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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와 소롯길에 대해

      향기와 소롯길에 대해
      박 병 도 
       
       작년 연말, 한 세기의 의미들을 되집어 보자는 취지로 '한마음 갤러리'에서「세기말 고백전」
      이 열렸다. 화백들의 고뇌어린 내면의 자화상으로 부터 컴퓨터 그래픽에 담아 낸 인간 삶의 
      혼돈, 그리고 배우들의 천만가지 갈등을  야누스적 표정에 함축시켜 놓은 사진작품까지 다양한 
      예술제행이 한자리에 같이 하였었다. 
      이 자리에 초대를 받아 연출가로서 세기말의 고백을 털어 놓으라니 참으로 난감하였는데, 
      별 수 없이 평소 마음에 두었던 글귀를 화선지에 담아 부끄럽게 내 놓게 되었다. 
      
         '도이불언 하자성혜 (桃梨不言 下自成蹊)'
      복숭아꽃과 오얏꽃은 아무 말이 없어도 그 밑에는 자연히 샛길이 생긴다는 내용인데, 여러 
      인간사의 곡절을 추스리고 담아내는 연출가가 바라 본 세상의 창에 걸어 놓고픈 의미가 
      아닐 수 없어 꺼내 놓게 된 것이다. 
      수풀 무성한 언덕배기에 홀로 서있는 복숭아꽃과 배꽃의 향기는 천리를 가고 만리를 가니, 
      제 목소리 들어 달라 분주히 울어 대는 참새나 뱁새의 요란함을 뒤로 두고, 사람들의 발길은 
      자연히 그 향기를 밟아 오게 되어 없던 소롯길이 생긴다는 이야기다. 
      자태와 품격은 길들여 완성되는 것이 아님을 스스로 깨닫는 예술혼이 아쉬운 시절에, 
      지역마다 고을마다 제각각 지니고 있는 예술적 풍토가 제한하는 예술창출의 카르텔은 
      위험한 수준에 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역적 고착성에 함몰하는 예술적 순종은, 그것이 독창적인 로컬리티에 기인한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으나, 우물안 개구리 세상일을 모른다는 위험한 부정의 카데고리에 갇혀 버리는 
      안타까움이 더욱 크게 마련이다. 
      인맥과 교우에 자유스러울 수 없는 인간사라 하지만, 천차만별의 창출신호를 개발해야 할 
      예술판에서의 '묵인된 공인 수준'을 굳이 고집해야 하는 운명적 관계는, 결코 한 세상을 
      풍미하다 남기고 떠나야 할 예술가의 족적을 혼미하게 만드는 결과가 될 것이다. 
      지역의 독창적인 소재를 어떠한 보편적 창출의 부호로 수준 높게 완성시켜 가야 할 것인가는, 
      '나도 너만큼, 너도 나만큼'의 <품앗이 인정> 속에서는 결코 향기롭지 못할 것이다.
      지역을 타파하고, 기득권에 연연하지 않으며, 해묵은 관습에 맹종하지 않는다는 뉴 밀레니엄의 
      온갖 구호들이 난무하는 예향 전주가, 이제 어떠한 향기와 매력으로 주변의 시선을 받을 
      것이며, 어떠한 발걸음과 손길들을 맞이하여 길이 생기고 닦여질 것인가. 
      거대한 사회인식의 흐름도 개개인의 덕량과 가치기준이 합일하고 복합되어 이루어진다 할 때, 
      우리만 살다 갈 내 고장이 아니라는 점을 새롭게 인식하여 향기의 품격지수를 조정해 봄이 
      어떨까. 
      대장장이는 망치 끝에서 인정되고, 땅재주꾼은 줄 위에서 존재하는 법이다. 봇짱이 안 맞는
      다고 아무나 못 두려 볼 망치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땅 위에 줄 긋고 아무나 걸어 봐도 되는 
      것이 '묵인된 인정'이라면, 이제 우리는 영원히 우리라는 굴레 안에 스스로 갇혀 버리는 
      냄새 무분별의 축농증 환자로 남게 될 일이다.
       
      이제 몇몇이 입을 맞추어 특별한 능력과 향기에 대해 도매금을 매겨 버리고, 장님이 코끼리 
      등을 만지고서 내 뱉는 하찮은 인지가치에 참새들 처럼 법썩을 떨지 말자. 정작 우리만 
      못하지 않은 세상의 수많은 인품들은, 더욱 말없는 가운데 스스로의 향기에 책임을 다하는 
      아름다운 거목들에 다가가려, 말뚝 박힌 땅들을 헤집고 신명의 길을 닦고 있으니 말이다. 
      더욱 열린 창공을 뚫고 우리의 참향기가 세상의 기운이 되게큼, 예향 전주의 천년지대계 
      복숭아나무 배꽃나무를 잘 가꾸고 길러 내는 일에 우리 스스로 마음의 거름을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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