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溫故知新을 위한 世紀末의 獨白

       

      溫故知新을 위한 世紀末의 獨白

                                                                               박병도

     

    한 세기를 보내며, 또 한 세기를 맞이한다며, 이 세기말의 상념들은 온갖 '정리'와 '청산'을 동반한 '반성적 사유'에 휩싸여 있다. 흐르는 게 시간일 것이고 여느 시간인들 다를 리 있겠는가마는, 우리는 유독 어떤 의미로운 시간과 시각에 대해 집착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 시간의 정점들이 곧 상황의 변화를 만들었고, 그 변화의 의미다발들이 역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가 유추하는 신석기와 구석기는 기원전 몇 년 몇 월 몇 일 부로 갈래를 달리하는 것일까? 그 정점의 전날은 구석기이며, 그 다음날이 신석기인 것일까? 우리의 사고(思考)는 이러한 디지털방식의 논리에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이 한 세기의 마감을 보면 여지껏 우리가 의지해왔던 아날로그 방식의 삶을 잠시 접어 두고자 발버둥치는 것 같다. 마음으로 받아 보는 새천년의 의미로움 보다는,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그 의미다발을 걸머 쥐고자 하는 가상스런 노력들이 천년의 세밑을 장식하는 것이다. 가령, 뉴질랜드 스카이다이버들은 태평양 상공의 날짜변경선 상공 3,600미터에서 뛰어 내려 가장 먼저 새천년의 태양을 바라보리라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 퍼지(fuzzy)적 삶에 익숙한 범인들의 기준을 비웃어 버린다. 그들은 인류가 정한 그 엄밀함에 다가가 지구가 새날을 맞는 디지털의 라인(line) 선상에서 신세기를 맞이함으로써, 더욱 정직한 의미에 충실하고자 하는 자신들에게 만족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그만한 것들에 의미롭기에는 그다지 여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며, 때로 애매모호한 이론과 처신에 친절하였던 일상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자신의 전문적 지식과 경험까지도 그 애매한 퍼지 이론의 포장에 담고자 노력하지 않았던가. 그러한 우리의 예술관은 화가의 가늘게 뜬 눈매로 바라 본 '대상(對象)의 가늠자'만큼이나 흐릿한 감각과 감정의 판단치로 제반의 과정에 상호교조작용, 즉 융섭(融涉,interact)하곤 하였는데, 오히려 그러한 추상(抽象)이 촌스럽다는 구상(具象)이나 사실묘사를 능가하는 미학으로 존대 받아 온 것이 저간의 사실이기도 하다.

    우리는 왜 예술적 삶의 영역에 디지털이니 아날로그니 퍼지니 하는 등의 대상의 가늠자를 들이대는 것일까? 그 생산의 장에 펼쳐지는 결과물이나 부산물, 혹은 의도의 몫에 대한 비판적 논거를 대기 위함인가? 아니다. 어느 모로 보나 예술의 표현은 행하는 자의 자율적 의지를 발하는 일이니 만큼 결과의 상태에 대해 논하자는 것이 아니며, 바로 행하는 자들의 행위 이전의 상태인 그 작업 방법론이나 삶의 방식에 관해 반성해보자는 일이기도 하다.

    예술판의 카르텔(cartel)은 정확한 디지털의 이론보다는 애매모호한 퍼지적 아날로그를 선호해왔다. 그것은 큰 미덕이었으며, 집단을 형성하고 리드해 나갈 오피니언 리더(opinion leader)의 큰 덕목 중의 하나이기도 하였다. 우리네 조상님들의 지조와 절개를 지탱해주었던 가장 중요한 바로미터(barometer)도 바로 '중용(中庸)의 미학'이었으니, 결코 두루마기 겉섶과 안섶의 색을 같게 하지 않는다는 그 삶의 도리는 적어도 퍼지적 삶의 표상이기에 충분하였다. 예컨대 서구적 논리로 접근하는 '철학(哲學)'이라는 용어는 말 그대로 명석하게 밝히는 것이고, 도(道)를 중시한 동양적 논리로 대비되는 '현학(玄學)'은 흐릿한 상태를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 명석한 디지털식 해체와 조합이 대입된 의식구조가 성행했다면, 그것에 동반된 삶의 양태 또한 크게 다를 수밖에 없는 일이고, 우리네 예술 또한 퍽 건조한 과학적 토질에 피어나는 부산물로 융성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양태의 이면에는 지극한 원칙이 생명력을 가지고 모든 조건들을 조율하기 때문에, 좀더 현상에 솔직한 -행위 이전의 상황-을 숙성시켰을지도 모를 일이다.

    요즈음 정신없이 얽혀진 가닥을 풀어헤치지 못하고 있는 정부 여당의 현학적 태도를 대하며, 주먹으로 막을 일을 몸통으로 막아야 하는 국면을 초래한 '거시기 머시기'식 정치철학이 택한 편리함에 당혹하기만 하다. 감물과 잿물이 양 섶에 물들여진 정치의 두루마기를 입고 있으니 당연히 원칙에서 일탈한 아리송한 패션쇼를 황홀하게 펼치는 것은 아닌지. 이러한 아날로그식 사고편향은 출중한 순발력을 발휘해야 하며, 적당한 무원칙의 조화로움을 대입하는 지혜가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전면 부상되기 마련인데, 노자(老子)는 그러한 도(道)를 '나타나 보이기도 하고 숨겨져 보이지 않는다'고 하면서, 나타나 보일 때는 요(邀)라 했고, 숨겨져 보이지 않을 때는 묘(妙)라 했는데, 인식주관에 비칠 때 전자는 황(恍)이요 후자는 홀(忽)이라 하였다. 그러기에 애매모호한 형태는 그저 황홀한 경지에 다다르게 하는 예술적 원소(元素)에 다름 아닌지 따져 볼일이기도 하다.

    조화로움 속의 치열한 원칙

    예술행위는 곧음과 휨의 조화로움, 명쾌함과 환상의 하모니, 즉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능동적인 조합을 두루 섭렵해야 할 최고의 도(道)일 것이다. 대입의 여지에 있어서는 개개의 주관이 다르겠지만, 앞선 자와 뒤 처진 자의 구분 없이 받아 들여야 할 덕목이 이러한 가운데, 생산의 현장은 보다 풍요로움에 다가가는 인고의 수도장(修道場)이 될 것이라는 등식은 자연히 성립된다. 이러한 조화의 원칙은 옛 성현들로부터 이어져 오는 장인의 해법이기도 할 것인즉, 작업의 결과를 황홀한 비경으로 도출해 낸 이면에는 치열한 과정과의 싸움으로 일관하는 자신의 원칙을 지켜냈다는 것 아닌가.

    그러나, 이러한 조화로움이 어느 성장의 시점에서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연유는 아무래도 자신과의 싸움에서 패배하기 시작한 시점으로 보아 무방할 것이다. 불세출의 명작인 <아마데우스Amadeus>는 바로 그러한 인간의 갈등과 모순을 지적하였기에 만인에 회자되고 있다. 즉 '인간과 인간 사이'의 보편·평면적인 갈등이 아닌, 그 가운데 신(神)의 존재를 개입시켜 '삼각의 갈등'을 빚어 놓은 그 가슴 저미는 회한의 스토리가 '인간의 능력'을 담보로 보는 이의 가슴을 전율시키는 것이다. 모짜르트의 천재성 - 그 신이 주신 특별한 은혜에 대해, 그리고 그와 대비되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바로 그러한 신에 대한 반감(反感)이 비범치 못한 살리에르를 이해하게 되는 휴머니티이며 공감의 영역을 형성하게 되는 출구가 된다. 바로 그 시점에서 범인(凡人)들은 조화로운 자신을 깨고, 그 '조화의 총체'로 이루어진 '소우주(宇宙)자신'을 허물고 마는 우를 범하게 된다. 그러고서 만드는 일이 바로 불완전한 자신의 또 다른 조각을 찾는 일이며, 그러한 불안정한 집합체 수준의 평준화에 자신의 잣대를 갖다 대는데 열중하는 현상을 보인다. 그래서 발생하는 예술적 카르텔(cartel)은 '깨진 조화'들의 집합체가 되어, 전혀 개개의 조화로운 독창의 예술과는 판이한 불충분한 목적의 수반으로 세력화 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과정의 변이(變異)가 인정되는 시대는 그 사회의 가치관과 무관할 수 없어서, '변소에 오래 앉아 있으면 냄새를 잊는 편리함'처럼 '절대가치의 가수면(假睡眠)상태'에 빠진 세태를 잘 반추해 준다고 하겠다.

    세상은 질보다 양을 먼저 선호한다. 썩 괜찮은 교양프로보다는 신물나게 반복되는 광고의 이미지를 더욱 머리에 새긴다. 이러한 저급정보에 대한 선호효과는 동일시기에 취득한 고급정보를 망각(forgetting effect)한 채, 정확히 4주 후면 완전히 낮은 공신력에 의해 높은 공신력이 잠식당한다. 이러한 가수면효과이론(sleeper effect)이 일찍이 호브랜드(Hovland)학파에 의해 밝혀졌는데, 우리네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피할 수 없는 요건이 된다는 점에서 몹시 씁쓸하기만 하다. 때로 몸에 걸칠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유용할 광고도 있겠지만 더더욱 정신을 풍족히 할 영양소도 필요한 것처럼, 저급한 비지네스에 눈 돌렸던 양식들이 이제 망각 속의 참의미들을 되새겼으면 하는 것이다. 낮은 공신력의 카르텔들이 스스로에 충실한다는 것은 무너진 자아에 눈 돌리는 일에 다름 아니며, 죽어가면서도 선율을 내뱉어 내는 모차르트 앞에 앉아 악상(樂想)을 받아쓰는 살리에르의 솔직한 패배의 고백이 아름다울 수 있다. 치열한 전쟁의 종지부에 마주 한 그들은, 정신의 힘과 육체의 힘을 서로 조화하여 불세출의 무엇인가를 기록해 놓았으니까....

    용기 있는 어른들의 외로움

    절대의 베스트(best)를 모르는 상태의 자위적 격언은 '모르는 게 약'일 뿐인데, 그 무지(無知)에의 소박한 위로는 보편적 교육수준이나 사회 정보력이 약했을 때나 타당한 일일 터, 차라리 모르고자 하는 시대의 인간미는 백주 대낮 살인현장의 증인을 찾을 길 없으며, 정치판이나 예술판이나 도무지 원칙을 아는 '어른'들이 없다는 현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왜 그러했는가? 정치 9단도 따지고 보면 초단들과 타협해야 8단에서 승단이 가능했던 실태며, 구치소의 거물급 피의자는 '입만 열면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윗 선의 아킬레스건'은 꼭 비축해 둬야 하는 바지런함이 양식(養殖)되는 세상이어서 그럴까?

    정치하는 사람이나 예술하는 사람이나 '외로움'에 대해 얼마만한 경외를 갖고 있는지 묻고 싶다. 최소한, 부부가 한 침대에 누워 있어도 느껴 본 외로움을 아는가? 그 외로움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그 외로움에 자신 있는가? 용기로움으로 헤쳐 나갈 자신의 부족분을 또 다른 외로움에 잉태할 수 있는가? 매스게임이 아닌 한, 백명이 하든 천명이 하든 어차피 자기 것의 예술일진대, 고함 쳐서 되돌아오는 외로움에 자신 있는가? 잘못됨을 꾸짖을 외로운 용기에 정당한가? 우리는 그 외로운 어른이 그립다. 그 어른은 '원칙'에 대해 최소한의 분노를 알기 때문이다.

    나이 칠십이 되면 어김없이 '나라야마' 산(山)에 가야함을 아는 늙은이들이 등장하는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는 그 원칙에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 주는 반면, 죽음이란 자신에게 몰래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죽음의 시간을 택한다는 의연한 '어른'의 의지를 너무나 처절히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큰 충격을 던지고 있다. 오히려 흠이 없기에 흠을 만들려는 그 어른은 스스로 자신의 이빨을 돌에 부딪혀 깨는가 하면, 아들의 등에 업혀 내내 산에 오르는 동안 동정이 생겨 아들의 마음이 약해질까 봐 '무언(無言)'해야 한다는 약속을 철저히 지켜 낸다. 죽음마저도 초극한 어른의 원칙은 이미 용기의 극대치를 뛰어 넘고 있음이리라. 어른은 죽음의 인지에 결코 애매모호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아들과 타협하려다 아들이 쏜 총에 남몰래 죽어갔던 남편의 영혼마저도 묵시하는 '절대 자아(自我)'를 지켜낸 것이다. 그 어른은 다름 아닌 범부의 아내이자 범부의 어머니였던 무지랭이 촌노(村老)에 불과하다,

    자신의 계율에 충실한 어른은 세상의 계율에 빛을 던진다. 듣는 귀도 없이 다 죽어 간다던 베토벤이 세상과 타협치 않고 보낸 세월은 <합창>이라는 인류사의 명작을 탄생시킨 고통의 시간이었다. 물론 그 어른도 외로웠겠지. 귀를 잃어버린 음악가의 그 절대적 외로움을 우리는 관념으로나 눈치챌 뿐, 외로운 우리는 또 다른 귀먹어리를 찾아 열중하는 수화(手話)로 불안한 시간을 협동하고나 있었겠지.

    모짜르트가 신의 은혜라면, 베토벤은 인류의 은혜다. 모짜르트가 신동(神童)이라면, 베토벤은 악성(樂聖)일진대, 신이 손을 들어 준 모짜르트는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하였지만, 인간이 가진 악조건을 극복하고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에서 분연히 초탈하고 나선 베토벤은 인간의 한계를 극복해 주었기에 인간이 추앙한 성인(聖人)이 되었다.

    그러나, 재기 넘치는 아이와 한계에 우뚝 선 어른의 모습에 신이 공평히 내려 준 선물은 다름 아닌 '외로움으로 지키는 자신'이라는 것이다. 알찬 내면이 있어야 가능한 그 외로움은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의 원칙에 충실한 것이며, 아닌 것에 대해 친절한 꾸짖음을 사양하지 않는 것이며, 그로 인해 돌아오는 어떠한 불이익에 대해서도 초연한 배짱으로 자신을 고추 세우고 있는 '어른'이 이 세기말에 더욱 그립다.

    적어도 정치판의 어른이나 예술판의 어른에게는 무애행(無碍行)의 막힘 없는 세력의 진공(眞空)상태가 덕목인 것이지, 원칙 없는 시류의 방편들에 양손 다 드는 무원칙의 양해를 무기처럼 간주해서는 아니 될 일이다. 패러독스하게도 그 무원칙의 트릭(trick) 속엔 철저한 목적의 수반을 발육하고 있는 것임을 우리가 모르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결국 무애(無碍)는 세력이 통과해 버리는 상태이나, 그렇지 않은 음흉함은 목적의 섹터(sector)로 군데군데 세력의 울타리를 치기 마련이다.

    백척(百尺)이 넘는 장대(長竿)를 사력을 다해 올라 가 그 머리맡에 서서 성취의 희열로 밑을 내려다보는 순간, 스승은 한마디로 잘라 "한 걸음 더!"라고 외치는 百尺竿頭 進一步의 화두(話頭)에 얽힌 '진정한 스승의 매몰찬 애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덕목이 추앙 받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순종하는 아이들이 생기며, 아이들은 원칙의 개념을 양식 삼아 차세대의 어른으로 성장해 갈 것 아닌가.

    진정한 解怨相生의 시대를 위해

    '막걸리는 같이 마셔도 예술적 담합은 결코 사양한다'는 어느 선배님의 자존은 언제 봐도 아름답다. 최소한 하나의 개념은 세우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기업에서도 하청업체의 일부 부품에 하자가 있으면 가차없이 시정과 권고, 나아가 계약을 해제하기도 한다. 모든 것이 조화로워야 하고, 여러 능력들이 모두어져 탄생하는 예술작품의 조건에서도 마찬가지다. 밤을 새워 완성해 온 동지(同志)의 부품을 놓고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퇴짜를 놓는 절대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다른 진정한 능력의 부품으로 갈아 끼워 넣는 용단으로 동지의 분발과 진작을 채찍질해야 한다.

    한국 식민지화의 가장 큰 이유는 자기 가문, 그것도 가까운 가문에 대한 '울치기'인 세도정치 때문이라고 어느 일간지의 칼럼은 전한다. 독립운동이 좌절된 것도 출신성분, 가문, 지역별로 서로 주장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한국인은 결국 '우리'라는 용어로 공동체 의식을 고양해 왔건만 '우리끼리'의 우리는 먼저 남에 대한 '울'을 치는 것으로 발전하여, 종국에는 '우리' '우리'하고 몇 번 외치면 남는 것은 '나' 하나에 불과한 상태에 빠진다는 것. 그러기에 2차 세계대전 이후 강대국에 의해 분단되었던 나라 중에 유독 통일되지 못한 나라가 한국이고 보면, 딸 아이 셋을 지도자 동지가 베푸신 은혜로운 헬리콥터 안에서 분만하였다 하여 '노동당'의 노숙, 동숙, 당숙으로 이름짓는 이상한 휴머니티도 아직 지구상에 백의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러한 끼리끼리 문화는, <눈 하나>의 동네에 사는 <눈 둘>의 대상에 대해 배척의 울타리를 쳐대며, 종국에는 절대가치를 희석시키는 '하향평준화'를 도모하고 만다. 그러기에 필수적으로 생산되었던 '상대 죽이기'에는 남 좋은 얘기는 절대적으로 용납되지 않은 묵계를 지켜 내게 되었다. 그것을 종교의 계명처럼 가슴에 새기며...

    자기의 단점을 알려면 선거(選擧)에 나가 보라고 한다. 너무나 적나나하게 파헤쳐진 자신에 대한 온갖 정보는, 미처 자신이 모르는 일까지 흑색, 적색, 탈색까지 섞어져 상대의 목적수반용 도구로 사용된다. 그러나 예술하는 사람들은 복잡하게 선거에 나가지 않아도 이러한 색도(色圖)분석에 상시 무료로 초대되고 있다. 다 제 잘난 맛에 하는 것이라 하지만, 상대를 눕혀야 자기 손이 올라가는 세상사의 이치에 가장 민감한 곳이 이 바닥이라 하지 않는가.

    어느 분의 칼럼집에 '주위에 좁은 국량(局量)을 지닌 사람이 더러 있으면 주위는 항상 조화를 잃고 갈등을 빚게 된다'며, 대개는 제 시계(視界)와 심력(心力)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하였다. 이들이 망각한 가치기준의 일치에는 객관적인 능력이 개입되어야 하며, 또한 합리적인 판단이 무엇보다도 소중하다는 내용에 절대적인 공감을 한다.

    그렇다면 우리네 한계시력은 어떠한가? 20대의 활약에 대해 주위는 친절한 고무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30대의 발전에 대해 주위는 애써 무관심 하려 한다. 40대의 성과에 대해 주위는 경쟁의 비판을 독화살처럼 허공에 난사한다. 50대의 업적에 대해 주위는 이와 아무 관계없는 치명적인 허수(虛數)를 대입하여 전복시키려 한다. 60대의 공덕에 대해 주위는 애써 20대의 활약으로 화두를 옮기고 있다.

    이러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자해(自害)의 싸이클(cycle)로는 이제 절망밖엔 거둘게 없다. 목적을 위한 흑색의 음해에 대해 어른이나 아이나 따가운 일축이 아쉬운 현실이며, 절대의 진리에 대해 원칙을 고수하는 우리의 양식이 절실하기만 하다. 그러기에 계보와 실익에 우선하여 질서를 와해하는 목적을 오히려 부추기는 양식들이 역겹다. 눈감고 코끼리 등을 매만지는 일에 희희낙낙 하여, 하나라도 매장의 구렁텅이에 더 처넣고자 하는 졸부들의 예술관에 인간적 연민을 보낸다. 그 귀 얇은 연륜과 식견들에 하염없는 위로를 던지고 싶다.

    작업의 가치관이나 평가기준이 애매한 아날로그식 20세기를 보내며,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이 왕따를 당하는 세태를 나무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진정한 목적과 개념이 바르게 서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개개의 반성은 철저한 현상의 이해에서 비롯될 것이다. 비록 아날로그적 융통성이 예술 행위의 윤택함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천분의 일초까지 구별해내는 달리기의 선별이 아닌 행위의 예술이라는 것은, 그 아날로그적 판단으로 본질에서 이탈하는 잡기의 논조에 경거망동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 식의 태양을 우리네 옥상에 띄우면 된다. 21세기의 디지털이 우리의 예술판에 들여대는 잣대는 '가치와 개념의 회복'의 분명한 눈금자면 족하다. 프로이드가 역설한 '다소 이상한 정신 소유자들인 예술가'들의 딱지를 우리 손으로 벗기기에 로댕의 유언(遺言)이 새삼스러운 것은 무엇일까?

    '거장(巨匠}이라 함은 이미 남들이 다 보고 지나간 것을 다시 숙시(熟視)하는 자'임을 갈파한 로댕은, 작품에서나 인간사에 얽혀진 문제에 있어서나, 결코 시류에 편승치 않은 자기만의 명쾌한 해석을 새롭게 이루어 내는 것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새로운 세기에는 이러한 거장들이 어지러운 난세를 해원상생(解怨相生)으로 전환하여, 새로운 독립적 카리스마들을 금강산 일만 이천봉 만큼이나 세워줬으면 한다. 덧붙여 카리스마에 대한 새로운 인식도 겸해서 말이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카리스마란 '절대적 마력에 가까운 설득력'인데, 그 능력은 '대중의 화합을 위해 분신(焚身)'하는 선각자의 소임임을 희원하면서 말이다.

[全北藝總] 1999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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