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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려비마(非驢非馬)의 정체성

[전라일보 칼럼] -원문


대본 작가, 작곡 ․ 편곡자, 연출자, 안무자, 연기지도, 지휘자, 무대 출연진(1명 제외하고) 전체가 비전북인이다. 이제껏 전북에서 활동한 바가 없으니 모두 이 지역 예술인이라 할 수 없다. 이들이 자칭 ‘전라북도 브랜드공연’이라 이름 붙이고 국비 5억원에 도비 2억원을 쓰면서 전라북도의 주관 하에 계사년 세모를 “춘향”이로 장식하고 있다.


전북도가 재작년부터 전라북도 산하 전북발전연구원에 용역을 주어 밑그림을 그려 온, 그러나 MB정부의 4대강 사업도 아닌데 왠 “언더 플레이냐?”고 그 불투명성이 꼬집혀 온 불편한 진실의 브랜드공연. 그것은 최소한의 지역 공동체의 소속감에 생채기를 주고, 향토를 위해 묵묵히 이 땅의 예술을 지켜 온 지역파수꾼들을 무시해버린 폭거였다. 그렇게 정해진 주제가 ‘춘향’이었고, 형식은 마당극 스타일, 무대화는 첨단 영상과 혼합된 판타지의 창출, 장소는 전북예술회관을 20억 들여 리모델링한다는 보고서를 백 여 페이지로 작성하여 제출하기에 이른다. 어떤 설문경로로 춘향인지, 왜 마당극 스타일이어야 하는지, 무대는 왜 트러스트(thrust stage) 돌출무대이어야 하는지 아는 이가 없었다. 그 비밀스런 과정을 아는 이가 별로 없었으니까. 더구나 외지 관광객과 외국인들을 관광과 연계한 인바운드 문화상품화 한다는 거창한 계획을 넣어놓고 말이다..


필자를 비롯한 문화예술인, 도의회의 거센 반발이 뒤따랐다. 도대체 뭘 알고나 하는 일이냐. 이런 보고서로 위정자의 혜안을 어지럽혀서야 쓰겠느냐 라고 충언하였다. 그 후 어찌된 일인지 그 엄청난 용역비가 들어간 계획은 무산되는 듯 하더니 올해 와서 다시 재개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당초의 용역임무가 완수될 때까지 알만한 공연계 인사들은 한 번도 그 진행 소식을 접하지 못하는 ‘물밑 프로세스’가, 이제는 적당한 ‘과정 맞추기’로 급하게 흘러갔다. 이 지역의 작가, 연출가, 기획자 그룹 등을 차례로 불러서 좌담회를 열더니, 맡겨 놓은 것도 없이 무작정 아이디어를 꺼내 놓으란다. 상심들은 있지만 그래도 우리고장 일이니 돕자고 아낌없는 충언을 하였다. 다만, 이 고장 예술계가 어디 가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자존과 실력이 있으니 지역인재 중심의 브랜드공연이 추진되었으면 한다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 이름을 건 우리 브랜드 공연이니까 말이다.


관계자는 어렵게 확보한 국비 5억원을 연말까지 집행하고 그 결과물(out put)을 보여주어야 하니 선택의 여지없이 협조를 구한다 하였다. 그래, 올해 잘해서 넘기면 내년에도 또 확보되는 나랏돈 챙기기에 보탬이 되 드리자고, 과거지사를 털고 앞날을 기원해 주었다. 그런데 그것은 이 지역 문화계를 만나는 봤다는 표식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모든 조언들은 요식행위로서 모두 폐기처분 되고 말았다. 한마디로 이 지역 예술계를 기만했다는 말이다.


well made play처럼 잘 짜여진 프로세스는 그것이 하나의 통과의례였음을 아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추진단장을 중앙에서 영입하더니 연출도 그 나머지도 다 수도권이더라 이 말이다. 하물며 연주단 빼고는 다 외지인들로 짜여진 전라북도 브랜드공연. 예향 전북의 이름을 떼어 죽어버린 새만금 갯뻘에 파묻어 버릴 일이 생긴 것이다. 두 눈 시퍼렇게 휘하 예술단(전라북도립국악원 예술단 : 창극단, 무용단, 관현악단)이 있고, 전주시립예술단을 비롯한 도내 여러 개의 관립예술단을 비롯한 전문 민간단체가 수두룩한데도 굳이 중앙에서 모셔 온 것이다.


자식을 믿지 못하는 부모나, 식솔의 소속을 부정하거나, 아니면 결정자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지 않는 한 일어나지 않을 일이 일어 난 것이다.


무슨 연유였을까? 소리축제에 이어 새만금 상설공연부터 외지인, 외지업체를 끌어 들여 무리하게 지역정서를 자극해야 했던 말 못할 변수라도 있단 말인가? 전라북도 브랜드공연이라는 게, 전라북도가 전북을 대표(정체성의)로 내 놓는 대표문화상품이라는 것을 몰라서 그러진 않았을 터, 누구와 어떤 협의로 양해를 얻어 그런 간판을 내 걸었단 말인가? 전라북도 예술인들에게 할복도(割腹刀)를 던져준 격이 아닌 바에야 우리는 국적불명의 서양식 뮤지컬이 우리의 원형이자 정체성인양 외지인들에게 우리 얼굴로 나서는 모습을 두고 어떻하란 말인가? 모두 잠들어 있냐고, 전북 예술인들은 배알도 없냐고 부르짖기를 여러 번. 백번 양보하여 내용이 그럴듯하다 해도, 외지인이 우리 이름으로 분칠하고 나서는 모습을 집안에서 바라보며 굴욕을 삼키라 어찌 후배들에게 말하며 고개 들 수 있겠는가 말이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치장되고 오로지 상업적 흥행에 천착하여 말초신경 자극적인 서울의 흥행공연물 스타일을 전북의 자태라고 올려놓은 것이다. 십년을 연마해도 목 트이기가 쉽지 않다는 우리의 ‘판소리’를 변학도는 서양식 창법으로 가벼이 능멸하고 있다. 그것이 전북의 소리인가? 한국무용이 아무리 재창작 되었다 해도 이해 불가능한 - 부둥켜안고 허리와 엉덩이를 부벼 대는 - 흥행오락주의는, 차라리 이것이 내수용으로 도민의 정서를 마취 시키자는 것에 다름 아니며, <오락이 브랜드>고 브랜드공연 무대의 <물랑루즈 Moulin Rouge>化가 목표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를 묻고 싶어 참담할 뿐이다.


브로드웨이의 ‘레미제라블’이나 ‘사운드 오브 뮤직’이 변신하여 장발장이 수도원장으로 뒤바뀌어 나오고, 마리아 수녀가 여염집 아낙네로 나온다면 시공을 초월하여 만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까? 원전의 무리한 변형은 대학로 소극장식 리메이크에 조급증이 걸린 패착이다.


하고 많은 남도민요를 두고 경기민요가 판을 메우는 꼴은 제작진의 DNA가 모두 이 지역의 것이 아니기에 그런 것이며, 서울 경기 브랜드공연에 남도민요를 차용할 여지가 있는지 차라리 경기도에 묻는 게 빠르겠다.


부처 눈에 부처 보인다고 했다. 다 수준만큼 노는 것이라지만 그래도 격과 품격의 최소가치를 아는 시각이라면 이래선 않된다. 전북의 문화예술인들이 어떻게 가꾸어 놓은 품격인데 이리 처절하게 능멸해야 한단 말인가? 파란 눈의 외국인에게 보여 준다면서 제작진 이름만 영문으로 올리고, 내용은 자막 한줄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것이 전북도 사상최고의 7억 투자 작품의 실태란 말인가?


억센 사투리만큼이나 다양하고 독특한 지역문화와 정체성. 여러 각지에서 모여 변질되고 희석된 중앙의 ‘짬뽕문화’가 자극적이고 유희 오락적인 눈요기에 일조했다하여 지역브랜드라고 간판을 건다면, 문화관광부는 지자체에 보조금으로 돈을 내려 보낼 일이 아니라 차라리 아예 서울에서 모두 제작 완성시켜 각 지역에 작품으로 내려 보내 주는 것이 나을 성 싶다. 행정편의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비려비마(非驢非馬)라 하여 당나귀도 아니고 말도 아니라는 뜻으로, 무엇과도 같지 않음을 이르는 말이 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비루한 ‘노새’라 칭하기를 서슴치 않는 게 인간사다. 이제 유엔에서 공연하는 한국 대표의 한국브랜드공연도 브로드웨이 예술가들을 사서 만들어 선보여야 할까보다. 뿌리도 자존도 없는 양식들 이니까.


박 병 도 (전주대학교 공연엔터테인먼트학과 교수, 전주대학교 공연예술전문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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