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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전북연극제 심사총평


제15회 전북연극제 심사총평

박 병 도 (제15회 전북연극제 심사위원장)

 

지난 4월 24일 개막하여 30일까지 격일제로 시행된 제15회 전북연극제는, 도내 4개 단체가 참여하여 제17회 전국연극제 전라북도예선대회를 겸하면서, 각 극단의 기량을 평가하고, 연극인들의 단합과 발전을 도모하는 열띤 경연의 장이 되었습니다.

4월 24일 군산 [극단 갯터]의 "만선"을 필두로, 26일 전주 [극단 하늘]의 "블루사이공", 28일 전주 [극단 명태]의 "서툰 사람들", 그리고 30일에는 익산 [극단 토지]의 "권경선의 품바품바"가 참가하였는데, 네편 모두 창작극으로서 연극제 본래의 취지인 창작극 활성화에 부응하는 외형적 조건을 갖추었으나, 불행하게도 순수 창작 초연 작품은 단 한편도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전북연극제는 전국연극제의 예선대회를 겸하면서 본선 진출을 위한 티켓을 확보하는 통과의례로 잘못 인식되어져 왔습니다. 또한 기준 없는 <축하공연>의 명분 하에 참가집단의 자존심을 지키려한다는 그릇된 착상을 불식시키려는 집행부의 의지가 반영된 이번 연극제는, 본연의 취지 그대로 경연의 장으로 승화시킨 전환점을 가졌다는 의의 또한 크다고 보겠습니다.

그러나, 연극은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인 양식이라는 점에서, 또한 인간의 가장 소중한 본연의 모습에 대해 사유의 영역을 극대화 시켜 놓는다는 점에서 볼 때, 본 연극제에 대한 심사위원단의 또 다른 임무는 단지 우열을 가려 등위를 정하는 단순기능에 천착될 수 없었음을 고백하는 바입니다.

이는, 작금의 전북연극이 처한 시대적 위기감과 집단적 정체에 반하여, 본 연극제를 통한 발전적 모티브를 발견하여 새로운 탈출의 장이 되기를 충심으로 기원하는데 기인한다고 봅니다.

따라서, 본 심사위원단은 총평에 있어서, 개괄적 총론을 도출하기 위한 세밀한 분석의 기축을 발전적으로 수렴하였음은 물론, 이를 통하여 평가의 근거에 보다 객관적이고자 하였고, 이러한 평가의 자료가 차후 연극제작에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습니다.

본인을 비롯하여 심사위원 전원이 전반적인 심사결정에 의견의 상충 없이 원만한 결과를 도출하였음을 이 자리에서 밝히면서, 다음은 참가작품별 총평이 되겠습니다.

아울러, 재기 넘치는 칭찬의 요소가 산재함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지역연극의 현실에서 각고의 노력으로 창출해낸 수작들에 대해 지적과 비판을 아끼지 않았음은, 비평의 시각으로 연극적 완성을 가늠하였던 전문적 충언이 차후의 제작현장에 반영되어 발전적 성과에 기여되기를 바라는 마음임을 주지하였으면 합니다.

먼저, [극단 갯터]의 "만선"입니다. 천승세의 작품으로서 탄탄한 극적 구성을 바탕으로 오랜 세월 많은 단체에 의해 올려져 이미 사실주의 연극의 전형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작품입니다. 군산 개항 100주년에 걸맞게, 바다를 소재로 하여 아픈 삶의 집단이 갖는 비극적 상황을 독특한 인물군의 전형적인 캐릭터로 무대화하였습니다.

그러나 30여년 전에 발표된 작품이 오늘의 무대에 어떠한 새로운 형상화의 틀을 제공하였는가에 대해 지적하며, 극중 인물 개개인 삶의 제행이 보다 원숙한 극중 상황의 정점에 다다르고 있느냐에 고민해야 할것입니다.

연극은 일차적으로 배우가 이미 살아 보지 못한 삶의 제행에 대해 철저한 자기화의 몫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을, --즉 그 내면의 구체적 융합에 대해 심리적 Inner Motor를 철저히 작동해야 한다는 것을 스타니슬라브스키의 고전적 연기지침 조차도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다양한 인물의 유형이 무대 위에 유기적으로 배합되고, 감동적으로 배양되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연극을 붙잡고 시름하는 근거가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한 극적 갈등이 원숙한 무대기호로 성립될 수 없었던 일차적 요인은, 아무래도 특징 중의 하나인 언어예술로서의 연극적 화법에 관한 문제에 아직껏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는데 있다고 봅니다. 음악적 신호로서의 대사는 하나의 화성의 영역으로까지 분석되어, 인물의 심리나 상황에 반영되는 입체적 음성으로 구사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시종 모노톤의 음성이 전달하는 제인물군의 성격창출은 다양한 심리적 상태를 전달하는데 절대적으로 부족하였다고 봅니다.

실제 우리의 삶은 웃고 울기에 쉽지 않은 복잡하고도 진지한 상황과 감정의 부호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또한 절규한다거나 비통해하는 삶의 편린은, 말 그대로 쉽게 배우의 관념적 라이브러리(Library)에서 뽑아 공식처럼 흉내내어질 성질의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아직 서툴고 연천한 삶의 총체, 즉 경험의 진행과정에 서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연습의 마무리 단계에서 치밀한 정제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이었고, 연기자들의 연기편차가 컸던 것도 아쉬움으로 남았으며, 특히 중심인물의 캐릭터가 약했다고 봅니다.

무대미술은 모처럼 어촌의 사실적인 장치를 대극장에 옮겨 놓았으나, 미술적으로 세련된 균형의 미를 이루지 못하여 동작선의 다양화에 큰 기여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절대적인 연기군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모처럼 연극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을 지역적 특성에 맞게 작품화하였다는 성과는 값진 것이었습니다.

다음으로 [극단 하늘]의 "블루사이공"입니다. 이 작품은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기 발표된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무대형상화의 기법에 있어서 다양한 실험을 동반한 이번 작품은, 작가적 상상을 넘어서 독창적인 재해석을 얼마나 확보하였는가에 고민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는 한편의 무대형상화 과정이 <작가의 의도, 연출의 해석, 배우의 구체화 행동>이라는 수순에 입각한다면, 다분히 작가의 관념적 이미지화에 충실한 텍스트를 놓고, 발전적인 새로운 양식과 기법의 생산영역을 확대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뮤지컬이라는 음악양식을 도입한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인데, 예를 들어 희곡에 명시된 수순에 의해 노래가 대입되어야 했으며, 또는 지시된 지문에 의해 가감 없는 노랫말을 따라야 했는가는 재고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즉 작가의 상상력이 연출의 창조적 능력에 의해 재조합되어야 하는 필수적인 형상화 과정에서, 정리되지 못한 극적 혼란스러움을 초래하게 한 원인이 다름 아닌 음악이었던 것입니다.

6.25의 상흔과 빨갱이의 악몽, 월남전의 비극과 베트콩, 이와 무관하지 않은 90년대의 고엽제 환자가 병렬적인 수법으로 공존하는 무대에, 여러 가지 테크닉적인 요소로 말미암아 정리되지 못한 혼란스러움을 전가하였다는 점은 차후 재정리되어야 할 문제인 것입니다.

이러한 연출적 과욕은 심사위원 전원이 공감한 바, 단순한 상징적 이미지마저 다단계의 매커니즘에 여과시키려는 미학적 카오스를 탈피하여야 할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형상화과정은 다분히 아름답게만 보이려는 미술적(여기에는 조명도 포함되지만)환타지에 집착한 결과라고 보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오류는 연기군을 침잠시키는 역기능을 초래함과 동시에, 자극적인 연출미학에 희석되는 인물들의 개성적 리얼리티를 보상해야 할 과제를 남기고 있습니다.

특히 뮤지컬을 표방한 플롯의 전개과정에 있어서, 일단의 배우군이 갖는 가창력의 한계는 극의 유기적 완성에 반승하고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할 것이며, 여러 가지 음의 신호--즉 배우의 라이브한 목소리, 와이어레스를 통한 목소리, 여러 가지 이펙트 음악, 녹음된 보컬 등 --가 혼재한 무대는 현장성에만 치우친 나머지,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메커니즘에 희생되는 인간의 휴머니티를 살려내는 연극적 품격에 도달하는 원론적 접근에 미약하였다는 것입니다.

극장은 어떠한 이유로든 작가적 메시지가 전달되어야 하며, 관객의 수용은 어떠한 다양한 기법 속에서도 명확한 전달지점을 파악해야하는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행위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확실한 concept의 light와 절제 못한 sound의 혼합 속에 시청각적 실험을 감내해야 하는 문제 또한 퍽 곤혹스러운 것이라 하겠습니다. 즉 무엇보다도 "절제의 미학"에 눈을 돌리는 형상화의 일대 재고가 요구됩니다.

한편의 작품을 조합하기 위한 여러 가지 장르적 소스는 매우 신중히 대입되어야 할 성질의 것입니다. 예컨대 <안무적 요소>나 <작곡화된 음악적 요소> 또는 <전환을 위한 효과음악>등은, 컨셉에 반하는 연출적 판단이 작용한다거나, 배열의 신중함을 놓친다거나, 유기체적 요소로 변환되는 연출적 주문이 와전된다거나 했을 때, 효과적으로 사용됐다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대입을 위한 대입이라는 불량의 섹터가 되어 함량미달의 소스로 존재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예선을 포함하여 전국연극제 본선은 그러한 효과적이고도 경제적인 극적 조합을 전문가적 시각은 요구하고 있으며, 의도가 치기가 되어서는 아니 될, 자존의 영역을 시험하는 장이기도 합니다.

또한 배우의 연기를 돕는 연출의 능력은 부단한 실험 속에서도 결국은 주제의식에 선명한 도표를 정립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점에서 볼 때 여러 가지 발전을 위한 지적이 산재함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우리는 본질적인 극예술 발전을 위한 자기 반성적 話頭를 세워야 하겠습니다.

즉, 제반의 극은 --예컨대 리얼리즘, 부조리, 전위를 떠나 양식과 형식미의 차이라는 외형적 옷을 달리 입지만, 내면의 행위는 어떠한 부호나 기호로라도 설명되어질 "극적 리얼리티"가 생명력으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이해하자면 먼저 배우의 존재를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연극은 관념의 머리보다는 뜨거운 가슴을 요구하는 가장 순수한 표현의 원천을 고양시켜 왔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다음은, [극단 명태]의 "서툰 사람들"입니다. 이 작품은 소극장용으로 제작된 블랙코메디 형식의 작품입니다. 소수의 인원이 등장하였음에도 고른 연기를 보여 준 성과에 주목하며, 다만 비뚤어진 사회상을 반추하여 훈훈한 관심과 사랑의 힘을 빌어 상황을 반전시키는 전개의 힘에 좀더 힘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전체적으로 깔끔한 장치는 매우 기능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사용된 효과음악 등은 적절한 극적 감흥을 북돋는데 일조 하였다고 봅니다.

그러나, 배우의 동선이 장치에 크게 용해되지 못한 아쉬움이나 각이 배제된 연기의 앙상블은 극적 오소독스를 살리는데 부족하였다고 봅니다. 나아가 극적 갈등을 증폭시키지 못한 원인으로 배우의 대사력을 들 수 있겠는데, 풍부한 감성을 지닌 배우들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호흡의 대사표현이 단절됨으로 인해, 스토리텔링으로 풀어 가는 이 작품의 유익한 재미를 상실시키고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다양한 심리적 반향에 대한 다양한 감성의 대응은 배우의 입장에서 볼 때, 연극에 참여한 새로운 즐거움을 획득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세심한 연출적 가이드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음을 누차 주지하여 왔습니다.

또한 극의 기승전결은 극적 볼륨감을 어떻게 구축해 나가느냐 하는 문제와도 연결될 것입니다. 상황진전에 따른 감정의 변화, 유기적 정서, --즉 같은 시간대의 동일 인물을 보고 있더라도, 상황의 차이에 의해 전혀 색다른 컬러의 이미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X-1,569번의 슬픔이라든가, Q-27,823번의 회한이라든지 하는 다양한 이미지 표현의 영역을 추측해야 할 것입니다. 어차피 살아 보지 못한 비경험의 실체를 흉내내는 배우의 일이기는 하지만, 어떠한 '다양한 상상력의 가능성'을 배제하고는 연극은 단순한 기능의 이야기 전달체로 하락하였을 것입니다.

특히 이 작품은 대사 위주의 전형적인 극전개의 폼(form)을 갖추고 있는 바, 모노톤이 제공하는 지루한 감성의 캐릭터는 이후 극복해야 할 과제로 남습니다. 많은 페이소스의 전달치가 목적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점에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극단 토지]의 "품바 품바"입니다. 심사위원단은 이 작품의 신규창작 여부에 대해 유감을 표하면서, 그 틀거리가 김시라 원작의 상당 부 궤를 같이 함을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작품을 보면, 천장근이라는 거지가 민족의 암흑기로부터 사회의 혼란기에이르면서 겪게 되는 삶의 여정을, 걸쭉한 재담과 타령을 무기로 풀어가는 것인데, 이 권경선의 품바는 단지 그 천장근이라는 역을 여자로 분하였다는 사실이며, 그 차별성은 궂이 여성적 이미지의 품바가 갖는 새로움에 기인해야 할것이라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인극이 갖는 연기력, 가창력의 쟁점을 연출적인 안목은 배려하였는가를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타령의 중요한 몇 곡은 고수에게 전가하였으며, 많은 축략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상황전개의 무리한 점프는 작품의 구성에 적잖은 문제라고 보겠습니다.

그러나 길지 않은 경륜에도 불구하고, 권경선씨의 열연은 시종 관객을 이끌고 나갔다는 점을 심사위원단은 평가하였습니다.

이상과 같이 심사의 평을 정리하면서, 우리 심사위원단은 저으기 전북연극이 맞이해야 할 새로운 세기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첫째는, 표현의 양식에 있어서의 참신성에 관한 문제입니다. 모방과 베끼기의 아류에 낙인 받기보다는, 오히려 참신하고 정직한 어설픔이 존중되는 창작의 바탕이 구축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둘째, 진지한 연극적 완성에 매진하는 폭넓은 학습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무대적 효과와 기교에 얽매인 극적 조합은 감동의 장을 창출시키지 못함으로써, 본질적인 연극행위의 전승에 크나큰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 보다 전문적인 작품제작의 장치를 확보하여야 할 것입니다. 즉 극단은 작품창출의 기본단위입니다. 분명한 목적의식과 작품성향을 이슈로 하여, 전문적이고도 실질적인 기구와 지속적인 탐구과정을 진행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붕당의 과정을 거듭하고 목적에 의한 소신을 저당 잡는 정치판과 흡사하여서는, 예술창작의 과정은 지탄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이러한 소박한 바램이 작품제작에 진력하는 후학들에게 영양분으로 제공되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진정한 감동은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 본연의 모습을 탐구하는 자기성찰에서 비롯된다는 소박한 메시지를, 여러분의 피땀어린 감동의 무대에 첨언하면서, 이상으로 심사의 총평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999년 5월 4일

제 15회 전북연극제 심사위원장 박 병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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