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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창고

몽환(夢幻)의 문화시대

현대사회는 축제신드롬에 빠져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詩學)에서 말한 ‘모방본능’으로부터 발전한 쉴러와 스펜서의 ‘유희본능(play instinct)’은 인간이 먹고 마시고 노는 것에서 특별한 희열을 느끼는 특성을 말해주고 있다. 구글 포털사이트에서 ‘축제’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152만개의 웹문서가 검색된다고 한다. 인기 검색어인 ‘연예인’이 88만 9천개, ‘섹스’가 60여만개라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오늘날 현대인이 축제라는 화두에 얼마나 관심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단면이다.


그러한 축제는 대개 지역 특성화를 내세워 1992년도 지방자치 실시 이후 뚜렷하게 증가세를 보여왔다. 1996년도 문화체육부의 통계에 의하면 412개의 축제가 2005년에 이르러 1천여개로 증가하였고, 이후 난립한 축제에 대한 비판에 의해 지역에서도 축제의 통폐합을 실시하여 이전의 숫자로 다시 줄어든 현상으로 유지되고 있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학습비용을 지불한 결과라 하겠다.


민선지방시대 지자체장들의 민심통합장치로서의 축제 활용도는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도 적지 않아 때론 마른 나무에서 물을 짜 내려 하는 건목생수(乾木生水)의 지혜가 발동하기도 한다. 남이 장에 가니 나도 가본다는 식의 무분별한 축제의 난립이 지역색에 오히려 혼돈을 일으키면서, 전문성의 오남용이 가져 온 예산집행의 불합리적 운용으로 지방정부에 재정적 타격을 가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정작 지역주민들은 참여도 즐기지도 못한 채 장님 코끼리 몸 만지듯 축제라는 전시행사에 들러리로 전락한 신세가 되었다.


지역마다 고유한 전통과 풍습이 남아 있어서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를 발동하여 글로컬리티(Grobal+locality)의 전방위적 특색을 가진 아이템을 개발하여야 할 소중한 국민의 세금은, 한 잔의 물로 수레에 가득 실린 땔나무에 붙은 불을 끄려 하는 능력부족의 배수구거(杯水救車)의 어리석음에 소비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따라서 되지도 않은 ‘실험’을 해를 거듭하여 반복하는 우매함은 아무도 말리지 못하는 절대권한이 되고 남음이 있다. 총감독을 바꾸고 정체성을 변명 ․ 합리화 시켜가면서 까지 알아주지도 않는 ‘국제화’ ‘세계성’을 공허하게 외치고 있는 투박한 뚝심이 오히려 세계적이라면 세계적이다. 그나마 양식있는 적잖은 이들은 이를 보며 ‘염불보다 젯밥’을 탐한 결과라 질타한다. 그러나 어떠한 변화도 없다.


오는 10월 3일부터 6일까지 올려지는 <울산 처용문화제>의 ‘Ulsan World Music Festival'에는 “판소리, 프라멩코와 만나다”를 개막공연으로 15개의 해외 음악프로그램과, Asia Pacific Music Meeting'에 “에스테레”를 비롯한 11개 아시아 뮤직 프로그램이 꾸려져 있다. ’동경 달 밝은 밤에 밤늦게 노닐던-‘ 처용설화에 의거하여 프로그램을 펼쳐 놨는데, 이것이 우리 지방의 어떤 사운드축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차림이라는데 아이러니를 느낀다. 남의 상을 놓고 왈가왈부 할 일은 못된다. 하지만 우리의 잔칫상 차림이 좀 더 특화되고 차별화된 소재 개발과, 이로 인한 연속성을 가진 장기 안목의 연희작품배양(incubation performance) 프로그램으로 확장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간 단발성, 전시성, 복잡성을 지닌 혼돈의 역사는 지자체장의 당대 발복을 추구하는 조장발묘(助長拔苗)의 욕심에서 시작되고 끝이 난 것에 다름 아니다. 이렇듯 빨리 자라라고 모를 뽑는 성과(成果)주의에 천착한 우매함은 이제 파퓰러 연예인의 인기까지 영입하여 지역의 자존심을 스스로 깎아 내박쳐 버린 무례한 ‘반지역정서’ 횡포를 마다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존도 자긍도 존엄도 없는 것인가. 아니, 바닷가 황량한 벌판에 세워진 조악한 공연장에선, 이상한 방식으로 계약을 체결한 외지 이벤트 기획업체가 국적불명의 공연을 이 지역 상품이라고 버젓이 내세우며 공연하고 있다. 이런 이상한 행태가 빈번하니 작품이나 공연물 보다는 오히려 모든 과정이 기이하고 더 극적이며 재미난 드라마적 요소로 고루 비춰지고 있다. 또한 조악한 당위는 전년대비 상승한 매출을 내세우며 합리화하고 있다. 기획사에 투자한 액수의 3할도 못되는 수입금이 최선일 수 없으며, 아울러 황량한 바닷가가 수익구조의 적합지가 아니란 것은, 이 사업 자체가 경제논리로 풀어서는 않되는 지역문화 제공역할에 충실해야 함을 지적하는 것이다.


나아가, 공연제작 구조가 아닌 조직에 대표브랜드공연 제작을 맡겨 크레믈린식의 진행을 해오더니 그나마 이 지역 최소 자존심이었던 연출자마저 중도 하차하고, 이제는 지역과의 아무런 소통없이 ‘브랜드’ 마크를 뗀 공연으로 수면 밑에서 진행되는 현상까지 초래하고 있다. 이렇듯 지역의 현안이 철저히 지역이 배제된 채 추진되어 온 몽환의 분야가 바로 문화라 하겠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러한 문화적 전횡이 아무런 저항없이 자연스레 이어지는 현상에 대해 지탄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관의 무소불위에 침묵하는 지성과 문화 오피니언 리더들의 역할과 소임에 대해 비전문가 그룹인 일반인에게서 질책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당연한 목소리다. 문화계가 혼을 나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언제까지 지역의 자존과 역할을 방기하며 눈치만 보고 있을 것인가? 이러한 기이한 문화현상에 대해 아무런 할 바를 모르고 있는 지역문화의 자존은 이미 달아나 버린 양(羊)을 찾듯이 절대가치 조차 포기해 버린 오리무중으로 망양지탄(亡羊之歎)을 노래하고 있다.


이렇듯 민선시대의 현학적 권력형태가 보여주는 기형적 사대주의 정책이 난무한 시대가 일찍이 없었다.

이처럼 암중모색의 문화위민의 시대가 일찍이 없었다는 말이다.


박 병 도(전주대학교 공연엔터테인먼트학과 교수, 연출가)


새전북신문 칼럼-2013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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