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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창고

점이(漸移) 시대의 SNS

통화기능 이외의 잡기(雜技)로서 고작 테트리스 블록이나 깨던 폴더폰 시대를 보내고 스마트폰시대에 우리는 참으로 할 일이 많아졌다. 똑똑한 이름값을 하는 그 재주 많은 기계는 손바닥 안의 세상에 참으로 넓은 세계를 가깝게 가져다 놓았다. 삐삐(pager)의 ‘일방호출’을 아스라한 추억의 저편으로 넘겨버린 ‘상호소통’ ‘다중소통’의 장을 소셜미디어의 이름으로 열었기 때문이다.


한국언론학회가 펴낸 ‘정치적 소통과 SNS’를 보면, 소셜미디어의 특성은 인간이 지닌 ‘연결의 욕구’를 극대화 하여 자기만족을 이루어 준다는 데 있다고 기술한다. 나아가 ‘연결욕구’는 ‘사회비교 욕구’와 불가분의 관계로 발전한다는 것인데, 개인과 개인 간의 연결에 시간과 장소의 제약이 뒤따랐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 어디서든 스마트폰만 꺼내들면 많은 관계망과 연결이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기에, 이를 통해 타인과 자신과의 끊임없는 ‘사회비교’(social comparison)의 욕구를 충족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비교의 욕구는 자기의견이 옳은지, 자기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은 마음이다. ‘인간은 대체로 자기 의견이 다른 사람과 무난하게 비슷하기를 바라며, 능력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앞서기를 원하는 경향이 있다.’며, 타인을 찾을 때 의견 비교를 위해 자기의견과 비슷한 자를 찾고, 능력을 비교하기 위해서는 자신보다 약간 더 나은 사람을 찾는 것이라 한다. 그래서 관계의 소통망은 순기능의 차원으로 본다면 동질성과 진취성의 확보라는 차원에서 기여를 하는 셈이다.


사회관계망 연구(SNA)에는 사회학, 심리학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인류학이 빠질 수 없다. 인류학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 또한 문화다. 생물적인 측면을 넘어선 당시대의 문화를 용해하지 않은 연구나 사례는 설득력이 없다. 따라서 우리가 먹고 자는 것 이상의 보편적 ‘문화 테제’와 그 ‘문제의식’을 공유하지 않는다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는 자기배설이 될 소지가 크다.


사람들은 흔히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경향이 있다. 이것을 ‘선택적 노출’(selective exposure)효과라고 한다. 나아가 자신의 관심이 큰 내용에 ‘선택적 주의집중’(selective attention)을 기우리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SNS 이용자는 자신의 의견과 반대되는 내용에는 관심보다는 기피와 반박의 심리가 발동하여 ‘기존신념의 강화효과’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초입의 관점에는 지인의 숫자 불리기였을지 모르지만 각론에 들어가서는 ‘가차없는 인연’으로 치부되는 현상인 ‘관계부정의 심리’가 발동한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울타리 정서로 시작된 것이 순식간에 ‘우리가 언제 봤다고?’로 변환되고 결말지어지기 일쑤다. 참으로 쉽고도 편리한 기능이다.


한편 아고라의 토론방이 아닌 이상 페이스북의 댓글은 결코 전투적이지 않으며 시시비비를 가리는 논쟁의 공간으로 활용되기를 꺼려한다. 주의가 집중되면 ‘좋아요’를 누르고 아니면 패스하면 되는 솔직한 무관심 지대가 된다. 즉 ‘편파적 선택심리’, 그리고 거기서 발전하여 ‘유유상종’의 팔로잉이 실천되는 지점이 형성된다. 간혹 감정의 ‘자기시위’를 하는 연애나 단위 소사이어티의 낙오자가 뜻 모를 허무함을 제공하곤 하지만.


능력보다는 의견의 비교가 주를 이루는 SNS는 자신의 잘못을 일부러 홍보할 이유가 없는 곳이기에 주로 ‘자기제시’(self-presentation)가 이루어지면서 정작 ‘자기감시’(self-monitoring)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 크나큰 맹점이 있다. 누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생각이나 잡념까지도 스스럼없이 고백하기를 마다 않는다. 심지어 인류가 공히 매일 느끼는 그 공복증세인 ‘배가 고프다’는 말도 거리낌 없다. 검사받지 않아도 되는 일기장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해소도 정신건강에 이롭다면 다 ‘자기만족’의 선택사항일 것이다. 때로 철저히 계산된 컨셉으로 일관된 이미지 관리에 열중함이 보여지는 것을 스스로는 모르는 작위(作爲)도 있고, 반면 과잉된 자기감시로서 ‘투명인간’을 자처함도 허다하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입지자들의 운신은 이미 여러 곳에서 노출 된다. 포착이 가능하기에 노출이 성립되고, 그러기에 온갖 기제(機制)를 다 동원하여 단계별 접근방식에 머리 복잡해 진 SNS시대의 생존방식은 ‘금붕어를 어항에서 꺼내놓는 시간 정하기’의 레벨만큼 흥미진진하다. 즉 노출의 정도에 대한 고심이다. 허나 분명한 것은 여기에 ‘기득권’이라는 것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솔직담백한 자기고백이 더 공감대를 형성하는 지름길임을 알까 모를까. 정작 공사가 다망한 입지자들의 관심표명은 매우 중요함을 망각한 채 입질만 분주하다. 기왕지사 시작한 것이라면 배고픔도 정성껏, 원망도 정성껏 경청하고 봤다는 표식을 해야 하는 것을 간과하고 있음도 아이러니다. 자신의 ‘관계망’ 안 표심은 자신의 손이 덜 가는지 마음이 덜 가는지를 금방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아직도 ‘자기제시’에 봉착해 있는 어리석음으로는 애초에 이 관계망을 설정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


묘하게도 Social Network Service의 약자인 SNS는 의학의 ‘교감신경계’(Sympathetic Nervous System)와 표기를 같이 한다. ‘부교감신경’과 함께 자율신경계를 이루는 개개의 원심성 말초신경인 교감신경처럼, 그 무엇과 조화를 이뤄야 하는 것으로서의 SNS는 이 시대에 어떤 결핍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 ‘못 갖춘 마디’로서의 기능 중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이용하는 자의 ‘도덕률’이, 지금 우리가 관통하는 시대의 중요한 ‘문화가치’로 변환되고 있는지를 숙고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박 병 도 (전주대학교 공연엔터테인먼트학과 교수, 연출가)


[새전북신문 칼럼]-201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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