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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하는 세월

SNS에서 두 장의 비교되는 사진을 보았다. 일본 대지진 당시 난민들을 수용하는 학교 강당의 모습과, 이번 세월호 참사 피해가족이 머무는 진도실내체육관의 장면이 그것이다. 전자의 사진은 네모 반듯한 칸막이가 질서정연하게 설치되어 피해가족들을 분산 수용하고 있고, 후자는 수많은 담요바닥 위에 각양각색으로 널브러진 모습으로 방치된 모습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국격의 차이라고도 말한다. 또는 배려와 방관의 차이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그렇게 단순히 비교할만한 대상이 아닌 듯 하다. 일본의 모습은 사적 프라이버시 존중의 시각으로도 해석 되겠지만, 진도의 모습은 아픔과 비통을 함께하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는 울타리로 보여 지고 해석되기도 한다. 슬픔은 나눌수록 좋듯 서로 마주하며 비통함과 간절한 소망을 나누는 우리네 정서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모습이라고도 하겠다.

 

 

우리는 예로부터 이웃 간에 사이좋게 지낼 수 있도록 자치적인 규약을 만들었는데, 예컨대 ‘향약(鄕約)’을 통해서 같은 지역의 사람들은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고 지역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스스로 예방하고 해결해 나가기도 했다. 또한 계(契)나 동약(洞約), 두레, 품앗이 등도 같은 맥락에서 상부상조의 산물이라 하겠다.

 

 

하지만 정부와 관계당국의 대처는 논리적이지도, 설득적이지도, 올바른 절차적이지도 않으면서 피해가족들과 국민의 가슴에 눈물만 흐르게 하고 있다. 우리네 ‘대동’의 덕목에 반하는 의식과 수준으로 지극히 이론적 이율배반에 빠져 있을 뿐이다.

 

피해가족들의 인터뷰 내용은 이렇게 세상에 절규한다.

 

“저들은 한 개의 창조정신도 발휘하지 못했다. 바지선을 대고 잠수부가 작업하는 것이나, 머구리 잠수부를 활용하자는 등 여타의 방법들 모두 우리가 제시한 내용을 모방한 것이다.”

 

“부모들이 오보에 놀아난다는 식으로 보도해요. 정부는 정말 잘하는데 부모들이 조바심을 낸다고요. 290명 넘게 갇혀있었는데 한 명도 못 구하면 이상하다고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제가 30대 때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어요. 10년마다 사고가 나는 나라에서 제도를 바꾸려고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아요. 지금 SNS하면서 울고만 있는 젊은 사람들, 10년 뒤에 부모 되면 저처럼 돼요. 봉사하든 데모하든 뭐든 해야 돼요.”

 

“다 정리하고 떠날 거예요. 나 대한민국 국민 아닙니다. 이 나라가 내 자식을 버렸기 때문에 나도 내 나라를 버립니다.”

 

이렇듯 어떠한 연민의 끈도 이을 수 없는 정부와 국민의 연대는 세월호와 함께 침몰하고 말았다. 누가 이 비통한 세월을, 이 한탄스런 세태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까.

 

영국 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는 ‘반증 가능성(Falsifiability)’ 이론에서 ‘절대적 진리는 지독한 편견’일 뿐이라고 역설했다. 이론은 오히려 틀릴 가능성이 있을 때만 제대로 설 수 있다는 것인데, 반론이 가능하고 이를 이성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분위기에서 최선의 결론을 얻는다는 것이다. 이적지 자기도취에 빠져있는 정부와 위정자는 ‘다름과 차이, 그리고 틀림’의 반론을 인정하기를 꺼려했다.

 

이름조차 하수상해서 도대체 무슨 뜻인가 했더니 세월호의 세월이 ‘세상을 초월’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 세상을 초월해서 정부와 청해진은 독선과 아집으로 구명정 하나 펴지지 않게 진실을 묶어 두었는가? 선장과 선원들도 이단(異端)으로 잘 알려진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의 핵심 신도인 것으로 알려졌고, 1987년 발생한 오대양사건에 이은 참극이 왜곡된 진리를 전파하는 집단에 의해 또 저질러진 것이다. 참으로 가혹한 인간이 만든 재앙이다.

 

남의 슬픔이 곧 내 아픔이라 여기는 국민. 이웃의 상심이 곧 나의 고통이 되는 정(情)의 민족이, 오늘날 한 푼의 값어치도 못되는 일전불치(一錢不値)의 정부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모두 일엽편주가 되어 지금 진도 앞바다에 표류하고 있다.

 

박 병 도 (전주대학교 공연엔터테인먼트학과 교수, 연출가)

 

[전라일보 칼럼] 2014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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