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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소리가 중심이 되는 소리축제

      우리 소리가 중심이 되는 소리축제

       

      박 병 도 (전주대학교 교수, 전주세계소리축제 연구위원)

     

    목민심서(牧民心書)에 이르기를, 다 같이 옛날 것을 수정하거나 보완하지 않고 그대로 따 르는 병폐를 가리켜 '병인기구'(竝因其舊)라 하였다. 또한 설원(設苑)에 의하면 병은 회복기 에 조리를 게을리 하면 도리어 전보다 더 무거워진다는 뜻으로 '병가어소유'(病加於小愈)라 했는데, 화(禍)는 사소한 방심에서 비롯된다는 일면을 가리키고 있다.

    지난 해 10월17일부터 19일까지 3일간, '우리소리 세계화 및 소리축제의 문화상품화'와 '문화민족의 자긍심 고취 및 국민의 문화수준향상'의 목적 하에, [온누리의 화음/Harmony of all Nations/萬邦之和音]이라는 주제로 '전주세계소리축제 예비대회'가 열렸다. 행사결과에 대한 여러 논의와 공과(功過)가 대중에 회자되면서, 최소한 본 행사가 이루어지는 전북권의 문화예술계는 지중한 타산지석(他山之石)의 실례를 간과할 수 없게 되었다.

    예산의 편성과 집행, 그리고 그 실효성에 대한 논의를 접어 두고라도, 애초에 설정된 기 본 실행 방향의 컨셉트(concept)에 대한 비판의 화살은 시행의 주체세력에 큰 충격파를 던 졌으며, 그에 따른 행사내용의 실제적 배열을 두고 말마디께나 들었던 '화제의 축제'로 남게 되었다. 그러한 화제는 으레 지극한 관심이 선행되어져 파생되는 현상인 바, 어차피 매는 맞 았으니, 그 매로 인한 병가상사(兵家常事)를 숙지하여, 이제 용기와 희망을 갖고 다가오는 본 행사에 만전을 기하자는 목소리가 드높다.

    이제, 올 10월 13일부터 28일까지 16일간 한국소리문화의 전당과 전북대문화관, 그리고 전북예술회관 등지에서 열리게 될 [2001전주세계소리축제]에 거는 도민의 기대는, 수년을 거 쳐 입안하고 준비하며 세인의 관심을 촉발한 연유만큼이나 다양한 각도로 분망히 펼쳐져 있 다. 소리축제 조직위원회의 인터넷 공식 홈페이지에 확인한 바, 본대회의 내용은 '한국음악, 서양음악, 각국 민속음악 등'으로 되어있다. 얼핏 보면 '소리축제'의 '소리'라는 대명제가 다 분히 '음악'의 장르 안에 수용됨으로서, 음악적 음률로서의 형태적 완성을 전제로 조합된 '소 리'의 개제(開剃)를 수렴·취합하자는 것에 다름 아니게 보인다. 그 또한 논의의 여지를 제 공하지 않을 수 없으며, 아울러 그 음악적 효능으로서의 '소리'는 자생적인 우리 고유의 음 악적 장르와 무관하지 않은 지칭(指稱)의 대위(代位)를 차용했을 법한 혐의가 짙다. 즉, 우 리 고유의 음악 형태인 '판소리'에서 연유된, 또한 '전주'와 '대사습(大私習)', '전북'과 '동·서 편제'라는 보편적 인식의 공유선상에서 파생된 '소리문화'에 대한 각별한 가치가 인정되었으 리라는 논거(論據)에 입각함이다.

    전자의 논의의 여지라는 것은 다름 아닌 '음악'적 형태로 확대 해석된, 사전적 의미의 음 악형태의 제행(諸行)을 포괄적으로 수용함으로써 갖는 일종의 방만한 계획의지에 대한 우려 이고, 나아가 일제(日帝)에 의해 국악(國樂)으로 폄하(貶下)되어 아직껏 국민정서의 온전한 지지성향을 구축치 못했던 '우리음악'이 갖는 상대적 기반열세에 대해 아무런 보호장치나 프 리미엄조차도 배제한 발상의 난맥을 지적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즉 아직까지 우리사회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서양음악 제반의 구조적 형태를 동일 선상에 놓고, 국악의 본향이라는 전주의 음악축제를 논하자는 사실과, 또한 그러한 기본 발상의 시촉(矢鏃)은 이미 시위를 떠 난 연후에는 그 근본으로부터 점차 멀어지며 마냥 맹목을 향하여 전진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 보는 것이리라.

    왜, 우리음악의 '소리'가 '중심'이 되는 축제가 되어서는 아니될까하는 의구와 자괴(自愧) 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축제의 본질에서 일탈한 글로벌리즘의 허망 한 치적주의(治積主義)에 급급해 온 지방자치시대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부풀리 고 부풀려도 양(量)에 차지 않은 공상(空想)의 '미래완료형(未來完了形)' 사고방식이 가져다 준 일종의 자가당착일수도 있다. 크나 큰 결과에 욕심을 부려 차별화에 집착하고 강박(强迫) 되는 별난 실행주의의 오류이기도 하다. 바둑의 고수(高手)는 결코 반집을 이기기 위해 혼신 을 다한다 하였다. 그 반집에 거는 욕구는, 욕구라기에는 더 없는 가혹한 시련과 최선의 지 혜를 다하는 경과를 통과하는 것이다. 하수(下手)가 갖는 허망한 대박의 꿈은 비교우위를 벗 어난 게임에서 유효할 뿐이다.

    프레대회때 가졌던 안타까운 심경은, 서양의 물량이 여과없이 통과된 내집 마당에서의 한판 패배에 암중모색하던 지성의 목소리가 너무나 허약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우리의 '소 리'를 놓고, 우리의 소중하고 우수한 면면을 서양의 그것과 비교하여 자긍으로서의 '우수함 의 재발견'을 꾀해 보자는 것이었는지, 아니면 처참한 한판 뒤집기를 당하자는 일이었는지를 묻고 싶었던 것이다. 하물며 운동경기에도 홈그라운드의 프리미엄이 당연지사 대입되고 남 음이 있을 터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당(堂)집에 풍각쟁이 불러 놓고 신주(神主) 붸는 격'이 되고 만 것이다. 이제 그 연유를 알고 만 경위인지라 되새김하여 이로울 바 없겠으니, 기왕 지사 벌릴 판에 격려와 용기를 북돋는 덕담이 더욱 요긴한 처방이라 여겨진다.

    일반적으로 '축제'의 개념을 일컬어 '예술적 요소'가 포함된 제의(祭儀)로 정의하여 왔으 나, 산업화된 오늘날에는 세속주의에 만연되어 제(祭)는 사라지고 축(祝)만 남은 현상으로 단언하기도 한다. 그러나 축제는 분명, 축(祝)과 제(祭)가 포괄된 문화현상이라고 봐야 할 때, 많은 사람들을 운집시켜 놓고 음주가무(飮酒歌舞)하는 유희적 버라이어티(多樣性)에 제 의(祭儀)의 고형(固形)적 아이덴티티(identity, 同質性)를 확보하여야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심성(心性)과 정체성에 기인한 '본질에의 회귀(回歸)'를 근본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 다. 그것이 '소리축제'라면, 응당 우리가 듣고, 새기고, 읊조리고, 뱉어내던 '우리의 소리'가, 어떤 이방인이 보고 들어도 특별한 고유성으로 각인되고 남음이 있을 '또 하나의 별(別) 소 리'를 인정해 내는 일이기도 하며, 그러한 조상대대로부터 내리 가져 온 '흠향(歆饗)의 소리' 가 전주(全州)의 비빔밥과, 합죽선이며, 한벽루와, 완산칠봉에 제물(祭物)하여 올려질 수 있 다는 이야기다.

    만시지탄(晩時之歎), 이제 우리의 국악을 정점으로 새로운 판이 짜여진다고 한다. 필자는 수년 전에 '인간의 소리' '물질의 소리'를 근간으로하는 창악(唱樂, 동서양을 막론하는)과 악 기(樂器)의 어울림, 그로 인한 '문명의 외침'을 종족문화(種族文化)의 형태에 실어 발현해 봄 이 어떤가를 제안했었다. 그것은 악가무(樂歌舞)의 형태로 다양히 섭렵될 수 있는 문제려니 와, 올해로 두 번째 개최되는 '세계섬문화축제'가 비록 섬이라는 지엽적 대상을 취하였더라 도 다분히 가장 근원적인 휴머니즘의 소리개체를 다양하게 수용하고 있었음을 상기하고자 한다. 달콤한 하와이언의 화음도 키타 선율에 실려 몽환의 정취에 친숙하거니와, 자마이카 원주민의 역동적인 율동에 실린 기괴한 음색은 태초의 언어를 연상케한다. 대저 '소리'의 본 질을 메머드한 집단의 양(量)으로 따질 일인가, 아니면 각양(各樣)의 형태로 수급할 것인가 를 진단해 봄도 괜찮을성 싶다.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축제가 '지역민'의 의지로 지역을 표상(表象)하는 그것인지, 아니 면 지역을 초탈하여 세계성(世界性)이라는 미명하에 새로운 축제의 형태를 표방하는지를 분 간하여야 한다. 전자가 갖는 개념은 보편적인 '지역축제'의 범주에서 논의되는 바, 지역의 다 양한 문화현상을 포괄하고 있는 지역축제의 정의는, 지역과의 역사적 상관성 속에서 생성· 전승된 전통적인 문화유산을 축제화한 것이라고 규정지어 진다. 그러한 '지역축제'는 말 그 대로 지역의 역사와 전통과의 직접적인 관련성 속에 공감대가 설정되어 지역민과 함께 호흡 할 때 의의가 있는 것이다. 역설하여 그 '지역'에서 벌어지는 '세계적'인 축제라 하여, 동일 장르의 창작물을 국제·세계적으로 집합하여 경연·합연하는 '국제연극제'나 '세계무용제'와 혼동해서는 안될 것임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러한 동일 장르의 집합은 이미 만국 공통화된 무대기호나 부호의 규약을 숙지하고 있음으로서, 그 형태의 변별(辨別)을 떠난 생산방식에 주의하고 있음을 주지하여야 할 것이다. 아울러 어차피 '소리축제'가 '축제'가 갖는 본디의 의미를 간과하고 생산자와 수용자를 분별하여 공연의 형태를 빌린다 하여, 백화점식 좌판나 열의 온갖 '소리나는 양식'의 집합으로 극대화하자는 취지라면, 이미 그것은 아무 개념도 의 미도 묵살해버린 하나의 해프닝에 불과한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우리의 판소리가 복판에 자리잡고, 우리의 국악이 새로운 형태의 환타지를 그려낼 때, 그 간 우리의 심성에 쌓여 온 우리만의 자긍심이 만개한 웃음과 여유로움으로 표출됨은 물론이 요, 그로 인해 충만한 우리의 멋과 흥을 보러와도 보러 올 외국인이 있을 것이요, 담아 가도 담아 갈 이방인의 발걸음은 이어질 것이다.

    브라질의 '리우축제', 독일 뮌헨의 '옥토버 축제'와 함께 세계 3대 축제에 속하는 일본의 '삿포로 눈축제(유키 마쯔리)'는 일본인에게 있어서 제2차 세계대전 패전의 상처를 딛고 일 어선 시민들에게 힘과 위안을 주고, 춥고 긴 겨울을 야외에서 즐겁게 지내자는 뜻으로 개최 되었다. 물론 1972년 동계올림픽, 1990년 동계아시안게임이 개최되는 등 겨울철 스포츠로 유 명한 곳임은, 전주가 조선시대부터 국창(國唱)을 배출해 온 대사습의 본향이라는 점과 입지 의 개연(蓋然)을 같이 한다. 해마다 2월 5일부터 11일까지 일주일간 열리는 이 축제에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200만명이 넘는 국내외 관광객으로 시내의 숙소는 물론이고 거리는 온통 눈과 관광객의 물결이 된다. 삿포로역을 가로질러 동서로 155미터나 쭉 뻗은 오오도오리 공 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세계적인 겨울축제에는 시민들이 직접 손으로 만든 눈조각을 전 시하기도 하고, 세계 각국에서 모인 참가팀이 '국제 눈조각 콩쿠르'에서 경쟁하기도 한다.

    세계 어디에나 하늘로부터 무상으로 뿌려지는 '눈(雪)'을 가지고 하나의 공통관심을 집중 시킨 그들의 성과에는, 다름 아닌 자국민 스스로 그것을 이해하고 참여하고 즐기는 '공동의 가치'가 눈사람처럼 뭉쳐졌기 때문이다. 행사기간 중에 사용되는 눈이 자그마치 5톤 트럭으 로 약 7천 7백대 분이라는데, 육상자위대가 눈 수송을 담당하고 여러 사회단체에서 분담하 여 축제를 후원하고 있다.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어느 지역 보다 눈과 가까웠고, 눈 속에서 살았으며, 그 눈을 이해하고 삶에 수용하였기에 세계인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삿포로인들이 눈세례로 성장해 왔다면, 우리는 걸쭉한 판소리 가락과 신명진 풍물의 세례로 성장해 왔다. 그러한 근본의 감흥이 용해된 '주체(主體)의 명분'이야말로 가장 세계적인 주제(主題)의 정점 에서 가장 선명하게 부각될 것이다.

    그러나, 항간에 제시되는 식자의 고견에는 '세계적인 소리의 경연장'을 부추키는 아주 자 상한 혼란이 있어 염려되는 바 크다. 밥을 먹으러 음식점에 들러도 잠시의 짬이나마 '화투 (花鬪)'의 승부욕에 목숨을 건 삶의 방식들이니, 그 승부문화가 축제에 간섭을 아니할 수 없 었겠지만, "세계 각국의 '소리문화'가 전주에 와서 일등을 하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게 하 자"는 발상은, 아무래도 나름대로의 자긍심의 고취라는 망상에 비추인 '고양이 방울'을 환청 의 소리로나 듣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래저래 괜한 소리가 너무 팽배하여 자칫 볼멘 소리나 더 들을까 염려하는 많은 관계 자들이, 이제는 허튼 소리에 맘 쓰지 말고 진지한 우리의 소리에서 출발하는 혜안을 갖추어 '병인기구'(竝因其舊)의 오명을 받지 않고, 주어진 시간을 촌음으로 계획하여 '병가어소유'(病 加於小愈)의 낭패를 당하지 않도록 시행해 나가길 도민의 한사람으로서 소망해 본다.

     

      [노령]-2001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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