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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공행상(論功行賞) 불식 천명을 요구한다

홍수가 나면 황하의 물이 범람하여 강가의 소와 말이 보이지 않을 정도여서 항상 우쭐대던 황하(黃河)의 신 ‘하백(河伯)’이, 황하의 끝 북새(北塞 : 북쪽 변새邊塞)에 이르러 망망한 대해를 보고는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에 북해 신은 하백에게 전언한다.

 

 

“우물 안 개구리는 바다가 어떤가를 모르며, 여름 한철을 사는 곤충은 겨울이 어떤지를 모르오. 나는 넓은 우주의 일부분이기에 지금껏 한 번도 우쭐댄 적이 없소. 그대가 이곳에 와서 바다를 보고 뉘우친 것은 큰 깨우침이오.”

 

 

끝이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아 하백이 탄식의 노래를 불렀다는 ‘망양흥탄(望洋興嘆)’은 이렇게 생겨난 말이다. 사람이 아무리 잘 나도 보이지 않고 잡을 수 없는 경지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겸양지덕은 삶의 중요한 덕목 중에 하나가 아닐까.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인 ‘리어왕’에게는 딸이 셋 있었다. 그는 은퇴할 산수(傘壽)의 나이가 되자 딸들을 불러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묻는다. 사랑의 정도에 따라 영토와 재산을 물려주겠다는 것이다. 첫째 고너릴과 둘째 리간은 온갖 미사여구로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늘어놓는다.

 

 

“제 사랑은 말로 표현 못합니다. 자유보다 소중하게, 가장 값지고 희귀한 것 이상으로, 입에 담기에 부족할 사랑으로, 그 어떤 한계를 다 넘어 전하를 사랑합니다.”

 

 

리어왕은 그들에게 각각 영토와 재산의 3분의 1씩을 하사한다. 이제 남은 것은 리어왕이 가장 사랑하는 막내 코딜리아. 그녀는 언니들의 위선과 거짓에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 딸이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 무슨 가식과 감언이설이 필요할까 반문한다.

코딜리아는 결국 ‘자식된 도리에 따라서 전하를 사랑할 뿐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왕은 막내딸의 얘기를 듣고 분노하여 그녀의 몫을 첫째와 둘째에게 나누어 줘 버린다.

 

 

실권을 장악한 언니들은 마침내 사악한 속내를 드러내 팔순의 아버지를 학대하더니 결국 궁에서 마저 쫓아낸다. 나아가 고너릴은 둘째 리간까지 독살하고 결국 막내 코딜리아까지 흉계로 목숨을 빼앗는다. 비극의 전형을 보여주는 스토리텔링이다. 믿음과 신뢰에 대한 기준, 진실이 거짓에 우롱 당하는 현실의 단면은 언제나 이렇게 비극으로 귀결된다.

 

 

‘흉중생진(胸中生塵)’이라 하여 마음속의 고통과 비애 따위의 감정을 이르는 말이 있다. 또한 이러한 정황은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이라 하여 만나는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게 되고, 떠난 자는 반드시 돌아온다 하지 않았던가. 태조 이성계의 함흥차사(咸興差使)가 상심의 발로라면, 한식(寒食) 절기의 근원인 ‘개자추(介子推) 콤플렉스’는 진(晋)나라 문공(文公)에 대한 개자추의 보상심리가 저지른 결과여서, 현대인의 관점에서도 상시 대입 가능한 이야기다.

 

 

유월 지자체 단체장 선거에 즈음하여 입지자들의 출판기념회가 하나의 출사표로 트랜드화 되고 있다. 전장의 장수가 던지는 진군의 포효가 ‘서권기 문자향(書卷氣 文字香)’으로 탈바꿈하여 인심을 모으는 형국이 된 것이다. 하지만 무늬만 지방자치시대인 가난한 ‘지역의 형세’는 그야말로 ‘문화와 예술’의 정체와 뿌리, 그리고 그것의 세계화를 염두(念頭)하는 혜안을 앞에 두지 않는 한 그 어떤 제세치민도 중앙의 결단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세상 아닌가?

 

 

떠나는 자의 공과를 숙지하여 새로운 ‘진정성’이 현실로 거듭 나는 구체적인 ‘문화정책’이 진심어린 지역위민의 공경심에서 되살아나야 할 일이다. 이는 명예와 명성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음을 명심하는 ‘명불허득(名不虛得)’의 겸양으로서, 오만방자한 권력 제행의 유혹을 초극하려는 ‘논공행상 불식천명(拂拭闡明)’으로 답해야 할 것이다. 지역민의 흉중에 고통을 주지 않는 믿음과 진실의 척도를 정직하게 제시해 주기를 염원하는 것이다.

 

 

박 병 도 (전주대학교 공연엔터테인먼트학과 교수,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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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일보 칼럼]-2014.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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