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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도이불언 하자성혜 (桃李不言 下自成蹊)

도이불언 하자성혜 (桃李不言 下自成蹊)

 

 

누군들 인생을 살아가며 마음에 담아 둔 금언(金言) 하나 없을까 싶다. 그것이 때로 그 어떤 기도문보다 간절한 소망이기도 하여, 마음의 염원이 되고 행동의 뿌리가 되어 결실의 열매를 거두기도 하기에, 나도 소박한 글귀 몇 자를 오롯이 마음에 새기며 살아왔다.

 

이 삼십 대에는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이자 시인인 골드 스미스(Oliver Goldsmith)의 글귀를 마음에 두고 살았다. “우리 시대 최대의 영광은 한 번도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일어서는 것이다.”라는 글귀다. 다소 직역체의 문장이 거친 숨소리처럼 와 닿는 것이지만, 야생마 같았던 청춘의 독립투사 시절에 딱 맞았던 각오가 되고도 남았다.

 

그렇다. 시야를 가린 경주마처럼 한 가지 목표에 온 시간을 다 바쳤던 나는, 다리 골절로 인한 깁스를 연습으로 말미암아 대여섯 번을 깨 먹었으니, 이것을 본 담당 의사는 누가 당신 같은 환자에게 돈 벌어 오라고 일을 시킵니까?”라고 할 정도였었다. 그런 질풍노도의 시간을 보낸 청춘이 지금도 참으로 행복하게 여겨진다.

 

사십대에 들어서 예술의 끝자락을 붙잡고 점점 그 물리의 트임에 눈을 돌릴 즈음, 결국 예술은 제 잘난 맛에 한다지만, 그래도 자세와 작업에 있어서 사귀를 맞추고 동시대의 지성에 맞닿아 행하여야 할 그 무엇을 찾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에게서의 탈피였다.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과 목적과 행동으로 점철된 인간만사에 있어서의 예술이 치달아야 하는 것은 결국 냉철한 객관의 시선이라고 깨닫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 건 화두가 자신의 객관화였다.

 

자신이 만든 것에 함몰되어 이 시대의 예술판에 누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자기고백으로 밤잠을 설치곤 했다. 관객의 시선, 대중의 감성과 감각은 무서운 것이며, 객석에 나만 못한 지성은 없다는 경외감을 서약처럼 가슴에 새겨야 했다. 그것을 깨달으니 작품과 작업에 있어서 더욱 깊은 심연의 조우를 할 수 있었다. 감사와 은혜로운 시간들이었다.

 

마흔 두 살 생일 날. 축하주를 마시고 들어선 거실에서, 선친께서 쓰시던 지필묵을 꺼내 겁도 없이 써 내려간 글귀가 도이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 下自成蹊)”였다. 사마천이 사기(史記)의 이장군열전(李將軍列傳)에 올린 내용인데, 그 뜻이 분방(奔放)하여 말 없는 가운데 향기로운 처신일수도 과묵한 의기로움일 수도 있어서 시시각각으로 마음에 달리 와 붙는다.

 

지금도 연구실 한 켠에 걸어 놓고 보는 이 내용을 나는 좀 더 형이상학적인 영역에서 만나는데, 이것도 결국은 사람과의 관계이며 나의 됨됨이가 사람들의 반응으로 소롯길()을 만들기에, 그 어떤 화두보다 무거운 눌림으로 이제껏 양어깨에 붙어있다.

 

직역하자면, ‘복숭아꽃 배꽃은 말이 없지만, (그 향기와 자태에 반해 많은 사람이 그곳을 오가니) 그 밑에는 자연히 소롯길이 생긴다.’는 내용이다.

 

고사는 이렇게 전한다. 전한(前漢) 장군 이광(李廣)은 무예가 뛰어나 변경의 태수가 되었고, 그의 용병술은 덕()을 중시하고 부하를 사랑하였으므로 모두가 진정으로 그를 흠모하며 따랐다. 4천명의 병사로 4만의 흉노군에게 포위당하고도 적장을 쓰러뜨렸으나, ()에 봉해지지도 않았다.

 

노령에도 불구하고 대장군 위청(衛靑)이 출진할 때, 스스로 종군을 거듭 요청하자, 무제는 그에게 우장군으로 봉하고 막북에서 합류를 명하였으나, 그는 도중에 길을 잃어 기일 내에 당도하지 못했다. 흉노에게 고전하던 위청은 이광을 의심하고 무제에게 그의 부대를 벌하라고 상주했다. 하지만 그는 모든 죄는 자기에게 있다며 부하를 감싸고 막사로 돌아와 육십이 넘어 심판을 받는 치욕은 견딜 수 없다며 자결하고 말았다. 그의 죽음을 듣고 모든 사람이 슬퍼하였고 사마천은 그를 애도하여 위 글을 헌정했다는 이야기다.

 

비슷한 글로 난향천리 인덕만리(蘭香千里 人德萬里)’가 있다. 난의 향기가 천리를 간다면, 사람의 덕은 만리를 간다는 뜻이겠거니와, 자질노둔(資質老鈍)한 나에게서 훑어 낼 그 무슨 덕이 있어서 단 십리라도 갈 것이 있단 말인가?

 

다만, 후학양성과 예술창작의 세계에서 바르고 그름의 잣대는 분명하게 그을 줄 아는 용기와 지혜로움이 나에게 축복처럼 주어져, 후학에게는 바른 배움의 길을 열어주고, 관객에게는 영혼의 상처나 피해가 없도록 일신(一新) 또 일신(日新)해야 할 일이다.

 

박 병 도(전주대학교 교수, 연출가)

 

[새전북신문 칼럼] 2013. 06.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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