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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가도멸괵(假道滅虢)의 문화 자존(自尊)

가도멸괵(假道滅虢)의 문화 자존(自尊)

 

()나라의 헌공(獻公)이 괵()나라를 칠 생각으로 신하인 순식(荀息)에게 의견을 물었다. 내용인즉슨 괵나라로 가는 중간쯤에 규모가 작은 우()나라가 있어서 반드시 그곳을 지나가야 했는데 묘수가 떠오르지 않아서였다. 이에 헌공의 물음에 순식이 답하였다.

 

괵나라의 왕은 욕심이 매우 많으므로 왕께서 좋은 구슬과 명마를 보내면서 길을 빌려 달라고 부탁하면 가능할 일입니다.”

 

헌공이 순식의 말대로 선물들을 보내니 우나라 왕의 마음에 회가 동하였다. 그렇지만 우왕도 염려가 되어 돌다리를 두드리는 심경으로 궁지기(宮之奇)라는 모사에게 이 일을 의논하기에 이른다. 이에 궁지기가 답하기를,

 

진나라군은 우리나라의 길을 빌려 괵나라를 무너뜨린 다음에 틀림없이 우리 우나라를 무너뜨릴 것이니, 왕께서는 부디 허락하지 마십시오. 우리 우나라와 괵나라는 마치 이()와 입술() 같아서 입술이 망가지면 이가 시린 것처럼(순망치한 脣亡齒寒), 괵나라가 망하면 우리 우나라도 필히 위험해질 것입니다.”라고 간언하였다.

 

그렇지만 궁지기의 충언을 뿌리치고 구슬과 명마에 눈이 어두워진 우나라 왕은 진나라의 요구를 받아들여 길을 열어주고 말았다. 그 결과 진나라는 괵나라를 멸망시키고, 회군 중에 다시 우나라를 쳐서 함락시켜 버렸다. 궁지기의 충언을 무시해버린 우나라의 왕은 결국 그 자신도 비참한 최후를 마치게 되었다.

 

처음에 길을 빌려 쓰다가 나중에는 그 나라를 쳐서 없앰을 일러주는 고사(古事)로서 가도멸괵(假道滅虢)의 내용이다. 수록 문헌의 격조를 떠나, 천자문(千字文)에 수록된 가르침 글이라니 더욱 전하는 바가 크다.

 

문화식민주의(cultural imperialism)가 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의 전환을 인양해왔다. ‘문화제국주의라고도 칭하는 이 막강한 경제력과 정보력을 이용한 문화적 지배 현상은, 강대국에 의해 약소국이 수급받아야 했던 숙명적 코스였다. 이를 구식민지주의라고도 사전적 정의는 범위를 한정해 왔지만, 2차대전 후에는 이와 달리 과거의 종속국이 독립하려 할 때, 겉으로는 독립을 돕는 것같이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배후에서 이 국가들을 조종함으로써 과거의 제국주의 체제를 유지하려는 방향으로 바뀌었는데, 이를 신식민지주의라고 한다.

 

고도로 발달한 현대의 정보통신기술은 막대한 정보력을 이용해 타국을 지배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에는 미디어임페리얼리즘(media-imperialism)이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물질을 넘어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소리 없는 전쟁의 승자 말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했다. 모르는 게 약이 아니라, 아는 게 병이 되었다는 것이기도 한데, 어정쩡한 소식통이나 풍문에 들은 정보, 그로 인한 개념 없는 벤치마킹이 가져온 무지막지한 문화 사대주의가 문제다. 정책의 일선에서 노심초사하는 지방 문화 입안자들의 현주소가 딱 그 모양이다.

 

중국의 장예모가 인해전술로 앞세운 인상(印象) 시리즈로써 재미를 보자, 지역 인프라를 무시하고 덤비더니 여의치 않자 넌버벌(non-verbal) 퍼포먼스아류에 혹하여 지역의 자산을 폄훼하면서까지 스스로 문화 식민을 자청하여 굴종하는 문화 시대가 번연히 진행되고 있다.

 

아무리 퓨전이 고깔 쓰고 자전거를 타는풍경이라 해도, 정통의 첨단화도 전통의 국제화도 아닌 국적 불명의 말초적 흉내내기(mimic)에 빠져 있는 카오스 상태가 지역민의 영혼을 좀먹고 있다.

 

정권교체야 합법적인 권력 순환장치라 하여도, 지역의 목민관이 못할 게 없다는 식의 오만은 좀 도가 지나치다고 본다. 그래서라도 마지못해 몇 번의 페이퍼 수렴 필터(전문가 초치 의견 청취회)를 수박 겉핥기식으로 거친 도 대표 브랜드 공연의 흐름은 오리무중이다.

 

무엇을 기정화 시키고 가고 있는지도 안개 속인데다 도대체 공정한 의견수렴이란 개념에 대한 바로미터가 없다. 헤겔의 <정반합> 논리라도 대입하여 끊임없는 충돌과 생산의 개진 없이, 구렁이 담 넘어가듯 국가 보조예산의 필연적 집행 완료에 매달리는 모습이 보기에도 안타깝다. 그나마 무리 없이 되면 좋으련만.

 

길을 어떻게 트느냐가 중요하다. 길을 열 것인가 닫을 것인가도 고심해야 한다. 첫 단추가 어찌 끼워져야 마땅한지를 스스로 자각해야 가도멸괵의 우를 범하지 않을 일이다. 그래서라도 스스로 모든 지혜를 탈지역 브레인에 양도하는 반자존의식의 끝자락을 잡고, 지역민이 공여한 막중 책임을 고은(孤恩)하는 무지몽매를 이 장마가 다 쓸어 갔으면 하는 소망이 염천(炎天)의 먹구름 같다.

 

박 병 도 (전주대학교 공연엔터테인먼트학과 교수, 연출가)

 

-2013.07.05.새전북신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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