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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묵(寂默)의 감동으로 남는 무대


[서울예술단 32 정기공연] 뮤지컬 {김삿갓}-전주공연 공연평

적묵(寂默) 감동으로 남는 무대

 

성찰되지 않은 삶은 가치가 없다고 소크라테스는 주장했으나, 오늘날 대중의 요구나 관찰은 그런 주장이 결코 즐거운 모습이 아닐지 모른다. 따라서 사람들은 고급문화 없이도 행복하게 있다는 논리가 '대중매체'를 탄생케 했고, 매체는 수용자의 평균취향에 맞도록 내용과 수준을 동질화 시키지 않을 없게 되었다. 이러한 대중매체의 수용자들은 현실과 매체의 허구를 혼동하고 있으며, 허구의 상황에 자신의 삶을 대입시키려는 '삶의 비현실화'(derealization of life) 길들여 지고 있다.

대중적인 관심사 속에 용해되어 있는 설화나 민담, 그리고 영웅열전등이 예술로 승화되었을 수용자들은 어떠한 삶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있는가? 예술은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의 인식을 심화시켜 주지만, 이전의 형태는 궁극적으로 현실을 회피하는 환상의 漸移地帶에 안주해 버리는 습성이 있다.

조선 후기 사람으로서 역적의 자손이라는 삶의 멍에를 짊어지고, 현실의 도피 속에 세상을 개탄, 저주, 조소하는 방랑의 시인 김삿갓이 무대화 되었다. 하늘을 가리고 세상을 떠돌았다는 주유시인 김병연(본명) 일대기가 마침내 한국적 아이덴티티에 부응하는 한국뮤지컬로 막을 올린 것이다.

중앙과 지역문화 균점의 일환으로 수준높은 무대예술을 지속적으로 유치해 전북도민일보가 , , 舞로 무장된 서울예술단의 최근작을 전북대학교문화회관에 초청한 것이다.

드라마는 실제 인간의 행동을 예술적으로 모방한 가장 구체적인(가장 추상적이지 않은)것일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인간이 처하고 있는 상황에대해서 생각해 있게 하는 가장 구체적인 양식이기도 하다. 따라서 객석의 관객은 세상의 부정을 향해 각혈 처럼 詩句를 토해 , 천재시인의 삶의 질곡에 대해 연민과 동경을 아끼지 않는다. 家系에 따른 숙명적 신분과 시대와의 불화에 따른 변태의 행적, 해학과 낭만이라기 보다는 울분과 격정으로 가득찬 풍운의 심경을 口述로 풀어 헤친 시대의 방랑자를, 시대를 넘어 현대의 무대어법으로 풀어 내고자 대작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서울예술단은 춤과 노래와 연기를 겸비한 재기다능한 인재들로 구성된 한국뮤지컬의 본산이다. 그러기에 국산(국내창작)뮤지컬의 원류를 인양해 내고, 한국인의 심성에 호소하는 우리네 음악극의 부호를 독자적으로 축적시켜 일련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작금의 공연작들이 우리의 전통적 소재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해석으로 독자적인 드라마의 '영원한 현재시제(eternal present tense)' 제시해 있다. 그런 구성원들의 才氣와 熟成된 연희술이 복합적으로 무대화 되는데에는 복잡하고도 다양한 제작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등장인물의 독특한 캐릭터가 설정되고 표출되는 일련의 탐구가 전혀 새로운 해법으로 포장되지 않았는 , 관객의 보편적 선입관에 인각되어 있는 관념적 인물유형의 접근이 그리 용이할 있었겠는가에 대한 질문이 그것이다.

역사적인 인물이나 사건을 무대화 하는데에는 고정관념의 벽이 두텁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또한 이를 뛰어 넘는 재창조의 폭이 크면 클수록 속된 애정물만 못한 감흥으로 실패하고 만다는 통념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타이틀롤(김삿갓) 주는 이미지는 매우 변수이자 감흥의 대상이 된다.그러한 관객의 요구나 관찰은 이시대에 어떠한 메시지로 닿는 시인의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극작에 대한 숙제는 남아있게 마련이다. 영웅열사전이 그러하듯이 대개가 傳記를 수록하려는 방대성에서 실패의 요인을 꼽는다. 또한 시대의 인물이 관통한 상황을 추려내는 '극적 포인트'는, 인물의 담고 있는 상징적 이미지에 탄력을 갖고 선별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주변인물들 또한 그렇다. 오늘날 우리 대중의 뇌리에 존재하는 풍운아 김삿갓이 있게한 주변과 상황의 설정이 너무나 극전개에 허덕인 나머지, 아까운 구성의 (cell) 허비해 버린 것은 아닌가.

그러한 대중의 히어로 로써의 인물은 극장과 무대를 휘어 잡는 여유로운 연기술이나 더블테익(double take ; 웃고 넘겼으나 깜짝 놀라는 변죽의 여유) 구가하는 설정으로 풀어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울러, 어차피 음악극이라는 틀거리 안에 창작된 내용이라면, 음악적 흐름에 동승하는 극적전개가 어떠한 자유로운 유영으로 극화되어야 하는가를 깨닫게 작품이었다. 무대와 영상의 중간지대에 방황하는 많은 장면설정은 음악극이 갖고 있는 축적된 감성의 이미지를 극대화하지 못하고 있다. 인물의 갈등이나 비탄을 확장시켜 주는 연결된 상황의 노래나 가사가 너무 별리되어 있다. 최소한 뮤지컬을 찾아 관객은 그러한 극적 감흥의 증폭에 기대를 걸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아울러, 일반 정극(연극)에서도 상식화 되어 있는 브릿지 음악이나 아리아의 후주종결에 맞물리는 다음장면의 용명(light in) 긴밀감이 없어 아쉽다. 전쟁장면의 극대화는 시간의 확장으로 해결될 아닐 것이, 몹씬(그룹장면) 연기는 없고 효과와 혼돈과 무질서가 차지되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뮤지컬 음악의 솔로나 코러스 한곡은 수십 臺詞를 함축한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하물며 편곡과 악기편성의 일천함은 현대인의 히어링 매커니즘을 무시하여서도 않된다. 컴퓨터 멀티트랙에 입히고 반복해낸 신디사이저의 변형음들을 어떻게 브라운관의 대중가요를 바라보듯 바라 보라는 말인가? 음악적볼륨감에 젖어 보고자 뮤지컬팬들의 기대는 만든이들의 정성과 비례할 것이다. 그나마 장면연결의 브릿지 이펙트 조차 신디사이저 한가지로 일관하여 메꾸어 놓은 점은(그나마 비어있는 브릿지도 너무 많아 연극을 보고 있는지 착각이 정도 였지만)다급한 제작상의 완결을 보는 같았다.

뮤지컬의 연출적 재구성은 음악적 감성에 의해 좌우된다. 그것은 대사와 노래가 별개의 정서에 의해 조립되는 논리적 편성을 사양되는 점이다. 나아가 연극적 테크닉이 수많은 극적상황을 조합하여 준다는 욕심은 어차피 뮤지컬의 틀거리를 벗어난 발상일 수도 있다. 김삿갓의 일생을 그린것인가, 인간을 그린것인가, 풍류를 그린 것인가, 보편화된 관념의 행적을 그린것인가에 고민했던 관객은, 더없는 풍류시인의 풍요로운 詩語에 입혀진 금옥같은 음률(선율) 기대했을 것이다. 어쩌면 파격적인 遭遇로서 귀에 익은 '죽장에 삿갓쓰고 방랑 삼천리에....떠나가는 김삿갓'으로 교체해서 만나고 싶은 관객도 있었을 것이다.

뮤지컬이 연극적 연출해법으로 강제해체 되었을 , 음악은 정서에서 벗어난 타임워치 처럼 개제를 모르고 돌출하기 마련이다. 나오고 들어갈 곳을 모르는 음악(보컬) 좌판의 구색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서울예술단 배역진들의 형상화의 구체적 실존인물로서의 남다른 기량과 실력은, 역할의 해석과 조합의 의지와 관계없이, 고마우리만큼 열연을 해주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낸다. 아울러, 년중 두차례씩 거르지 않고 7년동안 지역문화의 활성화를 위해 뮤지컬을 초치하여 전북도민일보사의 순수무대에의 순수의지는 높이 평가되어야 것이다.

어쨌든, 21세기를 목전에 한국인의 시대정서는 차라리 반상의 수직논리에 반하는 안티테제(antithese)로서의 개개의 풍류객이 되고자 하는 주인공의 동질성을 희구하였는지 모른다. 어찌보면 우리는 변색된 자신의 삶에 도취해 버리고자 하는 자기최면의 나르시스트로서 일체감을 갖고 만났던 김삿갓 일런지도 모른다. 그런 김삿갓이 현실과 비현실을 주유하면서 잠시 동시대인의 감상적 환상을 자극하였는지 모를 일이다. 오늘, 우리는 어떤 색깔의 방랑시인을 만나고 돌아 가는 길인가? 모두가 적묵(寂默) 감동으로 늦가을의 뒹구는 낙엽을 즈려 밟고 가는 것인가?

 

-전북도민일보 1997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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