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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길을 왜 고집 하는가?

[새전북신문 칼럼]-2014.2.3.


어느 날 종각(宗慤)의 작은 아버지인 종병(宗炳)이 물었다.

“너는 이다음에 커서 무엇을 할 것이냐?”

“저는 바람을 타고 거센 물결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참으로 용감하고 씩씩하구나. 큰 뜻을 지닌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며 매우 기뻐하였다. 남북조시대 예주자사와 옹주자사를 지낸 종각의 기개를 엿보는 일화다. 이는 바람을 타고 성난 물결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가며 높고 큰 뜻이 있음을 이르는 말로 남사(南史) 종각전(宗慤傳)에 ‘승풍파랑(乘風破浪)’이라 기록되어 있다.


설을 쇠었으니 이제 갑오년이 되었다. 세시풍속에 따라 소원성취와 무병건강을 비는 덕담이 오고 간다. 덕담은 던지는 자의 기원도 중하지만 받는 자의 의지와 포부가 성취의 갈래를 좌우하기에, 종각처럼 거친 자연을 비유하여 인생의 웅지를 펼쳐 보이는 기개 또한 불확실한 이 시대에 필요한 덕목이라 하겠다.


살다보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는 파란만장이 펼쳐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건 ‘군자는 식언이비(食言而肥) 하지 말아야’하는 행동의 중심이 있어야 한다. 노나라 대부인 맹무백(孟武伯)의 헛소리와 신용불량은 그의 주군인 애공(哀公)의 불만거리였다. 어느날 주연의 자리에서 애공의 신임을 받는 곽중(郭重)을 질투한 맹무백이 한마디 던진다.

“곽대인은 무얼 드셨기에 그리 살이 쪘습니까?”

이 말을 들은 애공이 역겨운 나머지 맹무백을 빗대어 한마디를 던진다.

“곽대인이 늘 식언을 하는데 어찌 살이 찌지 않겠소?” 곽중을 대신하여 던진 이 한마디가 자신에게 던지는 것임을 알아 챈 맹무백이 할 말을 잃었다는 고사가 바로 ‘춘추좌씨전’에 ‘식언이비’로 전해지고 있다.


비대해진 국가권력. 거기에는 쓰레기보다 값없는 공약이 난무하고 당리당략에 사로잡힌 무소불위의 전횡만 존재한다. 이에 뒤질세라 지방관가에도 주어진 직권이며 완장이라고 ‘조자룡 헌칼’ 휘두르는 권한남용이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만행되는 세상에 우리는 아직 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발표에 의하면 ‘일과 삶의 균형’이 최하위인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는 점은, 민간의 생활(일)과 관(官)의 법치가 전혀 무관하지 않은 상황에서, 백성에게 위임받은 권한이 오용되는 그릇된 현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국민행복지수가 바닥인데, 언론은 방글라데시가 1위라며 역설적 자위를 강요하는 궤변의 혹세무민이 가능한 나라가 또 바로 이 나라다. 지원의 원칙과 법칙이 무시되어 ‘예쁜 놈 떡 하나 더 주고, 미운 놈 매 하나 더 주는’ 방약무도한 권한이 자유자재로 이루어지는 나라. 그것은 먼 곳의 얘기가 아니다.


도민의 정서는 아랑곳 하지 않고, 문화예술인의 자존과 희망을 깡그리 무시하며, 현장의 목소리는 귓전에도 없는 오만방자의 문화예술정책의 ‘시작용자(始作俑者 : 어떤 사건을 만들어 낸 장본인)’가 무소불위의 힘을 쓰는 시대가 21세기를 관통하고 있다. 주군은 아는지 모르는지, 논공행상의 자리가 그대로 껌딱지처럼 눌러 붙어 좀체 떨어질 줄 모르는 사당(私黨)형 민선 지자체시대. 전문이라는 완장을 차고 현장인을 길들이며 무지몽매한 목적을 탱크처럼 밀어부치는 비전문가가 득세하는 동네. 아직도 이러한 병폐가 아무런 제재나 제한없이 이상한 술수로 유지되고 용인되는 고장이 아직도 존재한다. 민의가 노도처럼 솟구치고 들불처럼 타오르던 동학의 진원지에서.


조선시대 내외의 관원을 천거 또는 전형할 때 가장 많은 권한을 가진 ‘전랑(銓郞)’의 관직이 있는데, 이조(吏曹)의 정5품직인 정랑과 정6품직인 좌랑을 각각 3명씩 두어 그리 불렀다. 동인이 정랑에 임명되면 서인이 좌랑에 임명되어 서로를 견제하도록 하는 균형도 이미 그때에 존재하였다. 그러나 21세기 첨단 한국의 민선시대에는 그런 것이 없다. 모든 직은 ‘캠프’와 ‘줄’로 이어지는 불편한 진실 속에 백의종군의 무위를 신념으로 굳히는 자가 오히려 이상한 현실로 살아간다.


요(堯)임금이 허유(許由)에게 왕위를 물려주려하자 - 자기 일을 벗어 나 남의 일을 대신해 줄 수는 없다고 말한 – 허유의 ‘월조대포(越俎代庖)’의 양심이 살아 숨 쉬어야 할 텐데 말이다.


전북예술 사상 초유의 7억이나 들여 만든 브랜드공연이, 전북의 인재를 쓰지 않고 오로지 타지의 작가, 작곡가, 연출자, 안무자, 출연진에 의해 올려져, 천년의 예술혼이 살아 숨 쉬는 이 지역 문화예술인의 자존을 깡그리 무시해 버린 일이 작년 말에 일어났다. 그런대도 뭐가 모자라, 올해도 그대로 다시 올린다고서 듣고 싶은 말만 듣는 의견수렴으로 치장하고, 입맛에 맞는 진행을 도울 도우미로서 자문위를 구성하여, 껄끄러운 도 대표의 딱지인 ‘브랜드’ 명칭을 뗀다고 까지 하면서 기어이 타지의 그들에게 다시 주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문화부에서도 올해 공연은 (이 지역 인재로) 다시 만들어도 좋다고 하는 마당에, 도 문화당국의 이러한 막무가내 식 처사를 도민은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납득할 수가 없다. 말로서 애도(愛道)하고 공약(空約)으로 외친 지역 일자리 창출의 ‘식언이비’가 따로 없음이다.


따라서 새해엔 양식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되어, ‘승풍파랑’하자는 이 고장 예술인들의 신념에 ‘시작용자’가 더 이상 상처를 주지 않는 ‘월조대포’의 순리를 되찾아 주기를 거듭 지적하고 당부한다. 상식과 순리가 세상을 이롭게 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박 병 도 (전주대학교 교수, 공연예술전문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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