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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온고지신(溫故知新) 아닌가

 온고지신(溫故知新) 아닌가

 

 

춘추전국시대 중기 전제(田齊)5대 왕으로서 위왕(威王)에 뒤이어 즉위했으며, 맹자를 초빙해 제()나라의 부국강병을 이루고자 했던 선왕(宣王)은 생황(笙篁)연주 듣기를 매우 좋아하였다.

 

그는 독주보다는 웅장한 합주를 좋아하여 삼백여명의 악사에게 동시에 연주를 시키곤 했다. 그런데 그 삼백여명 중에는 생황을 전혀 불 줄 모르는 남곽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악사들 틈에 끼어서 부는 시늉만 하고는 여러 해 동안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선왕이 세상을 떠나고 그의 아들 민왕(湣王)이 등극 하였는데 민왕도 생황연주를 좋아했으나 그는 합주보다는 독주를 즐겼다 한다. 그러자 자연스레 삼백여명의 악사들은 차례로 왕의 침전에 불려 가 자신의 솜씨를 들려주게 되었고, 이를 두려워한 남곽은 스스로 생황을 버리고 달아났다.

 

한비자(韓非子)내저설(內儲說)’에는 이를 두고 남우충수(濫竽充數)라 하여, ‘남아도는 악사로 부족한 숫자를 채운다.’ 라고 하였다. 잉여 인력, 보충 재원이라고나 할까?

 

우리 일상에서 덤처럼 섞여가는 것을 두고 흔히 묻어간다라고 표현한다. ‘따라가다의 북한말이기도 하지만, ‘주체가 아닌 존재로서 함께 따라가는 피동의 의미로서도, 딸려 간다는 굴욕의 덤이 오롯이 부각되는 부정의 의미가 되레 크다.

 

아울러 제반의 관심 대상에서 묻혀가는삶도 허다하다. 묻히다묻다의 피동사로서 물건을 흙이나 다른 물건 속에 넣어 보이지 않게 쌓아 덮는다거나, 일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속 깊이 숨기어 감춘다거나, 의자나 이불 같은 데에 몸을 깊이 기대는 것을 일컫는다.

 

세 가지 의미가 조금씩 다르게 해석되고 통용되지만, 첫 번째 형태로 봐도 자신의 실체를 숨기고 감추는것이며, 두 번째 것을 대입해도 본연의 소임이며 능력을 기망(欺罔)’하는 것이고, 세 번째 행태를 대입해도 의지나 소신에 능동적이지 못한처신과 역할의 군상을 유추하기 어렵지 않다.

 

한 해가 저무는 세밑에 만감들이 교차하겠지만, 정작 어느 조직이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역할과 임무에 소홀함이 없었는가를 반추하기란 쉽지 않다. 삶의 도덕률 같이 다가오지만 그리 내키지 않는 일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유쾌한 흔적보다는 후회막급과 지난(至難)한 결과들이 으레 첨병의 창칼처럼 밀려오기 때문이리라.

 

한 푼어치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일전불치(一錢不値)’의 존재로 또 한 해를 허비하지 않았는지를 염려해야 하는 송구영신의 시절에 우리는 늘 자신의 존재가치를 저울질 해 보기 마련이기 때문 아니겠는가.

 

내가 아니어도 그 누군가가 소임과 역할을 대신해 주리라는 기대감에 묻혀서, ‘묻어가는 인생이 되고픈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그런 자가당착의 길을 모색할 리 만무하지만, 인간사가 마음대로 뜻대로 되지 않음에 시기나, 위치나, 상황에 따라서는 그렇게 피동의 부속물로 전락하는 예가 생각보다 많음을 우리는 자주 목격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 우리네 문화가 밥상에 숟가락 하나만 더 놓으면 되는어림치기 문화로 군중 속에 하나의 레고(lego)가 되어 왔음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음도 양해된 선택사항이다. ‘우리를 외치면서도 정작 나 하나쯤은 늘 용인된 예외로 치부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자기기만이 팽배해서다.

 

그러기에 소사이어티에 기여하는 일보다 일탈하는 방종이 때로 더 달콤한 욕구일 수 있고, 소신과 의지는 뒷전에 두고서 귀 얇은 군중이 되어 SNS 한 줄에 향리와 국가의 흥망이 걸린 한 표도 쉽게 던져버리기 일쑤다. 그러고는 후회막급으로 매번 손가락에 장을 지진다고 지져대서 이제 더 지질 손가락도 없는 백성이 허다하다 그 말이다.

 

반면에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유아독존(唯我獨尊)의 기개로 점철된 인물도 문제다. 당자는 굳이 장에 가려는 게 아닌데 온 동리가 나서서 갓 씌우고 미투리 묶어주더라는 명분도, 그리 떠밀렸다는 궁색도 마냥 옹색하기만 하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에 어디 한계가 있을까. 속담에 오리알에 제 똥 묻은 줄 모른다고 자기 결함에 어두운 자를 비유하고 있으며, 제 있을 곳이 아닌 높은 데 있어 위태로운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오리 홰 탄 것 같다라고들 한다.

 

분수를 알고 처신하며 범사에 감사함을 잊지 말고 살아야 할 범인의 한 해가 또 저물어 간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은 과거로부터 미래를 거두는 지혜다. 한 해를 어떻게 정리하느냐에 따라 새롭게 다가오는 한 해를 계획하는 기초가 마련될 것이다. 먹고 사는 것도, 자식들 키우고 미래를 설계하는 일도 모두 생각하고 상상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지만, 그래도 나 하나의 존재 개념이 분명할 때 비로소 떳떳한 구성의 개체로 미래를 열 것이다.

 

좋은 게 좋다는 너스레에 묻히고 묻어가며 자기를 까맣게 잊어버리는 세월을 또다시 반복할 일은 결코 아니다. 다가오는 갑오년 새해엔 지역의 일꾼을 뽑는 지방선거가 있다. 그러기에 더더욱 나 스스로 남아도는 숫자에 불과한 잉여의 존재로 소모되지 않기를, 그나마 남아있는 손가락에 대고 맹세하고 또 다짐할 일이다.

 

박 병 도 (전주대학교 공연엔터테인먼트학과 교수연출가)

 

[새전북신문 칼럼] 2013.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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