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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確實性 時代의 文化

    네덜란드 출신의 Geert Hofstede 교수는, 나라마다 민족마다 사회마다 개인마다 예측불가능한 일에 대해 참는 정도가 다르다고 피력하며, 이것을 '불확실성 회피(uncertainty avoidance)'라고 규정한다.

    이 불확실성 회피라는 용어는 미국의 조직사회학에 처음 등재되었고, 이것을 다루는 방식은 어느 나라이건 인간제도에서 뗄 수 없는 부분이라고 했다. 우리가 인간 이기에 내일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며,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이 불확실성을 지닌채 살아 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불확실성은 참기 힘든 불안을 유발시킨다. 그러므로 어느 사회에서나 이를 완화 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 왔다. 과학기술로, 법으로, 나아가 종교로 해결해 낼 그 무엇을 찾고자 노력해 왔다. 과학기술은 가장 원시적인 사회로 부터 가장 진보된 사회에 이르기 까지 자연에 의해 생겨나는 불확실성을 피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법률과 규칙은 타인의 행동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불확실성을 예방하고자 노력한다. 종교는 인간의 개인적 미래를 통제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초월적인 힘에 대한 관계이다.

    불확실성의 느낌은 개인적이면서도 또한 부분적으로는 그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과 공유하는 면도 있다. 즉, 불확실성의 느낌도 획득되며 학습된다는 것이다. 일종의 전염이며 감염의 경로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불확실성의 느낌과 이에 대처하는 방식은 그 사회의 문화적 유산에 속하며, 가정, 학교, 정부와 같은 기본적인 기관들을 통해 전이되고 강화된다.이러한 것은 특정 사회의 구성원이 집단적으로 지니고 있는 가치에 투영되고 있으며, 그 뿌리는 지극히 비이성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것들은 한 사회의 집합적인 행동양식이 되어,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논리와 같이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본다.

    '불안'이란 심리학과 정신의학에서 나온 용어로, '일어날 지도 모르는 일에 관해 막연하게 느끼거나 걱정하는 상태'를 지칭한다. 그러나 불안을 '공포'와 혼돈하는 경우가 많은데, 공포에는 뚜렷한 대상이 있는 반면, 불안에는 특정한 대상이 없다는 것이 다르다.

    특정한 대상이 없는 불안 --이것이 현대를 관통하는 많은 조직구성원들을 위축시키는 시대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수많은 경쟁과 극복 속에 지탱해 온 현실의 보장을 위해, 항상 보이지 않은 적(敵)을 가상현실로 끌어다 놓고 보아야만, 수세(守勢)에 몰리는 불안이든 선공(先攻)을 그려보는 안도이든,현실의 자신을 헤아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불안수준이 높은 문화일수록 더욱 표현적인 문화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런 문화에서는 사람들이 말할 때 대개 손동작을 함께 하는 경향이 있으며, 목소리를 높이거나 감정을 쉬 내비치거나, 나아가 테이블을 탕탕 치는 행동 조차 사회적으로 용납된다. 그러나 어디 표현에 관한 한계가 외형적 의사소통에 국한될까. 수면 밑에서 그려 지는 수많은 이해와 타산의 제스츄어는 더불어 살아 가는 세상을 회색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동쪽 하늘에 태양이 솟는다. 어제도 떳고 내일도 뜨리라는 믿음과 확신은, 어떠한 불확실성의 인류구원의 문제라도 진행을 멈추지 않는다. 이렇게 살다 죽으리란 아픈 자포자기는, 불치의 약을 개발하는 의지도 부질 없는 것이고, 죄값을 사해 달라는 자기중심적인 기도도 어차피 절망적일 것이다.

    세상은 아름다워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했거늘, '에이리 프롬'이 이야기한 마조히즘(넘치는 잔의 물은 부족한 잔으로 흐르고)과 사디즘(부족한 잔은 넘치는 잔의 물을 받는다)의 영역이 어디 미치지 않은 곳이 있을까. 행복의 이원론(二元論)에도 그랬다. 자기욕구를 충족할 재화와 조건을 이룩하든지, 아니면 그 욕구를 버리는 참다움으로 껍질을 깨든지........

    이제, 불확실성의 시대는 건강한 문화를 보지 못한다. 더더욱 생산할 수도 없다. 저 넓은 들판에 서서 땀을 훔치는 농부들의 넉넉한 마음은 대자연의 섭리를 믿고 따른 확신의 결실을 거두고 있다. 믿음과 신뢰로 극복된 가슴들이 내일의 문화를 잉태해 낼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가위 밝은 달이 온누리의 소망을 담아 뜨듯이, 우리의 바램도 그 안에서 진실했으면 좋겠다.

    1996년 9월 17일자 [전북도민일보] 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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