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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무사(無私)가 곧 소통이다

무사(無私)가 곧 소통이다

 

동일 업종의 기업이 경쟁의 제한 또는 완화를 목적으로 가격, 생산량, 판로 따위로 형성하는 독점 형태를 카르텔’(cartel)이라고 한다. 다른 말로는 기업연합이라고도 하는데, ‘카르텔이라는 기업용어가 언제부턴가 문화정책에 대입되어 회자되는 상황에 대해 이제 낯설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드물다.

 

하긴 그것이 사람 사는 세상에 어디 적용되지 않은 곳이 있겠는가마는, 기업과는 달리 상시 불확실성 신분의 못갖춘마디를 극복하지 못하는 인간군상에 어김없이 상존하는 것 또한 이 집단결속이라 하겠다. 이러한 형태는 작게는 샐러리맨의 잦은 술좌석에서의 단결 구호로부터 삼삼오오 벗들의 끝없는 소회로 점검하는 믿음의 확인결속의 다짐이 그것을 대변하고 남음이 있다. 세상 사는데 외롭지 않은 자 없는데 말이다.

 

따라서 그것은 엄연히 친교와는 다른 형태의 일종의 거래일 수도, 또는 밀약일 수도, 또는 담합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교분과 소통의 착한 범주에서 상당히 벗어 나 있다. 소규모 계()로부터 거대한 사회 봉사조직도 따지고 보면, 외연의 목적 달성 이외의 개개의 인연과 인맥 형성으로 살아가는 형태에 도움받기하고 있음을 솔직히 부인할 수 없지 않은가.

 

요즘 지방선거를 마치고 당선자마다 정실인사를 배제하겠다는 일성이 새삼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그간 선거캠프가 작동됨으로써 관행으로 여겨졌던 논공행상(論功行賞)의 실태가 가져온 적폐를 우리는 수없이 보아 왔다. 오죽하면 안전행정부에서 정무직 부단체장의 선출을 공모제로 하라고 지시까지 했겠는가 싶은, 만시지탄 동감하게 되는 대목이다.

 

전문성이 요구되지 않은 부분이 없는 행정조직에서, 대략 유사 부분에서 도움 준 이들을 요소요소에 등용함으로써 겪어야 했던 행정의 낭비, 또는 그로 말미암은 더없는 정책 실패에 대해 유독 무심한 이들은 단지 그들을 임용한 단체장이었을 뿐이다.

 

그 수혜의 당자(當者)들은 캠프 패밀리라는 라벨을 달고서 조자룡 헌 칼 휘두르듯무소불위의 권한을 조직 내에 발휘하였으며, 그로 말미암은 조직의 황폐 또는 사기 저하에 일조하였고, 그 어설픈 선무당들은 또 해당 분야에 대한 끝없는 자기 욕구 충족에 인색하지 않았다.

 

욕구의 분출 형태가 사뭇 자폐적이면서 제왕적이었다는 사실을 알만한 사람들은 알지만, 그 피해가 위정자를 잘못 뽑은 유권자 지역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또 모르고 있다.

 

왜 그랬을까? 위정자는 사골 끓이는 솥단지 속처럼 부글부글 끓어대는 민심의 동향을 알고도 간과했던 연유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하나의 사적 보상과 부적절한 회수의 파이프역할로서 그 직책을 유용했을 것이고, 충복은 그 소임을 다하면서 임기 내 그 직을 보장받는 악어새의 역할에 충실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 악어새는 악어의 잇몸 청소에만 충실했으면 그나마 적폐의 반은 탕감받을 수 있겠으나, 그 주어진 권한으로 제 입맛만 맞추는 무골충의 추종자까지 양산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패악의 민관관계를 형성하고 말았다. 그것은 불의를 외면하는 예술가들의 외로운 창작 임무에 낯선 권력 추종형 미물들이 만들어 놓은 자가당착에 다름 아니다.

 

악어새가 만든 카르텔. 악어의 이빨 사이에 낀 먹이를 두고 줄을 세우는 악어새가 휘두른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는 다름 아닌 혈세로 주어지는 지원금이나 보조금 등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았다는 선조들의 기개는 현대의 궁핍한 미생(未生)들의 곤궁한 자존심에는 들리지 않은 케케묵은 풍월일 뿐이었는가?

 

이제 과감히 그 적폐를 뿌리 뽑아야 한다. 신선하게도 캠프족을 배제하고 나서는 단체장들의 행보가 새삼 믿음직스럽다. 단체장의 눈과 귀를 막고서 제 앞에 줄 세운 이들과 합작하여 만수산 드렁칡처럼 얽히고설킨 정책과 실행안을 전횡한 이들에게 소통은 이미 없었다. 모든 문을 개방하고 지역의 실력 있는 인재들과 성역 없는 지혜 나눔으로 찬란히 엮어내는 문화창달의 내일을 염원해야 한다. 아울러 새 술을 담그는데 묵은 누룩은 과감히 폐기하는 단호한 기개를 새로운 단체장들에게 기대해 보는 희망을 그려본다.

 

박병도 (전주대학교 교수, 입학처장)

 

[전라일보] 칼럼 -2014.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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