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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창고

나눔의 이야기

    지난 연말 선물로 책 한권을 받았다. 미국의 저명한 카운셀러이자 저술가인 잭 캔필드와 마크 빅터 한센이 공동 집필한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라는 책이다.

    그들은 권두언에 알버트 슈바이쳐의 말씀을 이렇게 인용하였다.

    '때로 우리의 불이 깜박거리며 꺼져가도 그것은 다른 인간 존재에 의해서 다시 지펴진다. 우리들 각자의 불은 그것을 다시 지펴 주는 사람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이성적 판단에 의한 예술행위의 견해는, 대체로 자기 인격 수양의 과정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기능을 초극하는 인격의 완성에 역점을 둔 선현들의 지적은, 많은 이들로 하여금 혜안의 눈을 뜨게한 화두가 되었다. 혼자 하는 예술이든 여럿이 작업하는 예술이든, 이미 주어진 사명에는 자신을 극복해야하는 일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평생을 일구어도 못다 채우고 갈 것 같은 자신의 예술세계에 대한 겸허함은, 부족한 자신을 밝혀 경외의 대상에 감사할 줄 아는 모습으로 아름다워져야 한다.

    서권기문자향(書卷氣文字香)은 몰랐으나, 화풍만은 당대 제일 이었던 吾園 장승업도 일점도사의 깨우침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눈을 스스로 찔러 장님이 되는 빚을 지게 된다. 그것은 참다운 자신의 세계로 다시 태어 나려는 몸부림이기도 했다. 모방과 아류에서 벗어난 진정한 어둠 속에서 새로운 자신의 빛을 찾으려는 새로운 불이 지펴진 것이다. 그들의 사사는 곧 깨우침의 나눔이었다.

    유재주의 소설 '검'에 등장하는 윤파도는 나약하고 의지없던 소년이었지만, 오로지 칼 한자루로 새로운 자신의 세계를 일구어 낸 승리자였다. 그의 칼은 이미 칼이 아니었다. 바람을 가르고, 마음을 베고, 번뇌를 베고, 있음과 없음을 베어 낸, 하나의 仙境이었다. 그가 종일토록 칼을 만지고 있을 때, 그 사물을 다른 각도로 바라 보게한 현인의 알 듯 모를듯한 가르침은, 훗날 득도의 경지에 서서 얼마나 큰 희열로 감읍해 했던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이미 주위의 많은 도움과 보살핌 속에 안착하고 있듯이, 그의 수행은 곧 나눔의 완성을 실행한 일이었다.

    예술행위는 궁극적으로 일종의 의사소통이다. 전시관의 그림이나, 연주자의 선율이나, 배우의 연기나, 무용가의 춤이나 모두 자신의 사상과 철학의 언어를 표출해 내고 있다. 그 소중한 커뮤니케이션은 자신의 세계를 이미 진솔히 까벌리는 용기가 수반되는 일임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기에 예술정신은 진정 진실한 대화의 정신이랄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이 권두언에 인용한 레베카 폴즈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서로를 치료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은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일이다.'

    그렇다. 예술이 사람 사는 세상에서 소통의 기능을 상실한다면, 이제 어떤 세상으로 이주를 해야 한단 말인가. 우리가 자칫 진부한 값어치로 치부해 버릴 수 있는 박물관의 유물들도 긴 역사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 주지 않는가.

    일상이나 예술이나 마찬가지로 일방적인 언어는 대화가 아닌 일종의 통보일 뿐이다. 주체와 객체의 분별없는 교류는 이해와 사랑과 희망을 갖게 한다. 미움과 증오와 편견을 제거한다. 전달에 어려움이 있는 예술의 형태는 이미 쓸모 없는 시대의 낙오물이 되었다. 그러나, 양보없는 교차로에 차량의 소통을 기대할 수 없듯이, 이제 행하는 자들의 일방적인 전달에 앞서 받아들이는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귀우리는 인내와 도량을 생각해 보자. 열린 귀가 무엇을 못담으며, 무엇을 헤아리지 못하겠는가? 그럼으로서 열리는 새로운 이해는 또 그 무엇을 생산치 못하겠는가. 마음을 나누어야 들리는 소리가 있다.

    막 출발하려는 기차에 간디가 올라탔다.그 순간 그의 신발 한짝이 벗겨져 플랫홈 바닥에 떨어졌다. 기차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간디는 나머지 한짝의 신발을 얼른 벗어 그 옆에 떨어 뜨렸다. 함께 동행하던 사람들이 그의 행동에 모두들 의아해 하며 묻자, 간디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어떤 가난한 사람이 바닥에 떨어진 신발 한짝을 주웠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에게는 그것이 아무 쓸모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나머지 한짝 마저 갖게 되지 않았습니까?"

    정축년 새해. 우리 모두의 가슴에 새롭게 펼쳐질 나름대로의 세상이, 이해와 사랑의 나눔으로 더 넓은 희망의 폭을 담아 낼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전북도민일보] 문화칼럼 97.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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