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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열원래(近悅遠來)

[새전북신문 칼럼]-2013. 1. 6.


논어에 이르기를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이 찾아온다 하였다. 이천 오백년 전 춘추전국시대에 섭공(葉公)이라는 초(楚)나라 제후가 있었다. 백성이 날마다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떠나니 인구가 줄어들고 세수가 줄어들어 큰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초조해진 섭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님, 날마다 백성이 도망가니 천리장성을 쌓아서 막을까요?’ 잠시 생각하던 공자는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 여섯 글자를 남기고 떠났다.


사람을 소중하게 대하라 하면 흔히들 가까운 사람은 제쳐두고 남에게 잘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부모, 배우자, 자녀, 상사, 동료, 부하직원, 친구 등 허물없는 이들에게 먼저 잘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아닌가 깨닫게 하는 말이다. 즉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해줘야 멀리 있는 사람이 찾아온다’는 ‘근열원래(近悅遠來)’는 정치, 기업경영, 가정사, 친구관계를 망라한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원칙이라 할 수 있겠다.


말띠의 해가 밝았다. 예전에는 듣지 못했던 십이지간의 동물들이 이 시대에 와서는 여러 동물들로 채색되어 회자된다. 청마(靑馬)니, 흑사(黑蛇)니 해서 특별한 의미를 찾는 것이다. 뭔가 새로운 가치를 염원하고 힘든 생활의 피난처를 간구함이 아닌가도 생각해 본다. 청마는 서양에서는 유니콘이라고 불리었고, 일본에서는 이마의 외뿔로 인하여 일각수(一角獸)라고 불리었다.『욥기』 39장 9절 이하에서는 들소의 강력함이 이야기되며, 『신명기』 33장 17절에는 ‘그의 소의 첫 새끼는 위엄이 있으며, 그 뿔은 들소의 뿔 같아서, 이로써 온 나라의 백성을 모두 쓰러뜨리고 땅 끝까지 미친다’라고 했는데, 『70인역 성서』에서는 헤브라이어 성서중의 들소가 <일각수(monokerōs)>라고 번역되어 용맹하며 강한 동물의 이미지가 정착되었다 한다.


하지만 머리가 좋고 경계심이 강한 전설의 유니콘은 어떤 방법으로도 잡히지 않았다는데, 오직 유니콘이 유일하게 마음을 놓는 존재, 즉 ‘더러움을 모르는 소녀’를 써서 유인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평소에 항상 긴장 속에서 지내는 유니콘은 한꺼번에 피로가 몰려오는지 소녀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들어버리는데, 그때를 노리면 유니콘을 생포할 수 있고, 또한 유니콘은 소녀가 하는 말만 듣는다고도 알려져 있다.


그러기에 그 ‘소녀’는 무심(無心)으로 세상의 하찮은 가치조차 차별을 두지 않은 공평의 눈이며 사익을 좇지 않는 마음이라 하겠다. 저 ‘벌거숭이 임금님’을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착한 마음씨’의 대명사로서 오피니언 리더의 덕목을 대변하는 존재의 표상인지도 모른다. 거친 세상의 파고에도 오로지 시제(時制)에 구애받지 않는 ‘진리’와 괘를 같이 하는 신념과 철학만이 강하고 용맹하고 힘든 세파를 넘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갈등과 반목의 이천 십 삼년이 떠나갔다. 우리 곁에서 영원히 작별을 고한 것이다. 세인들은 새해에 어떤 그림을 그려 우리 삶에 윤택한 성찬을 차릴 것인가가 주된 삶의 목표가 되고 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 하나 ‘내려놓기’가 어렵고, 나 하나 ‘비우기’가 쉽지 않은 세상에서 주변을 살피며 세파의 속된 가치에 저울질하는 자신을 얼마나 파악하고 있는가. 그런 자신을 보며 배우고 깨우칠 자식과 후학들의 눈을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섬뜩하고 두려운 생각이 든다. 세상의 그 어떤 형벌보다 무서운 것이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 나는 여겨왔다. 그것이 두려워서라도 배우고 익히기를 게을리 말아야 할 것인즉, 알고 느끼는 만큼의 도덕률이 내재되어 나의 판단척도와 기준이 되는 것 때문이 아닐까.


새해에는 제발 ‘자기와 가까운 사람들은 가슴 아파하고 멀리 있는 자들만 기분 흐뭇한 일 처리’인 ‘친통구쾌(親痛仇快)’의 우(愚)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 어쩌면 그것은 이제 우리에게 던져진 해원상생(解怨相生)의 화두이기도 하며,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귀한 사명이기도 하다.


가는 귀 먹은 자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듣기 싫은 말은 듣지 못했다’는 편리한 아집의 편린이 치유되어, 모든 것이 올바르고 정직하게 세상에 바로 서는 날이 어서 빨리 도래하기를 소망한다.


‘복숭아꽃 오얏꽃은 아무 말이 없어도, 그 자태와 향기에 취해 많은 사람이 오고가니 그 밑에는 자연히 소롯길이 생긴다’는 도이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 下自成蹊)의 심중이 오늘도 나의 방에 걸려 나를 일깨운다. 굳이 ‘근열원래’라는 어려운 한자 성어를 찾지 않더라도 성경말씀에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귀한 메시지는 새해를 맞이한 우리에게 두고두고 간직해야 할 삶의 덕택(德澤)이 아니겠는가.


박 병 도 (전주대학교 공연엔터테인먼트학과 교수,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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