상'을 현대적 감각에 대입토록 노력하였으며, 그 실천적 운용방법에 따른 '관현악반주공연'의 다양한 기술적 방안을 모색하였다. 아울러 조명의 변환적 흐름이 극적 감흥에 깊게 연관되는 정황을 창극작품에 능동적으로 대입하였으며, 조명의 효과적인 운용을 위한 방편으로는 극적 감정에 의한 심리적 변환을 중요한 운용의 척도로 활용하였다.

  • 이와 같은 다양한 무대화의 요인들은, 창본의 사설이 극장이라는 공간이 요구하는 표현방식과 부합될 때 현대의 무대에서 필요충분조건으로 작용되는 것들이다. 작금의 창극이 이를 간과한 채 구습의 편리한 방편에 의존하는 형태로 안주한다면, 창극은 본시 극장주의의 형태를 빌어 표현의 틀을 갖출 것이 아니라, 어떤 색다른 표현양식을 찾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용기(用器)와 내용물에 관한 상호간섭작용을 유념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국악원의 창극은 공연장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할 때 창극의 현대화가 가능할 것이며, 이러한 극장주의 무대공간에 충실한 활용 여하에 따라 현대화의 척도가 직결된다는 점을 유념하였다. 이런 시각에서 창극은 현대화된 전통연희임이 분명한 터, '전통의 현대적 재해석'이라는 차원에서 창극제작과정의 폭넓은 시각 확보는 시대적 요청임을 간과해서는 아니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 1999. 2.

제목 날짜
예술인의 재주 2015.02.14
예술정책과 가치기준 2015.02.14
지역민으로 살다 보니 2015.02.14
제15회 전북연극제 심사총평 2015.02.14
이제 기업이 나서야 한다 2015.02.14
溫故知新을 위한 世紀末의 獨白 2015.02.14
제작시스템 가동을 기대하며 2015.02.14
월드컵과 문화축제 2015.02.14
향기와 소롯길에 대해 2015.02.14
제2회 전북청소년연극제 심사총평 2015.02.14
새로운 생명의 환영으로 태어난 심청 2015.02.14
적묵(寂默)의 감동으로 남는 무대 2015.02.14
제20회 전국연극제를 준비하며 2015.02.14
우리 소리가 중심이 되는 소리축제 2015.02.14
미소 짓던 피칠의 손 2015.02.14
자유롭다는 춘향이 2015.02.14
전주시립극단에 바란다 2015.02.14
전북도립국악원이 지향했던 창극의 방향 2015.02.14

주소 : 전주대학교 공연엔터테인먼트학과 예술관 308호
전화 : 063-220-2708 HP : 010-6777-6111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