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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절된 감성과 구설문화

서구의 사고(思考)가 퍽 논리적이라 한다면,우리네 그것은 퍽 감성적이라 할 수 있다.최근, 굵직한 국제영화제에 출품되어 괄목할만한 성과를 얻어낸 우리네 필름들의 전편에 시종없이 흐르는 배경음악만 보더라도,또는 그 휴매니티의 극치를 달리는 감성에의 호소 플롯을 뜯어 본대도,아무래도 우리네 교감영역은 그 센시티비티한 영역에서 주효했고 빛이났다.

감각과 지각에 의해 생성되어 그것에 곧 지배되어 버리는 심적 체험의 총체로 말미암아,퍽 오랜 세월 우리네 사건 수사도 물증 보다는 심증을 앞세우는 그 뛰어난 인상흡수의 능력으로 지탱해 온 바 없지 않으며,아무래도 이러한 뛰어난 방중의 논거에는 제현상을 인지하고 수용하는 잘 발달된 심성과 무관하지 않다. 혹자는, 이러한 사유의 상상능력에 앞서가는 관객의 심리가, 미완과 미숙의 예술작품의 틀거리를 스스로 보완해 내는 복구능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도 본다.어쩌면 이러한 극적(極的)인 상상력은 '고양이 꼬리를 보고 호랑이를 본'것 마냥 떠들어 대는 풍부한 입심으로 표출되기도 했고, 한양구경 못한 사람 '남대문 문턱'이 훨씬 심증적인 절대성을 가졌다.그런 '호마이카 남대문 문턱'은 대책없는 전말이 난무하는 윷판의 화기애애와도 무관하지 않아서,우리는 어려서 부터 공동체 의식 속에 [고함 우선][어덕 압승]의 단편적 지혜를 터득하는 바 없지 않다.

민족구원의 가상한 기치를 백주상에 난타하는 저 유세판의 선량들을 보라. 그들의 고함이 민족을 구원했고, 그들의 깔아뭉갬이 민주를 구축했다. 그리고, 그 캥기는 단말의 뒤에는 으례 합리화가 뒤따랐다.

널려진 진위를 수용하는 능력은 자신이 표출해내는 인지한도 내에서 분명해진다.아무개가 거시기 머시기하니까 자신도 거석머석해서 또 다른 불분명이 탄생했다.

배우들에게 대본을 읽혀보면 우리네 국어교육을 한탄하기에는 앞서는 감성적 요인을 발견한다. 특히 서구의 번역극을 대할땐 더더욱 그러하다. 대사가 갖는 의미와 뉘앙스는 화자(話者)의 심적 논리를 적나라하게 갖춤으로 인해 설득적으로 전달되기 마련인데, 더러는 복잡한 인물의 심리적 현상과 인과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고, 더러는 아예 긴 문장의 대사처리엔 암담해 하는 모습을 본다.아니, 어쩌면 토막낸 진실의 파편들에 자기도취하는 임기응변이 해결책으로 작용하는 모습을 본다. 전달의 진위를 가려야 한다. 제각각 뛰어난 감성과 감각 위에 대사의 논리성이 용해된다면 얼마나 금상첨화이겠는가. 이러한 것은 이해타산의 선별된 경청습관과도 무관치 않다고 본다.수년전 이지역 예술제에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을 모셔 놓고 [품바]공연을 올린적이 있다. 배우는 비짓땀을 흘리며 목 터져라 대사를 하고 있는데, 객석에선 연신 "뭣이 어쩌고 저쩌고는 시끄럽다. 그냥 타령만 계속해라. 타령만--".복잡한 것은 귀찮다. 그래서 "짧게 얘기해라. 간단히 설명해"를 거부없이 잘 받아 들이고 살았는지 모른다. 군대의 의무실에선들 어찌 아픈곳을 다 말하고 온전할 수 있었던가. 어쩌면,그 간결의 요구는 복잡과 장황의 비논리성이 가져오는 몰이해를 차단하려는 의지표명이었을 것이고, 습득되지 않은 만연의 논리성은 아무에게도 설득적이지 못해서 일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윷판의 말(馬)을 쓰는 일에서 조차(그것도 走者가 아닌 훈수하는) 무조건적인 심증이 물증이고 이유고 대책이며 결과다.고함까지 가세하면 더더욱 신빙성이 있었고 믿음직스럽다.

"두고 봐.분명히 이번엔 모가 나올팅게 여기 놓으면 죽어.그렁게 여기다 놔야 혀.두고 봐라--잉."

"어허- 맥없는 소리.모는 무슨 놈의 모여? 아녀, 여그다 써야혀."

"어허--.왜그려? 어떻게 그려?"

"아뭏튼 그려. 내 말이 맞어.두고 봐.분명히 근당게."

그러다가 그렇게만 던져주면 그 기세는 하늘을 찌른다.남의 윷판에 이유없는 끼어든 훈수의 패자는 옆 술상으로 슬그머니 꽁무니를 뺀다.그리고는 그 훈수의 승자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감성의 욕을 안주 삼아 막걸리 잔을 벌컥벌컥 비웠다.그렇게 심심한 남얘기는 퍽 짭짤한 입가심이 되어 온동네 골목을 쏘다니다 또다른 입가심에 치여 사라져 갔다.귀 얇은 사람들의 기호를 위하여--.

발달된 감성이 소유한 문화를 보자.그리고 그 여파를 보자.그 감성의 후손들은 밑도 끝도 없는 남얘기를 생활의 자극으로 삼고 산다.그리고 인지된 자신의 가치기준을 기만하는 또다른 엑시타시를 삶의 각성제로 복용 한다.그런 자극의 문화는 갈치 제꼬리 잘라 먹는다고 탓할 일이 아니다.


[전북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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