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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창고

文化의 심볼都市

1607년 丁未年(선조 40년) 呂祐吉을 正使로 467명의 일행이 회례겸쇄환(回禮兼刷還)이라는 使命을 갖고 출발했던 조선통신사는,1811 辛未年 순조 11년에 이르기 까지 전후 12회에 걸쳐 일본땅에 발을 딛으면서 '천사보다 나은 환대'를 받고,수많은 유물,서문,서화를 비롯한 우리민족의 우수한 문물을 전하였으니,그들이 우리의 사절단을 맞기 위해 내보인 성의와 환대는 에도(江戶) 시중의 인구 3분의 1이 환대에 참여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러한 일본은 拜伏의 추억 마저 取하고 擇함에 인색함 없이,나아가 어떠한 역사의 副産도 소홀함 없는 자신들만의 독창적 의미로 승화시켜 오늘의 구체적 실증을 제시하기에 자신만만해 있다.말하자면 물질의 풍요로움 저변에 도사리는 기초자산의 불안을 '전통과 독창성의 확보'라는 차원에 귀속시켜 거대한 문화적 조형물로 제시해 내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 추세가 구지 하이테크적 대형 엔터테인먼트로 그 유형의 규격화된 감각을 공유하면서 국적없는 판매용이의 상품화를 조장해 낸다 하지만,한 국가의 절대적 문화유산이야 어디 그러한 패션화된 이미지로 설명이 가능하겠는가.그러기에 그들의 자부심은 도꾜의 <가부끼좌>에 몰리는 수많은 외국 관광객의 신선한 이국적 감동에 미소 짓고,國鐵이 정거하는 <다까라스까>의 일본식 패키지쇼를 자랑하면서 방대한 위락시설을 近設하는데 인색하지 않았다.옷을 입는데만도 두시간이 걸린다는 신비적 의미를 부여하면서,한발자욱 떼는데 한나절이 걸림직 할 <노能>는 타국인에게는 독특한 이질적 배타감흥을 유발시키면서도,너희에게는 없는 우리만의 것이기에 가장 세계적이라는 우월감으로 연일 관광객의 뇌리에 일본을 각인시켜 주고 있다.가부끼 공연장의 구내 점포에는 스타들의 이니셜이 새겨진 온갖 티셔츠,메달,선물용품이 그득하고, 절반이 넘는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외국어로 자체방송 되는 무선리시버는 관람객의 귀마다 호박넝쿨 처럼 꽂혀 있다.구로꾸라 하여 없는 것으로 치자는 검정복색의 인물들이 옮기는 인형극은 우리네 思考로는 아이들이나 향유할 문화쯤으로 치부할만 한데,그들은 버젖히 극장을 세우고 독특한 자기네의 다양성의 일부임을 자랑하기에 도대체 망설임이 없다. 그렇게 자신만만 하니까 가장 일본적으로 보일테고, 그들은 연희에 온갖 '格'과 '틀' 그리고 '최대한의 의미부여'로 원형을 받들어 요지부동한 성역을 구축해 내는데 게으름이 없었다.

그렇다면,단군 이래 歌舞를 즐겼다는 우리네 삶의 언저리에 붙어 다닌 우리의 演行은 지금 어떠한가? 미안하게도 작금의 공연형태엔 아지껏 독창적 리얼리티 마저 정립되지 못했다는 자각의 목소리마저 공허히 공명되고 있는데,문화와 예술을 즐기고 사랑했다는 우리민족은 한국을 방문해라 해놓고 경주 불국사로나 내&#48568;는 일이 그나마 남들 없는 자랑거리고,濟州라는 天惠라도 없었던들 올 같은 손님치레는 재고됐을 법 한 일이었던가.그것도 모자라 때밀이 관광한국은 기생관광을 벗어나 그나마 다행이라던가? 적어도 우리네 선조들은 에도시대 현해탄을 건너 가 일본인이 씻어 주는 대야에 발을 담궜으며,족보없는 이들에게 姓氏마저 척척 지어 주기를 마다 하지 않았단다.

UR의 홍역으로 그나마 우리것에 대한 구체적 사랑을 체감하고 있는 우리는 外産의 배타적 의미로써의 身土不二가 아니라,당당한 자긍의 실수효적 문화생산을 준비하지 않으면 않된다.한 나라의 독창적 문화유산은 이끼 낀 돌담이나 석탑,그리고 자생으로 번성한 무국적의 공연문화로는 설득력이 없다.때를 맞춰 민속촌이나 들러야 구경할 수 있는 감질나는 풍물소리 정도론 앞으로 분명히 닥쳐 올 문화라운드에 대비할 수 없다.

언제든지 찾아가면 구경할 수 있고 보여줄 수 있는 우리네 연희행위의 정착은, 작금의 식상되고도 폐쇄된 몰인식으로는 어떠한 돌파구도 찾을 수 없다.또한 이제는 국제감각으로 어랜지 되지 못한 우리것에 대한 아집은, 언제나 동네잔치 벌려 놓고 빈마당 부조탓에 숨가파 했던 풍습쯤으로 자조해서도 않된다.폐쇄로 멍든 역사가 있었기에,知彼를 모르는 知己 世代의 으름장은 거두어져야 한다.

국악의 본향인 전주에선 상시 번듯한(외국어 리시버 방송쯤 전제된) 창극이 걸쭉히 올려지고,제주에선 해녀들의 질펀한 삶의 노동요가 새로운 공연의 형태로 관광객을 맞으며,하회땅엔 별신굿이 온갖굿과 더불어 새롭게 조명을 받는 일이야 말로,얼마전 스필버그의 재주에 깜짝 놀라 자동차 만드는 일보다 더 수지 맞는 일이 있노라고 허겁을 떨던 위정자들이 다시 들여다 보아야 할 낙타 앞의 바늘 구멍인 것이다.

1994. 9. 11 [전북도민일보] 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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