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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창고

지역축제-버라이어티 또는 이퀄라이스

바야흐로 축제의 계절이다. 지방자치 시대가 열리고서 가장 흥한 부분을 꼽으라면 단연 지역축제라고 하겠다. 단체장의 의지나 공약에 의해 구절양장(九折羊腸)으로 좌고우면(左顧右眄)하여 이어온 축제의 르네상스가 민주시대의 꽃으로 발현되고 있다. 나아가 축제와 관광, 지역소득을 접목한 정책·사업이 시대의 화두가 되어, 위정자의 의지가 전장에 포탄 떨어지듯 주민의 삶에 선택의 여지없이 투하되고 있다.

문화를 토목쯤이라고 여겨 변조나 개조도 가능하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의 견해에 의해, 결국 ‘지역문화가 시간과 공간의 구상을 실현시키고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참여와 활동을 유발시키는 기반이 되는 것’임이 왜곡되고 있다.

 

세이쇼우손은 “지역문화란 각각 고유한 특색을 가지고 있으며, 그 독자성은 역사라고 하는 [시간의 종축(縱軸)]과 지역 간의 비교가 가능한 [공간의 횡축(橫軸)]을 두고 보지 않으면 해명될 수 없다.”고 했다. ‘정체성’과 ‘독자성’이 자연스레 뒤따라 연상 되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것이 뒤엉켜 혼용 또는 남용되는 축제로서, 지역마다 특징 없이 개최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랄 수 있다. 그 원인이야 다양하지만, 지역 이벤트업자들에게 발주 대행시킴으로서 그 주된 내용의 개체들이 해묵은 거푸집에서 벽돌 찍어지듯 유사하게 복제 양산되는 것도 큰 이유라 하겠다. 그러니 주어진 불가분의 함수 안에서의 역할 순환이 아닌 바에야, 업체들의 부단한 연구와 혁신, 발전적 자기고백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선정하는 우수(대표)축제의 반열에 오르는 것이 지역축제의 바람이 되겠거니와, 또 주민의 화합과 문화향유의 기회제공, 외지인의 유치 및 관광 수익성의 확보 같은 과제들이 실무의 숨통을 죄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기에 거시적 안목으로 발전 로드맵을 세우고, 정체성을 구축하여 성장기반을 다지자는 ‘지혜수렴’부터 성실하게 이행한다면 또 다른 출구를 찾을 것으로 판단된다.

 

아울러 단체장 당대의 성과로 치닫는 성급함이, 모든 예산을 소모성 자금으로 전락시키고 축제를 단발성 이벤트로 마감시키기 때문에, 미래의 큰 결실을 바란다면 현 단계를 철저히 재분석하여 철저한 계획수립으로 진득하게 추진해 나갈 것을 제안한다.

 

녹녹치 못한 현실은, 매스미디어매체의 수익사업과 충돌변수라도 생길라치면 본디 방향과 전혀 다른 물꼬가 생기기도 하는 바, 이 또한 민선시대의 ‘불편한 진실’이기에, 늪지도 아닌 곳에 악어가 생겨나고, 그 스케일링(scaling)을 위해 악어새가 번식되는 현상을 낳는다. 거기에 고전에나 나올 법 한, 흠 잡힌 잔칫집과 왈패와의 상관관계 같은 오해의 소지는 없어야 할 것이다.

 

문화는 정체적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나 인간의 후천적 학습을 통해 습득되는 [학습성], 선대(先代)의 상징적 유산을 다음세대에 전하고 세련시켜 축적(accumulated)하는 [축적성], 여러 문화코드를 긴밀히 유지하며 하나의 전체(whole) 또는 체계(system)를 이루는 [다양성], 시간적 차원에서 내외부적 요인에 의해 진화되지만 결코 정수(constants)가 아니라 변수(variables)가 되는 [가변성], 모든 동물의 종(species) 중에서 상징력(symbolic ability)의 능력을 가진 인간만의 자유로운 [상징성]의 ‘본질’을 가지고 있다.

 

이를 토대로 현대사회의 개인주의적 ‘해체개념’ 특성에서, 구성원(지역민)의 동질성과 아이덴티티를 확보하는데 이 문화적 기제(機制, mechanism)로서의 ‘지역공동체’를 유념하는 축제가 유용함을 깨닫는 게 시급하다. 그러기에 지역민의 꿈과 여락(餘樂)을 실현시켜 줄 결정권자가 종내 ‘개별판단의 힘(egocentric violence)’을 작용함으로서, ‘민의와의 소통’이라는 명제를 무색하게 해서는 결코 앞날이 없다. 때가 되면 개최되고, 욕구의 불만에 따라 수정되며, 목적의 수반으로 개량되어지는 불확실시대의 페스티벌은 공동체의 발전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사일 뿐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적어도 축제를 이용한 지역정서 구축의 목적을 ‘잔치판을 통한 인심 쌓기’가 아니라 순수한 ‘나눔과 화합’의 덕목으로 수행하는 인물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그 하나의 양식(良識)적 창출행위로 미루어 보건대, 제행(諸行)이 일신의 영달이 아닌 바른 목적의 위정(爲政)임을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란 원래 라틴어의 ‘cultura’에서 파생한 ‘culture’를 해석한 말로, 원래 경작(耕作)과 재배(栽培)의 의미였다. 파종부터 수확까지의 긴 여정에 여러 희원(希願)이 담겨있겠지만, 때로 비바람 천둥에도 끄떡없는 미래지향적 대물림의 의지가 우공이산(愚公移山)처럼 앞 서야 한다. 당대에 발원되는 복락을 위해 조상의 기묘(基墓)께나 파헤쳐 옮기는 욕심은, 그 동기감응(同氣感應)의 동기(動機)가 불손하여 외려 화를 입기 십상이다. 그러기에 불편한 진실의 아집으로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문화실험의 이장(移葬)행위’가 계속되어져서는 아니 될 것이다.

 

문화와 축제는 각양각색(variety)이되 균일(equalize)해서는 안 될 ‘고유성’과 ‘독자성’이 생명이다. ‘festivalis’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festival’은 강력한 ‘사회통합력’을 지니며, ‘제의(祭儀, rite)’임과 동시에 ‘디오니소스적인 부정(否定)’과 인간 본능을 억압하는 것에 대한 폐기, 해방을 향한 문화라고 했다. 그것이 프로이트가 변론한 ‘금기의 위반’을 위한 ‘과도한 난장트기’라 하였다 해도, 민의를 저버리는 ‘양식(良識)의 금기위반 행위’여서는 않될 신성한 영역이다.

 

 

박 병 도 (전주대학교 공연예술전문연구소장, 공연엔터테인먼트학과 교수)

http://www.sjb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31987


[새전북신문 칼럼]-10-2013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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