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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기업이 나서야 한다


[全北 藝總]---'기업과 문화'

이제 기업이 나서야 한다

박 병 도

 

지난 11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태평양 아시아 국제문화회의]는 문화적 갈등기를 관통하고 있는 한국민의 문화적 정서에 잔잔한 충격을 던져 주고 있다.

오욕의 역사를 씻어 내자는 구 조선총독부 잔재의 철거로 부터 각종 문화유산의 이름을 고쳐 민족적 자긍심을 복원하자는 오늘의 시점에서, 이러한 문화자존의 딜레마를 초극하자는 의지가 또다른 구체적 방안으로 논의되었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한다.

그간, 문화적 협안(狹眼)을 가눌길 없었던 위정자들의 구호는 항상 오천년의 유구성을 휘장 처럼 번뜩이며 자긍심의 강제적 발로를 부추켜 왔는데, 이러한 일련의 기만적 문화메시지가 문예향수의 상대적 빈곤감을 가늠치 못하게 했던 주 요인임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상대적 문화자존심은 경복궁 앞 뜰에 박힌 말뚝숲의 제거를 놓고도 찬반공론으로 연신 호들갑이다.

그러나, '21세기는 동아시아의 시대라고 말하지만 이제 그 관건은 경제가 아니라 문화'라고 규정한 이 심포지엄에서는, '문화르네상스가 없는 동아시아의 미래는 보장 받지 못한다' 는 인식을 같이 함으로써, 경제발전의 기치를 드높여 인간적 삶의 영유를 보류해야 했던 많은 동아시아 국가 민족의 여유로운 한숨을 재발견하는 자리인 듯 하였다.

우리는 이제라도 찬란했던 과거 선현들의 문화적 우위성을 제고하면서, 경제발전이 매장시킨 문화적 상실감을 복원하고 회복하자는 노력이 국가나 개인이나 기업이나 사회 모두가 책임져야 할 몫임을 깨달아야 한다. 따라서, 고도의 경제성장으로 전세계의 주목을 받아 왔던 동아시아 국가들의 약진이 최근 주춤하고 있는데, 이것은 곧 문화의 벽에 부딪혔기 때문이며, 현재 세계적으로 문화가 상품으로 교환되고 있는 현실에서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국가가 문화에서 손을 떼고 있는 추세여서 [기업의 메세나] 역할이 더욱 중요해 지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기업의 문화 참여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세계적 추이에 견주어, 유럽이나 아시아 태평양 등 지역 단위 메세나 공동체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이러한 선진형 문화사고(思考)는 이제는 OECD 가입국으로서 당연히 성찰해야 할 도덕적 당위론이기 보다는, 더더욱 현실적으로 이제는 문화의 수용 없이는 기업의 상품도 국가경쟁력의 제고도 무위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듯 싶다.

국가간의 문화적 이질성은 이제 독특한 로컬리즘으로 변환되어, 이제 개발의 여하에 따라서는 어떠한 경쟁의 선점을 확보해 낼 수 있다는 논리를 창출해 내었다. 따라서 유네스코를 중심으로 1970년대 부터 제기되어 왔고, 1988년 부터 추진하고 있는 세계문화발전10개년(World decade for Culture Development)에서는 기존 경제 위주의 국가발전 정책에서 패러다임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유럽과 지중해 연안 15개 메세나 조직위원회인 [유럽기업예술위원회연합(CEREC)]은 이미 우리네 상상의 범위를 벗어난 지원을 펼치고 있다. 그들이 주창하는 아시아태평양 공동체의 지역적 단결의 촉구 또한, 이제는 아시아지역 국가들의 비약적인 경제발전이 누려야 할 '배부른 후의 여유', 즉 인간답게 살 권리를 그들이 권유하고 제시하고 나섰다는 논거가 된다. 그들 서구문명의 우월성이 21세기의 사회적 논리로 새롭게 부각되는 단편이 아닐 수 없다.

소위, 기업이 사회로 부터 빼앗은 그 무엇이 있다면, 응당 이를 반환하고 제공해야 하는 순리기능을 강조하고 나선 선진세계의 기업윤리는, 고부가가치 저임금의 피폐한 소득윤리에 찌들어 버린 동양권의 기업윤리를 차라리 동정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개도국의 경제성장은 문화적 자부심 회복에 많은 기여를 했지만 실질적인 문화개혁은 여러 가지로 미진하였다고 판단된다. 그러한 문화개혁은 정부의 힘으로는 절대적인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그 대안이 바로 기업의 문화에의 참여논리이다. 어찌보면 참으로 이질적인 화두로 와 닿을듯한 문제인 듯 싶지만, 한켠 무시할 수 없는 자본주의 경제논리에 기인하여 매우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 왜냐하면 한 국가의 정치조직, 혹은 그 재편에 까지 영향을 행사하는 수많은 자본유동의 정황이 이를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자연스런 힘의 논리이기도 하다.

이제 문제는, 기업주(企業主)의 기호가 아니라 필연적 선택이어야 하며, 추상적 시기가 아니라 절대적 현실을 놓고 미룰 수 없는 대안이 되고 말았다는데 당황하고 있는 것이다. 성공한 기업주의 한맺힌 과거에의 보상을 증거하는 '고향복지 지원책'이나, 사회적 유화술에 기인한 '육영, 장학, 학원사업'의 사적 종속체 양산의 틀을 깨고 나서야 한다. 이러한 수십년의 패션화된 고정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못 배운 설움을 달래거나, 보릿고개 주린창자에의 회상이 비난의 대상이 될 수는 없으나, 그러한 유형(有形)의 환원보상의 몫에서 일탈하여 무형(無形)의 '불특정 다수인'의 수혜에 무명(無名)을 남기는 지혜의 도덕율이 깨우쳐져야 한다.

이제, 경제가 앞서버린 기형의 사회심리에는 기업의 문화적 대안이 치료제로 작용되어야 한다. 그럼으로 기업이 문화에 접근하는 몇가지 방안을 논의하기로 한다.

첫째, '목적지향의 문화'로의 시각이다. 제조와 소비의 일차적 소득효과에서 미래를 대비하는 과학기술지향적 투자라는 측면이다. 몇십억을 들여 미지의 세계를 개척해 가는 인간본위의 양식에는, 문화가 곧 인류의 풍요로운 삶을 가늠해온 크나큰 가늠자라는 인식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둘째, 자본 기술 경영 등의 생산요소를 유인할 수 있는 문화다. 이것은 기업의 생존논리와 무관하지 않다.

셋째, 문화상품의 개발을 전제로 한 '생산요소로서의 문화'의 창출이다. 문화상품은 이미지에서 비롯하여 실질적 제조의 형태까지 무한하다. 비록 상업광고에 일회용으로 빌어 쓴 전통양식의 이미지일지라도 지속적인 지원과 계발을 심볼화하는 양식이 요구된다. 더불어 문화상품이란 굳이 관광상품이라는 대등논리를 펼치는 부류의 단편적 사고도 경계되어야 한다. 기업이 상품을 가지고 논할 때, 문화가 재료쯤으로나 희석되어지는 사고에 변환이 있어야 가능할 일이다.

넷째, 사회적 자산으로서의 문화다. 이것은 곧 사회기간사업(INFRA-STRUCTURE)처럼 문화도 장기적 안목의 투자가 지속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방치된 마한 백제의 문화유적지를 보고 별다른 감회없는 세월을 조금 더 보낸다면, 언젠가 우리의 기억 속에 아스라히 사라진 전설의 복원에 여러 가지 억측의 픽션이 공룡처럼 난무할 것이며, 이것은 우리는 물론 누구도 가질 수 있는 상상의 세계이기에 차별성을 확보 못할 그 무엇일 것이다. 정부가 벅차다면 이제는 기업이나 사회에 양도할 용의도 서슴치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이러한 문화적 기간에 투자될 종자돈(seed money)을 확보하는 일이다.

다섯째, 가치관으로서의 문화다. 기업이 돈을 버는데도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곧 생산의 철학일 것이고, 문화 역시 늘 생성(생산)과 향유(소비)의 카데고리 안에서 존재해 왔다. 그 철학적 가치관의 변환이 요구될 일이다.

여섯째, 예술적 형태로서의 문화의 양성이다. 이것이 우리현실에서 볼 때, 가장 지원의 선봉을 점유하고 있는 현안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쉬우면서도 단기적 효과를 노릴 수 있는 분야라고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문화분야 가운데는 시장의 기능에 의해서는 효율적인 재화의 생산과 분배가 이루어질 수 없는 영역이 있기에 공공부문의 개입이 불가피해 진다는 논의가 있다. 곧 이윤추구동기에 따라 지배되는 시장의 기능(아담 스미스는 이를 '보이지 않는 손'이라 불렀다)에 의해서는 각종 문화재의 보존 전승 등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장의 실패가 일어 나는 분야는 민간부문의 참여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공공부문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즉, 제한적 국가의 지원이 해소 못하는 그 무엇이라면, 이제는 기업이 나서서 개입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문화관련 재화는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 즉 경제학에서 말하는 [가치재]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기본적으로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하고, 따라서 사회로부터 제공받은 많은 재화의 환원을 이제는 보다 적극적이면서도 구체적으로 시행해야 하는 당위성을 가져야 한다.

기업은 곧 사회인이 조직문화(organizational culture)로 형성한 가치부여를 망각해서는 아니 될 것이며, 이제는 기업 스스로 선진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 택해야 할 새로운 돌출구를 열어야 한다. 일본의 [니세이 극장(日生劇場)]은 동경의 한복판에 번 듯이 자리 잡고, 연일 수백명의 코흘리개 아이들을 귀빈으로 모시고서 휘황찬란한 뮤지컬의 막을 올린다. 그것도 무료로 점심까지 제공하는 속사정을 헤아리니, 이윤의 사회적 환원도 환원이려니와 '미래의 고객'(니세이극장은 일본생명보험회사가 지은 극장)의 뇌리에 선명히 각인시킬 문화적 세뇌라는 또다른 차원을 읽을 수 있어 그들의 문화력 수용은 이미 수십년을 앞서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이 지원하는 문화단체, 문화프로그램은 또 얼마이던가. 나아가, 세계적 경기불황에도 불구하고 일본 기업들의 문화활동 지원은 꾸준히 늘고 있으며, 1996년도 기업별 평균 후원금은 약 9천 7백만엔(약 8억원)을 넘고 있다.

문화는 시장경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데 불가결한 요소가 된다. 과학기술과 교육수준을 포괄하는 개념으로서의 '문화력'은 컴퓨터와 통신의 발달에 바탕한 정보화시대의 시장경제에서 핵심적인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그럼으로 이제는 기업이 나설 때가 온 것이다. 따라서, 네덜란드의 게르트 호프스테트 교수가 지적한 기업문화의 또다른 개념은 매우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기업문화(corporate culture)는 한 기업이 앞으로 5년 후의 재정적 자산을 예언하는데 쓸 수 있는, 한 조직의 심리적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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