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글 창고

미소 짓던 피칠의 손

   월간 [文學思想] - 2001년 1월호   신년 에세이

 

   미소 짓던 피칠의 손

                                                                                                     박 병 도

   십 수년 전에 초청한 바 있는 일본 [신주꾸 로잔바쿠](新宿 梁山泊) 극단의『千年의 孤獨』을 떠올리자면, 으레 이름 모를 어느 단역 여배우가 생각난다. 재일교포 2세인 김수진(金守珍)이 이끄는 주목받는 연극집단인 이 단체는, 이후 한국에『盲導犬』이랄지『人魚傳說』등의 작품으로 현대 일본 실험연극의 현주소를 면면히 보여 준 바 있다.

   낮 공연을 마치고 저녁 식사를 하러 모두 식당으로 떠난 빈 무대에, 한 여배우가 양손에 시뻘건 피칠을 하고선 연신 무대 위의 소품인 수도펌프 내부를 닦아 내고 있었다. 영문을 몰라 다가서 물었다.

   "아니, 저녁식사는 안하고 뭘하고 계십니까?"

   "네, 저는 지금 저녁공연을 위해 이 수도펌프를 고쳐야 합니다."

   "그럼, 식사는 언제하고요?"

   "식사따윈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이 펌프가 저녁공연에 제대로 작동하느냐가 문제지요."

   "그럼, 이 펌프를 왜 당신이 닦아 내야 하는 겁니까?"

   "네, 이 펌프의 관리는 제 소관이기 때문이지요."

   여배우는 환한 미소까지 지어 보이며 시종 자신의 일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아끼지 않았다. 극중 심리적 반전상황에서, 물통 안의 비닐봉지(적색의 수성안료 물감이 담겨진)를 터트려 무대의 펌프 물이 갑자기 빨간색으로 변하는 것인데, 문제는 계속되는 공연에 수성물감이 이날 동이 나서, 주변의 페인트 상점에 달려가서 급히 사온 물감이 그만 에나멜이라 펌프의 내부에 모두 응고되고 만 것이었다. 그 여배우는 한국 상점에 들러 연신 "레드 페인또, 아까 칼라 페인또"만 외쳐 댔으니, 상점 주인이야 그것이 유성인지 수성인지 분간할 리 없었고, 이미 떡칠이 되어 버린 무대의 펌프는 다음 공연을 위해 깨끗이 소제되어야 마땅한 공연물품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연신 붉은 손을 들여다보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으며 자신의 몫에 대해 '당연한 처사'를 인정하는 솔직한 고백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누구라 할 것 없이 식사를 권유하지 않은 비정에 연연해 하지 않은 당당한 자기고백이 대견스러웠다. 시종 못마땅한 노동에 입을 비죽거리며 초라한 자기모습에 동정을 던져대는 '자기실수의 불인정'이 탐지되지 않아 무섭기도 하였다.

   내가 무대의 소품 하나를 두고 이렇게 장황히 이야기를 개진하는 이유는 정작 다른데 있다. 하고많은 소품 중에 일명 '작두'라 불리어 지는 펌프 따위가 대수가 아닌 것이고, 그것을 걸레로 닦건 손으로 닦건 문제될 바 아니지만, 정작 그들 공연단체가 갖고 있는 하나의 철저한 '책임주의'와 '개인 희생정신'에 대한 일면이 새로웠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보인 부분은, 이국땅에 여장을 푼 공연단 모두가 한식솔이고도 남을 터인데 이 여배우에겐 밥 먹자는 말 한마디 없이 그네들끼리만 식당으로 향한 것이고, 그 여배우 역시 서운한 기색 하나 없이 마땅히 자기 몫이라 여기고 '밥 한끼'에 연연하지 않은 막노동을 어쩌면 즐기고(?) 있는 모습에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해외공연이라 많은 인력을 투입할 수 없는 실정에, 세트를 설치하는 순간부터 각자 맡은 바 분업이 철저히 이루어지는 모습에 '철저한 준비정신'을 일깨웠으며, 그러기에 주연부터 엑스트라까지 모두 소품이며, 분장, 의상까지 책임을 나눠 공연진행에 만전을 기하는 모습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얼마전 타지역 공연 준비상황에서 겪은 일이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셋업시간으로 말미암아 조명과 셋트부분에 수정할 것이 많았다. 개막시간까지는 얼마 남지 않아 기술진을 이끌고 수정작업에 임하다 보니 그만 식사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물론 나도 끼니를 잊고 만 것이니 누구누구 할 것 없이 모두 굶은 셈인데, 스텝진은 공연 내내 연신 불만어린 표정으로 애꿎은 기계에 화풀이를 해대고 있었다.

물론 거기에서 내가 뱉은 말은 여느때나 마찬가지로 "한끼 굶어서 죽지 않는다."였다. 그러나 통하는 곳이나 통하는 법. 그 스텝진들은 출연진에게도 서운한 말을 잊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잘나서 배 두드리며 공연하고, 어떤 사람은 못나서 쫄쫄 굶고서 공연을 해야 하나."라고 곱씹는 것이었는데, 한사람의 기분이 전체에 영향을 준 예라 하겠다.

   먹어야 산다. 혹자는 먹기 위해 살고, 다 먹기 위해 하는 짓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먹는 게 최상의 과제일 수는 없는 터, 낮 열 두시 땡 치면 사무실을 박차고 나서 신호에 민감한 뱃속을 채우러 혈안하는 모습에 일말의 연민을 느낀다. 피 마르는 예술창조의 현장에서 야속하게도 극장의 스텝들은 정해진 식사시간을 천명처럼 지켜가며 조정실 문을 잠근다. 주어진 절대시간에 의미를 갖는다면, 산다는 것과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는 모든 것이 그 절대시간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계획은 철저히, 실행은 단순히'라는 실행원리에 입각하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군더더기는 스스로 그 해결과정에 충실함으로서 또 다른 실패를 미연에 방지해야 할 것을 우리는 잊고 있다. 준비도 대비도 전혀 없이 시간만을 허비하다 정작 자신과의 싸움에서도 패배하고, 그것도 모자라 연출자와의 한판 승부에 목숨을 거는 미련한 영혼들이 아직도 많다. '연출자의 눈만 넘어 서면', 아니면 '연출자의 동의를 어떻게든 구해 내서' 자신를 속여 버린 또 다른 자신을 옹호하려 드는 옹색한 명분들을 더러 목격한다.

   나는 그 시뻘건 손을 보여줬던 그 나라에 한국 대표작이랍시고 공연을 들고 가서 무대에 올린 적이 있다. 그때, 연습 두달이 넘도록 겹치기 출연으로 정작 자신의 대사를 다 외우지 못했던 어느 중앙의 중견배우는, 도쿄의 극장에 도착하자마자 겁이 덜컥 났던 모양이다. 이제 막연함이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일까? 그는 갑자기 엉뚱한 꼬투리를 들고 나왔다.

   "저, 선생님. 분장실도 협소하고 식당도 멀고 뭐 이럽니까? 나, 공연 못하겠어요."

   그 불쌍한 변명은 이미 그 자신을 모두에게 노출시켜가며 그가 감춰 온 절대적 치부를 부끄러운 영혼의 고백으로 치장하고 있었음을 그 자신 알고나 있었을까? 그는 요즘도 대학로를 기웃거리는 중견배우로 우리 앞에 서고 있다.

   우리네 욕심은 원시적인 배고픔과 이상적인 추구 사이에서 늘 방황하기 마련이다. '젖기 전에는 이슬도 피한다'라는 일본의 이언처럼, 자신을 속이는 일에 상시 경계를 게을리 하면, '독을 마시면 그릇까지' 가는 자포자기의 실심(失心)을 은연중에 담게 될 것이다.

   주어진 역할이 무엇인가 분명히 깨닫는 삶에 결실도 새로울 것인 바, 승모(僧帽)만으로는 승려가 못되는 평범한 진리에 자신을 반추해 보는 이 세모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주어진 완장(腕章)에 왁스만을 갖다 대며 권위에 편승하는 못난 영혼을 얼마나 지루하게 보아 왔는가? 정치하는 자들이 그렇고, 행정 일선에 군림하는 자들이 그렇고, 눈감고 아웅하는 비리척결의 의지들이 그렇고 그러했다. 손에 피칠을 하듯 민정의 살림살이 보따리를 상채기로 풀어내며 고심하였던들 칼국수 점심식사가 대수로이 지면에 오를 가십도 아니었으며, 절대적 신념에 충실한 위정의 양식이 있었던들 양파 속 벗겨내듯 가도가도 끝이 없는 정쟁(政爭)의 지리멸렬도 남의 얘기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새천년을 맞은 지금, 허술히 한해를 보내고 만 허망함이 가져다 준 묵은 갈증은 어떠한 것들일까? 새해에는 어떠한 양식의 갑옷을 입고 이 풍진 세파에 비정한 도덕의 칼날을 맞이해야 할까? 나는 저 낡은 수도펌프에 응어리진 자신의 여한을 자신의 고뇌로 닦아내던 그 피먹진 아름다운 손을 못내 상기하며, 주어진 나의 역할에 충실하는 새해의 모습을 기대하며 이 묵은해를 접고자 한다.

제목 날짜
예술인의 재주 2015.02.14
예술정책과 가치기준 2015.02.14
지역민으로 살다 보니 2015.02.14
제15회 전북연극제 심사총평 2015.02.14
이제 기업이 나서야 한다 2015.02.14
溫故知新을 위한 世紀末의 獨白 2015.02.14
제작시스템 가동을 기대하며 2015.02.14
월드컵과 문화축제 2015.02.14
향기와 소롯길에 대해 2015.02.14
제2회 전북청소년연극제 심사총평 2015.02.14
새로운 생명의 환영으로 태어난 심청 2015.02.14
적묵(寂默)의 감동으로 남는 무대 2015.02.14
제20회 전국연극제를 준비하며 2015.02.14
우리 소리가 중심이 되는 소리축제 2015.02.14
미소 짓던 피칠의 손 2015.02.14
자유롭다는 춘향이 2015.02.14
전주시립극단에 바란다 2015.02.14
전북도립국악원이 지향했던 창극의 방향 2015.02.14

주소 : 전주대학교 공연엔터테인먼트학과 예술관 308호
전화 : 063-220-2708 HP : 010-6777-6111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