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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잠들어 있는가?

[새전북신문 칼럼] -2013 11 11


제나라에서 한때 재상을 지냈던 안자(晏子)는 아주 키가 작았으나 말재주가 뛰어났다. 안자가 초나라 사신으로 갔을 때 왕이 안자를 골려주려고 무례히 빈정거렸다.


“그대와 같은 난장이가 우리나라에 사신으로 온 것을 보니 제나라에는 사람이 없는 모양이군.”


이에 안자는 초연히 대답을 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인재가 너무 많아 서로 어깨가 닿고, 발꿈치가 부딪치며, 소매를 올리면 태양이 가려져 그늘이 드리워지고, 사람들이 땀을 흘리면 비가 내리는 듯 한데 어째서 사람이 없다고 하십니까?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규칙이 하나 있는데, 이를테면 잘 나고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좋은 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재주와 덕을 두루 갖춘 왕을 만나고, 저와 같은 자질노둔한 자는 이곳 초나라에 찾아와서 대왕과 같은 분을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통쾌한 한판 승부라 하겠다. 어깨를 걸어서 나란히 한다는 뜻으로, 낮고 못함이 없이 정도가 서로 비슷함을 이르는 말로서, 고사에는 ‘비견접종(比肩接踪)’이라 기술하고 있다.


한 나라의 문화는 지역과 도농(都農), 신분과 계급을 떠나 백성의 의식주를 해결하기 이전에 두루 채워져야 한다. 어느 나라건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는 있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민도가 높은 민족일수록 고유의 독창적인 ‘문화가치재’를 두루 공유하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정복의 기치를 대외만방에 두루 펼치던 알렉산드로스는 도처에 헬레니즘 문명을 전파하고, 정복지마다 알렉산드리아로 지명을 명하기까지 하였다. 그는 곳곳에 세운 알렉산드리아들을 이어준 도로망과 화폐들을 통해 문화, 교통, 상업 분야에서 놀라운 교류와 큰 발전을 이루어 내었으니, 오히려 정복지들은 이방인의 의지에 의해 뿌리어진 문명의 가치재로 오늘날 관광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역사는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하물며 오랜 시절에도 이방인이 문화와 문명의 가치를 전파하던 테제가 존재할진대, 오늘날 한 국가의 문화쏠림 현상은 기이한 문화편중과 더불어 이제는 ‘문화 사대주의’ 근성까지 배양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지역의 문화사대현상이 타성이 되어버린 이 시대가 참으로 서글프다.


시쳇말로 이제 누군가가 임금 앞에 나가 아뢰기를 “우리 고을의 고급문화는 모두 외국의 정상들 앞에 보여주고, 저 같은 각설이는 전하 앞에 나서 타령이나 부르는 규칙이 있사옵니다.” 라는 불경의 상황이 벌어질 일도 낯설지 않겠다.


과거 MB정부의 문화장관이 이 고장에 탯줄만 묻었다 하여 각료의 전북 안배라 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그러한 일이 반복되어지는 요새 상황도 나랏일이나 지방관가 일이나 별반 다를 게 없어 또 세간의 구설에 오르고 있다.


전북도가 추진해 온 ‘전북대표브랜드공연’이 전북 출신이라 하는 수도권의 연출자를 영입하여 추진되고 있음을 아는 이는 안다. 그나마 우리 지역의 자존을 지켜주던 이 지역의 젊은 연출자가 중도하차한 문제는 그 속내를 더 깊게 알아봐야 할 비하인드 스토리로 세간의 궁금증이 되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영입된 연출자에 의해 준비되는 브랜드공연이 출연진 태반을 모두 타지에서 불러 들여 이 지역 작품이라고 제작되고 있는 점, 이 지역 참여자라 하여봐야 연주자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바라 봐야 하며, 어떤 이해 수용의 법칙을 들이대어 ‘전북 대표 브랜드 공연’이라 받아 들여야 하는가?


그것도 국비 5억원이라는 작지 않은 금액을 투입하면서 말이다. 나랏돈 5억원이 쌈지돈이 아닌 바에야 어디 흔히 받아 낼 액수며, 날이면 날마다 배급되는 사업의 지원금이란 말인가.


비려비마(非驢非馬)라 하여 당나귀도 아니고 말도 아니라는 뜻으로, 무엇과도 같지 않음을 이르는 말이 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비루한 ‘노새’라 칭하기를 서슴치 않는 게 인간사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어떻게 잘못 되어져 여기에 이르게 되었는가? 도내 예술계, 단체 또는 연합체에서는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인가? 좋은 게 좋다고 서로 얼크러 설크러 눈 질끈 감고 속 넓은 이해를 도모하자는 것인가? 어느 지역 인재와 예술인을 위한 집합체이며 어떤 지역 사업과 예술행위를 관장하는 기관들이란 말인가?


문화와 예술이 사회의 시금석이 될 수 있음은 바로 질풍경초(疾風勁草)와 같이 꺾임없는 뜻과 기개를 가지고 시대와 역사에 바른 흔적을 남기는 일이기도 하다. 바로 이러한 막중한 소임을 망각한 채 예술과 문화가 ‘정치논리’와 ‘정략적 관계’에 의해 무원칙의 묵인으로 일관한다면, 이미 우리는 우리 스스로 행하는 제행의 예술작업에서 스스로의 목숨을 던져버린 허망한 존재로 전락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정치가 혼탁하면 문화와 예술이 그 정화와 정제(精製)의 바른 필터링을 작동해야 할 일이다. 오늘, 후세에 부끄럼 없는 문화개체로서의 존재가치를 우리 스스로에게 자문해 봐야 할 일이다.


박 병 도 (전주대학교 공연엔터테인먼트학과 교수, 연출가)


http://www.sjb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46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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