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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창고

공자천주(孔子穿珠)

공자가 얻은 아홉 개의 구슬에 실을 꿰어 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었다. 그때 뽕밭에서 뽕을 따고 있는 한 아낙네에게 그 방법을 물었다. 아낙은 “찬찬히 꿀(蜜)을 생각해 보세요.”라고 전한다. 공자는 이내 깨닫고는 나무 밑에 오가는 개미 한 마리를 잡아 허리에 실을 매달아 한쪽 구멍으로 밀어 넣고 구슬의 반대편 구멍에는 꿀을 발라 놓았다. 그랬더니 개미는 꿀 냄새를 맡고 반대 쪽 구멍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공자천주(孔子穿珠).

공자가 시골 아낙네에게 물어 구슬을 꿰었다는 고사다.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묻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음을 일컬음이며, 배우는 일에 나이나 상하 귀천이 없다는 고사가 아닌가. 공자가 말하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三人行必有我師)’라고 한 말은, 세상을 사는 평범한 지혜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옛말에 ‘모르는 것이 약’이라는 말이 있다. 강 건너 불구경과 같이, 차라리 모른 채 넘어가는 것이 속 편하고 손해 볼 것 없다는 일종의 자기방어의 수단으로 작용해 왔다. 그런 무관심이 백주대낮의 불의를 마주하고도 애써 얼굴을 외면하고 지나치는 시대가 됐다. 하지만 이제 나로호가 우주를 나는 시대에 ‘모르는 것은 죄악’이 되었다. 몰라서도 못 쓰는 노인네 손의 스마트폰으로부터 시작하여, 신도시 첨단아파트의 스마트제어장치에 손도 대지 못해 냉골로 밤을 지새우다 딸네집으로 피난을 가는 부모님이 줄을 잇는다. 사는 게 짐이 되고 목숨이 죄가 된 시대가 된 것이다. 이것은 시대가 던져준 미필적 고의의 피해증후군(victim syndrome)이 아닌가.

 

그런 ‘피해적 무지’와 또 다른 ‘고지위반에 대한 범죄’가 범벅이 되어 버린 세상도 있다. 바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밀어 부치는 정책실행의 만용이 그러하다. 고지, 회람, 토론, 자문, 수렴, 타산지석, 반면교사 그 어느 것도 안하무인으로 생략하는 ‘민주라는 이름의 독선’이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등잔 밑을 외면한 막연한 ‘사대주의’에 자산과 전통과 풍속과 민의를 저버리는 우가 횡횡하고 있다.

 

곧 삶아지는 것도 모르고 솥 안에서 헤엄치고 있는 한가로운 물고기. 눈앞에 닥칠 위험도 모른 채 망상에 빠져 있는 사람을 우리는 부중지어(釜中之魚)에 비유한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아니라, 가마솥 안의 피라미인 것이다. 누이 좋고 매부 좋으면 그만인 ‘얼크러 설크러’로 종국엔 ‘얽히고 섥힌’ 실타래를 풀지 못하고 만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사대강 댐 바닥의 뚫린 구멍으로 흘려 내린 백성의 토혈(吐血)같은 예산은 사라져 간다. 누가 누구를 탓하랴. 개도둑이 어찌 소도둑을 나무라랴.

 

엊그제 대면한 모 일간지의 공감되는 글귀가 있어 여기 옮긴다.

‘촉견폐일(蜀犬吠日). 촉나라 개는 해를 보고 짖는다는 뜻인데,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전부라고 여기는 아둔한 사람을 이를 때 쓰는 말이다. ‘우물 안 개구리’와도 비슷하다. 개란 동물은 본능적으로 낯선 것을 경계한다. 이러한 심리를 이용해 사람들은 개를 키운다. 촉나라 개는 연중 흐릿한 하늘만 보며 살아왔기에 어쩌다 비추는 해가 낯선 것이다. 그래서 해를 보면 짖는다. 촉나라 개에게 해는 매일 뜨고 지는 자연현상이 아니라 어쩌다 만나는 예외적인 현상인 셈이다.

내 고향 전북의 현실을 떠올리면 촉견폐일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서 안타깝다.’는 내용이다.

군자는 한쪽 귀로 득하고 한쪽 귀로 깨닫는다. 두 귀를 다 열라는 말이다. 그러면 충복은 하나밖에 없는 입으로 주군의 일결판단에 누를 끼쳐서는 아니 될 일이다. 그런데 말하는 한개의 입들은 비뚤어졌고, 듣는 두 귀는 그나마 난청이다.

 

‘현자(賢者)는 향리(鄕里)에서 인정받지 못한다.’고 했다. 우리 고장 수많은 인재들의 탁월한 능력과 실력이 정작 안방에서 외면당하며, 언제까지 서말의 구슬을 고개 넘어 샌님에게 꿰어 달라 부탁을 해야 하는 것인지, 공자도 맹자도 풀지 못하는 참으로 어려운 숙제들이 가마솥의 누룽지처럼 쌓여만 가고 있다.

이제 소귀의 고막도 터진 상태다.

 

박 병 도 (전주대학교 공연엔터테인먼트학과 교수, 연출가)


[새전북신문 칼럼]-5-2013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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