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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창고

문화 완장(腕章)을 염려한다

가구향리폐(家狗向裏吠)라 하여 집에서 기르는 개가 집 안쪽을 향해 짖는 경우를 두고 이율배반의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떠올리게 된다. 나아가 나뭇잎 하나가 눈을 가린다는 뜻으로, 단편적이고 일시적인 현상에 미혹되어 전반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깨닫지 못하는 일엽장목(一葉障目)은 또 어떠한가?

 

옛말에 ‘속 아는 놈이 더한다’는 자조 섞인 말이 있다. ‘문화’를 좀 안다고 ‘완장’을 채워 줬더니 문화예술인들의 운신을 더 옥죄고 있는 문화권력이 이 시대에 번연히 존재함을 염려함이다. 현대 사회는 전문영역의 분야별 특성을 존중하고 그 전문성을 높이 사 효율적 관리를 하려는 목적으로 소위 재단(財團)을 두고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의료, 금융, 소프트웨어, 복지, 문화 재단 등에 이르기 까지 수많은 직능별 재단이 조직되어 있지만, 그 주된 목적은 개인이나 단체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기초문화재단으로는 1996년 강릉문화재단이, 광역문화재단으로는 1997년 경기문화재단이 최초 설립되면서 지역문화재단의 시대가 열렸고, 광역과 기초문화재단은 설립의 우선순위가 없이 해당 지역의 필요에 의해 각자 다른 목적으로 설립 추진되어 왔다. 기초문화재단은 주로 문화예술시설 운영을 위해 설립되었고, 광역문화재단은 지원사업과 문화정책 사업 추진을 위해 설립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최근에는 기초와 광역이 점차 사업 영역을 넓혀 기초문화재단도 지원과 문화정책사업 등 문예진흥사업을 펼치고 있으며, 광역문화재단도 문화예술시설 및 단체를 운영하는 곳도 늘고 있어 그 업무가 중복되어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예술창작인 또는 단체의 지원책이 주된 업무일진대, 문제는 알만한 예술 창작의 주변인(혹은 유경험자)들이 재단의 주요 직책을 맡으면서, 이 조직들이 점차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는 지원 세력화가 되어 간다는 점을 지적한다.

 

근래 재단이 없는 일부 시도의 문예진흥기금 지원 심의가 시도에서 위촉하는 심사위원들에 의해 선발되어 지는 형태를 유지하면서, 공무 조직이 갖는 경직성도 어느정도 해소되면서 오히려 공정한 업무처리를 위해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막대한 지원 집행이, 소위 전문인력의 수급으로 보다 전문성을 띤 지원정책을 도모하자는 재단구조에서, ‘선무당이 사람 잡는’ 역효과가 일어나고 있음을 지적 한다. 오히려 문화예술계의 뿌리 깊은 인적 카르텔과 계보, 작품 성향에 따른 역차별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염려가 팽배하다.

 

얼마 전, 모 시의 문화재단이 추진하려던 ‘대표문화상품 활성화 사업’의 공연 건이 하나의 좋은 예가 되겠다. 재단이 임무를 부여받고 개발하려는 이 사업의 총연출을 영입함에 있어서, 영업흥정이 아닌 사안에 이리 재고 저리 재며 시간을 다 소진하더니, 그들이 꺼내 놓은 ‘계약서’는 건축 토목공사 계약서가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의 <수퍼 울트라 갑>의 횡포로 일관된 내용을 제시하였다.

 

자유로운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하나의 총체적 대표문화 상품을 창출해내야 하는 피 말리는 작업에 있어서, 예술인의 자존조차 무시하는 일종의 ‘제약(制約) 백서’와 같은 내용을 담아 놓기 급급함이 대체 어떤 발상이란 말인가. 창작행위 전반을 아우르는 ‘을’의 권한은 미세하고 책임과 의무와 제한만 덤터기를 씌워 놓는 계약서를 생산해 냄이, 이 시대 시민이 위임한 재단의 권력이란 말인가.

 

동병상련이라 했건만, 오히려 이런 ‘노예계약’으로 현장 예술인들을 속박하고 길들이며 얄팍한 문화세력의 펜스에 가두고 마는 행위가 자행되고 있음을 어찌 이해해야 하는가? 나아가 작품 창작행위의 과정에서 내용의 심의나 간섭도 마다하지 않는다하니 이런 어이없는 월권조차 위임된 사안인가. 이것은 곧 도끼를 들고 연못으로 들어가는 게부입연(揭斧入淵)에 다름 아닌 계륵(鷄肋)이 창궐한 횡포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순환 근무하는 공무원도 그리 못할진대, 한때 문화예술인이라 호칭 받고 문화예술의 주변에 발 담갔던 이들의 사고방식이라니 더더욱 참담함을 감출 길 없다. 따라서 이런 조직을 만들어 놓고, 이들을 믿고 시민을 위한 문화향유의 정책진단과 사업실행의 권한을 부여한 위정자가 이를 알고나 있을까 염려 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정중관천(井中觀天)이라 하여 우물 속에 앉아 좁은 하늘을 바라보며 ‘제 눈의 안경’만을 찾는 우매함이나, 인순고식(因循姑息)으로 구습에 매달려 목전의 안위만을 취하는 무지몽매의 사고방식이, 손가락으로 바다의 깊이를 재는 이지측해(以指測海)의 어리석은 감투를 쓰고 앉아 그들만의 세도잔치를 벌이고 있다. 21세기 문화강국 대한민국에서.

 

박 병 도 (전주대학교 문화산업대학 공연엔터테인먼트학과 교수, 연출가)


[새전북신문 칼럼-2013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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