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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창고

개념 상실의 시대에

괴테는 말한다.

예술가는 기술을 목적에 구사하기 위하여,또 대상을 자기류의 방법에 의해 살리기 위해선 항상 기술과 대상 위에 서 있어야 한다고.

예술가가 예술창출의 최대치를 바라보는 지혜의 눈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라면,그 예술가는 곧 전문직종의 전문인을 일컬음이며,나아가 사회구성 단위로서의 전문인은 도처의 생활인을 막론하지 않을 수 없다.

삶의 양질을 희구하는 모든이의 전문성은 맡은바 자신의 일에 분명한 컨셉(Concept)을 갖추고 있으려니,그 근본적 자기정립의 모토는 삶과 일의 철학적 개념이 없이는 가닥이 추려지지 않는 법이다.

어떤 일을 관조하고 통찰하는 바탕에는 분명한 <개념>이 정립되어져 있어야 한다고 우린 알고 있다.

자손에 대한 절대적인 투자가 결코 부족타 치면, 자존심이 상해도 한참 상할 우리네는,예로 부터 -- 좋게 말한다면 소위 <중용의 미>를 유용히 갖추고 있었으니,조상님들의 지혜는 두루마기 안섶 하나도 결코 바깥색과는 같지 않은 천을 대었으니,겉섶이 감물이면 안섶은 잿물이라도 들여야 입으셨다는 얘기다.어쩌면 그러한 <탄력>은 수많은 외세의 침략 속에서도 세계의 몇 안되는 단일민족 국가를 지키는데 근원적인 자양이 되었을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그 중용의 지나침 없는 보편적 온당성은,알게 모르게 사리판단의 적당성으로 발전하여 개념의 부재현상을 나타내고 있으니,결코 불변적이거나 선천적인 것이 아닌 생활경험에 따라 변화한다는 <개념도구설>만 보더라도,우리네의 적당한 탄력은 조금 심한것이 아닌가 싶다.말하자면 개인적 이기적 편의주의는,인류 문명의 진행에 따라 상호 약속되어진 여러 삶의 기호나 부호들을 혼돈시키고 있다는 얘기다.

테레비젼 화면에서 만나는 소말리아 아이의 밥그릇이 물그릇이 되고 또 그 물그릇은 세숫대야가 되도록 우리는 끊임없는 발전의 발전을 거듭해왔다면서,어느 순간 원칙없는 즉흥성은 약속의 본질이나 개념의 상궤를 벗어나 원칙없는 재털이를 무수히 나열했다는 것이다.그렇다.단지 밥그릇과 재털이의 차이일 뿐이었다.급할수록 융통성 많은 우리네는,아주 펀리한 이유대로 상대의 양해도 없는 복지깨를 재털이라고 내놓았다.브라운관에 명멸하는 아프리카 촌놈의 개념없는 밥그릇과 그 비문명적 작태에 혀를 끌끌 차면서도,그것이 용기(用器)에 있던것이 입으로 간것과 입에 있던것을 용기로 가져간 차이일 뿐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개념이 희박해지면 고지가 않먹힌다고들 한다.고지가 않먹히면 의사소통의 단순성만 증폭되어 강조가 남발되고,그 강조는 자칫 구호(口號)일색의 전체성을 유도하는 반문명적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지금세상이 어디라고 카드섹션적 구조물로 취급당할 것이냐고 이를 악 물겠지만.

하나의 공통적인 관념이 소통되지 않는 세상에 아무리 약속된 인식을 교감하려 해도 않되는 답답함이 도처에 깔려있다.[문화를 소유한다]는일도 그렇고,[문화를 행한다]는 일도 그렇다.우리는 문화라는 개념을 어찌어찌라고 보편적 관념으로 정해 놓고도 생각은 각기 다르다.어찌어찌의 혼돈은 각자의 분명치 못한 [거시기 머시기 증후군]과도 같은 편의의 시대를 만들었다.

행정의 편의주의도 따지고 보면 애초에 정했던 바를 무지각하고, 참으로 기상천외하고 다양한 상상력의 전문성으로 비약되었기 때문이리라.목적에 구사하려는 행정적 기술은 그러해서 조령모개도 마다 안했는가.

환경이 인식에 의해 변모된다면,우리는 잘못된 인식의 방법론을 후세에 물려줘서는 않된다.조상님들의 지혜는 단순한 편의만을 위해 우리가 생각한것 만큼의 단순논리로 풀어놓은 것이 결코 아닐것이매,작은 일부터 분명한 개념을 찾아야 한다.신한국을 건설한다는 이마당에--.


[전북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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