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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창고

심허(心許)와 어목혼주(魚目混珠)

“비록 입으로 약속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틀림없이 약속했다”

마음이 이미 허락했다는 ‘심허(心許)’를 두고 풀이하는 말이다.

춘추전국시대 오나라 왕 ‘수몽’의 넷째 아들 ‘계찰’이 서나라 왕이 탐을 내었던 보검을 주지 못하고 나중에 찾아가 주려하니 이미 그 왕은 죽고 없었다. 결국 왕의 무덤 앞에 찾아가 절하고 나무 위에 보검을 걸어 놓고 왔는데, 신하들은 하지도 않은 약속을 왜 지키느냐고 묻자 그리 말했던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참으로 많은 ‘진실’과 ‘허구’ 속에서 갈등하게 된다. 겉모습만 보고 다 알 수 없는 것이 세상사거늘, 속도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개개의 톱니바퀴로서 구성원 하나하나가 각자의 몫을 구축하기에 사력을 다해야 함이 현대인의 고충이다. 그러한 조직의 일원으로서 상하관계에 있어서의 견제와 감시, 그리고 본분과 역할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덕목이 되고 있다.

작금 오천년 역사의 자긍을 일거에 짓밟아 한국의 ‘자존심의 참사’로 기록될 숭례문, 첨성대, 독립문의 상처는 언제까지 우리의 자존과 정체성에 보상을 다 할 것인가?

국보1호 숭례문 복원공사가 각종 비리에 연루되고 감사원 감사결과는 겨우 복원 6개월이 지났음에도 일부 재시공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빨리빨리 문화’가 잉태한 공기(工期)의 부족에 문화재 장인 단청장의 명성 하나에 의존해버린 공무조직의 안일함은 어떠하며, 또한 화재로 전소한 문화재를 재현함에 있어서 인화성 물질을 사용해 화재에 대한 학습효과를 망각하고 있는 것은 어인 일인가. 천년을 간다는 전통문양은 화학접착제를 사용해 단청 박락(벗김현상)의 심화현상을 초래함으로써 ‘국보 제1호’의 재현공사 실태는 후진적 행정형태의 사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 침몰 참사가 생때같은 인명을 앗아간 백성의 살생행위라면, 숭례문 복원의 실패는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의 역사물에 생채기를 낸 역사의 도살이라 아니할 수 없다.

문화재청이 감사원 감사를 이유로 숭례문 촬영을 금지시켰던 지난해 11월에 단청의 박락은 93곳이었는데, 이후 6개월 만에 공개된 단청을 검사한 결과 무려 506개로 늘어났고 상태 또한 더욱 참담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사건이 불거지자 고백한 ‘친환경 전통안료와 아교 제조기술의 단절’ 사실과 ‘전통기와 복원기술의 소멸’이라는 엄청난 결과는 우리를 절망에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왜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질까? 지자체도 아니고 국가의 중앙관청이라는 곳에서 시행하는 ‘고급인력-전문일처리’ 등식의 결과가 왜 이모양일까?

옛날에 만원과 수량이라는 두 사람이 각각 진주 한 알씩을 얻어서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차에 함께 중병에 걸리고 말았다. 두 사람을 진맥한 의원은 두 사람 모두에게 같은 처방을 내렸는데 “진주를 갈아서 약으로 먹어야 낫는다”는 것이었다.그러자 둘은 그간 소중히 간직했던 진주를 꺼내 놓았는데 만원의 것은 진짜였고, 수량의 것은 커다란 물고기의 눈알이었던 것이다. 이 고사는 진주와 물고기 눈알을 섞어 놓는다는 뜻으로 가짜를 진짜로 꾸민다거나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속이는 것을 말하는 ‘어목혼주(魚目混珠)’의 성어를 만들어 냈다.

면은 군으로부터, 군은 도로부터, 도는 정부로부터 얼마간의 감시와 통제를 받는다. 하지만 정부부처나 기관들의 공과는 어디서 어떻게 효율적으로 관장하는 것인가? 감사원이 있고 많은 필터링의 기능을 요소요소에 탑재해 놓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국가기관의 기만과 태만, 나아가 안일무사의 행태는 그들의 전문성 마저 불신하게 만든 시대를 초래했다.

세월호 참사가 그렇고, 이렇듯 문화재청 같은 기관의 ‘가짜 물고기 눈알 간직하기’ 행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소한 내가 겪어 본 문화기관은 상부조직으로 올라 갈수록 직무기망과 권위적 비효율성 업무행태가 더욱 심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과연 그들에게 ‘국민이 말하지 않고 원하지 않았다’ 해도, 스스로 지켜내는 ‘양식의 심허(心許)’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가?

박병도 (전주대학교 공연엔터테인먼트학과 교수, 연출가)

 

[전라일보 칼럼] 2014-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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