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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박병도 연출론] 창의적인 무대 이미지 설계, 그 실험과 결실의 어제와 오늘

창의적인 무대 이미지 설계그 실험과 결실의 어제와 오늘

 

- 박병도의 공연 설계를 중심으로 -

 

김 길 수(연극평론가. 국립순천대학교 교수)

 

-본고는 199810월에 개최된 [16회 전국연극제]"학술세미나"에 발표된 [박병도 연출론]에 대한 연극평론가 김길수 교수의 발제논문을 전문 수록한 것입니다.

 

 일시/ 19981029

 장소/ 순천 KBS 공개홀

 주최/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주관/ 한국연극협회

  

<목차>

  

1. 들어가는 말

2. 이미지 변환을 향한 급전의 멋, 현장의 맛

3. , 내면 심리 변화에 대한 상징

4. 상징을 겨냥한 소리의 기호학

5. 브리지 음악을 통한 볼거리와 들을거리

6. 대조 이미지를 통해 본 표현주의 연극성

7. 선율을 통한 장면의 교차, 이미지의 전환방식

   7-1. 선율을 통한 현실과 초현실의 만남, 교차 : <>

   7-2. 침묵과 정지를 통한 이미지 창조방식 : <오장군의 발톱>

   7-3. '(핏줄의 흐름)의 이미지' 창조 방식

   7-4. 인형을 통해 본 상징 이미지, 내면심리 이미지

8. 맺는말 : 우리다운 정감세계를 수놓는 환타지 설계사

 

1. 들어가는 말

 

제한된 무대 공간. 제한된 시간 영역. 이 불리한 틀 안에서 우린 연극적 아우라를 만들어내야 한다. 과거와 현실의 교차, 삶의 영역과 꿈의 영역의 교차. 산자의 영역과 죽은자의 영역간의 교차, A라는 가치 지향점과 B라는 가치 지향점간의 만남, 부딪침, 그 갈등의 에너지를 연극만의 고유의 이미지로 만들어 내야한다. 유형적인 만남과 충돌이 대립의 에너지로 승화되고 무형적인 두 지향점 사이의 만남과 충돌이 갈등의 에너지로 승화될 때 공연 작품은 양질의 연극성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이런 연극의 흐름에는 일종의 호흡이 있다. 위기감이 발생될 때 극의 호흡은 점차 빨라지고 위기감이 절정에 달할 때 호흡은 빨라지다 못해 정지 상태에 이른다. 다시 말해 긴장이 극에 달할 경우 호흡은 일시 정지한다. 공연 내용이 갖고 있는 호홉의 강약, 길어짐과 짧아짐, 이런 싸이클을 창출하기 위해 작가나 연출가들은 그 나름의 공연 설계를 하고 이를 섬세한 구조로 이미지화 하기 위해 발버둥 친다.

 

무대 디자이너들은 이런 원리에 맞추어 극의 텍스트를 해석하고 각 장마다 도출되는 모티브를 그 나름의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로 설계하고 창출하기 위해 고민한다. 연극 무대, 제한된 시공간의 요인들, 그것들을 해소하기 위해 선율이 동원되고 상이한 영역들 간의 공통분모인 소리나 코러스 그리고 그 밖의 다양한 청각적 처방이 탐색된다.

 

소리나 선율 이외에 이미지 변화를 주도할 요소들로 조명, 의상, 배우술, 무대구조물 등을 들 수 있다. 현실의 조명 방식이 A라면, 현실 속에 삽입되어야 할 비현실 영역 내지 인물의 내면이나 의식 영역은 B라는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배우들의 의상이 A라는 현실적 의상이라면 비현실 영역은 B라는 반현실적인 의상 내지 탈마스크 등이 동원될 수 있다.

 

배우들의 움직임이나 동선이 현실 영역에서 객관적이고 정상적인 움직임선 이라면 반현실 영역이나 무의식 내지 내면의 영역일 경우 움직임 선은 아주 느린 동작이거나 과장된 동작 혹은 작가의 상상에 의해 만들어진 주관적 이미지로 설계될 수 있다.

 

공연의 일차 텍스트는 희곡이다. 좋은 공연작품은 양질의 희곡성 다시 말해 탄탄한 구성력을 지닌 극작술에 기인한다. 그렇지만 연출자의 정밀한 해석력 및 창의적 상상력에 의해 원작이 새롭게 탄생되기도 하고 원작의 연극적 깊이가 훨씬 심도있게 창출되는 경우가 있다.

 

한편의 희곡 텍스트가 완벽한 예술작품으로 변용되는 과정, 이를 위해 전제될 사항 중의 하나로 '창의적인 공연설계작업'을 들 수 있다. 전국연극제를 통해 커다랗게 반향을 얻어낸 작품들이 많이 있지만, 특히 박병도의 공연설계는 그 특유의 유미주의적 시각과 오랜기간의 무대 실험의 노하우가 중첩, 합일되어 강렬한 흡인력을 발휘한다.

 

7회 전국연극제 대상 수상작 [오장군의 발톱], 6회 전국연극제 우수상 수상작 [()]. 그리고 [사로잡힌 영혼] 공연은 박병도의 치열한 공연 설계작업이 곳곳에 배어 있다. 무엇보다도 단순한 언어적 드러냄이나 평면적 제시과정에 불과한 장면에서 박병도는 그 특유의 비유 내지 상징 이미지를 창조하여 공연성의 깊이와 폭을 확대시켜 나간다. 그의 강점은 무형의 내면 심리가 가장 멋들어지게 무대화되어 공연주제가 보다 확실하게 살아나도록 한다는 데에 있다.

 

박병도 공연설계과정의 또 다른 매력은 교훈성 모티브와 감동적 모티브, 이 두 모티브의 교차 싸이클이 균형과 조화를 이룬다는 점에 있다. 메시지가 살아 숨쉬면서 얼마동안의 재미와 휴식을 맛보게 하는 설계, 어떤 경우는 비유성 볼거리와 들을거리가 선보여 일석이조의 공연효과가 배어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제 이를 작품 분석과 더불어 살펴보기로 하겠다.

 

2. 이미지 변환을 향한 급전의 멋, 현장의 맛

 

박병도의 연극 <사로잡힌 영혼>(이상현 작) 공연 서두에서 수백마리의 말들이 들판을 달리는 장면이 나온다.

 

장승업이 제주도 양마장의 말들을 풀어서 그들로 하여금 들판을 달리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비좁은 무대, 제한된 공간에서 양마장의 넓은 공간, 수백마리의 말들의 움직임을 어떻게 표현할까? 연극연출가들에겐 초미의 관심사이자 난제 중의 난제이다.

 

희곡 텍스트에는 말떼들의 움직임이 영사막으로 투사되어 나타날 뿐이다. 영상이미지, 이런 복제 매체는 현장공연예술의 맛을 상실할 위험이 있다.

 

공연무대만의 현장감, 이를 위해 설정된 박병도의 창의적인 무대 이미지는 과연 무엇인가?

 

이를 위한 처방이 다름 아닌 집단 탈춤이다. 탈을 쓴 배우들이 말의 이미지를 방불케할 육체기호를 개발하여 장쾌한 움직임을 만들어 간다. 배우들의 손이 하늘로 솟구치고 두발은 무대 바닥(대지를 상징)을 박차며 규칙적으로 움직인다. 두 그룹으로 나뉘어진 배우들은 서로 마주하며 움직임을 교차시켜 보기도 하고 마지막엔 동심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한다. 그 속을 장승업 역의 배우가 몽둥이로 허공을 내리치며 유희를 벌인다. 급박한 이미지를 방불케하는 말밥굽 음향 스피디한 현대 신디사이저 음악. 뜨거운 심장 고동소리를 방불케하는 규칙적인 북소리. 여기에 달리는 말들과 하나가 되는 장승업, 이는 황홀경의 순간, 진정한 해방의 순간을 의미한다.

 

이 때. "어명이다"하는 소리와 더불어 금부도사가 북을 치며 그를 체포하려 한다. "장승업은 듣거라, 너는 양마장 어승마를 놀라 달아나게 했으니 참형감이다 !" 이 호령소리와 더불어 수많은 말 역할을 했던 배우들은 일시에 그를 체포하려는 포졸 역할을 한다. 장승업이 놀라 도망가려 하자 탈을 쓴 배우들은 "꼼짝마라"는 외침과 더불어 그에게 위협적인 태도를 취한다. 이들의 역할 변신은 탈을 냵기에 아주 자연스럽다. 말의 이미지는 일 순간 포졸의 이미지로 변용된다. 이는 탈마스크와 몸짓 언어.음성 기호 간의 앙상블이 이루어졌기에 가능하다.

 

이 장면에 뒤이어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진다. 무대 반대편에서 또 다른 전령이 북을 두드리며 어명을 전달한다. 장승업을 궁중 도화서 정 6품 도제주 감찰로 임명한다는 전언이다. 삼현육각 음향과 더불어 수많은 전령들이 축하하는 분위기를 일깨우며 장승업에게 관복을 입힌다. 아름답고 감미로운 음악 선율,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 높은 지위에 오른 장승업을 사모하며 경외하는 태도의 이미지가 구현된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이 있다. 수 백마리의 말들을 상징하는 탈을 쓴 배우들, 이들은 일시에 그를 붙잡아 가는 포졸들이 되었다가 또 다른 어명이 전달되는 순간 장승업을 호위하는 전령들이 된다. 이런 수많은 역할 변신, 특히 상황 반전을 노리는 역할 변신을 어떻게 처리한단 말인가? 그 해답은 다름닌 '탈의 활용'이다. 배우들이 탈을 썼기에 이 같은 역할 변환이 가능하다. 배우들의 구체적인 얼굴 표정으론 다양한 이미지로의 변신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탈은 구체적인 말의 모습이나 구체적인 포졸의 이미지로 형상화되어서는 안된다. 이 두 이미지. 그 의미를 동시에 상징할 수 있는 추상의 탈이 필요하다: 이 공연에선 추상의 탈이 활용되어 다양한 이미지를 포괄적으로 상장하는데에 결정적 기여를 하고 있다.

 

이같이 탈춤 및 탈놀이를 통해 박병도는 이미지 창조 및 변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실현시켜 놓고 있다. 역할변환 과정은 5명의 불특정 아이들과 장승업이 함께 뛰노는 장면에서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장승업은 궁중에서 도망 나와 저잣거리에서 아이들과 놀이를 즐기고 있다. 먼저 어린애 탈마스크를 쓴 배우들,녀 복장을 하고서 함께 어울려 노래를 부른다.

 

장승업 역시 노래에 맞춰 아이들과 함께 춤추기 시작한다.

 

노래: 엉기 엉기 기신다 실실 꼬꼬

 

두루 두루 보신다 실실 꼬꼬

 

활활 젓는다 실실 꼬꼬

 

쩍쩍 잡수신다 실실 꼬꼬

 

안질뱅이 꽁꽁 선질뱅이 꽁꽁

 

빙빙 돌자 뎅뎅 돌자 (반복)

 

흥겨움, 볼거리와 들을거리가 관객을 즐겁게해 준다. 소녀탈을 쓴 배우들. 소녀다운 몸짓. 소녀같은 음색과 웃음소리, 소녀들의 노랫가락 색조를 만들어낸다. 뒤이어 아이들의 어머니가 등장하여 집에 빨리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낸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탈을 쓰고 벗는 작업을 통해 일인이역의 역할변신이 자연스레 이루어짐이다.

 

어머니1: 당손아 밥 먹어라!

 

어머니2: 미륵아 밥 먹어라!

 

어머니3: 감질아 밥 먹어라!

 

어머니4: 점백아 밥 먹어라!

 

어머니5: 큰놈아 밥 먹어라!

 

어머니 1,2,3,4,5 역의 다섯 인물, 이들의 역할이 또 다른 배우들에게 맡겨져 있지 않다. 다섯 어머니 역할들을 소녀탈을 쓴 배우들이 맡아한다. 배우들은 방금 전까지 서로 호흡을 맞추어 천진난만한 분위기. 아동들의 순수한 놀이공간을 만들어왔다. 이때 당손 어머니가 등장하여 딸 당손을 부른다. "당손아 밥먹어라". 당손 역의 배우는 어머니 l 역할로 변신하기 위해 어떤 태도와 반응을 보이는가? 그는 동그란 원놀이 공간에서 빠져 나오면서 탈을 벗는다. 동시에 객석 허공을 향해 자신의 아이 이름을 부른다. 탈을 벗으면서 그 배우는 소녀의 음색이나 몸짓에서 벗어나 완전 어머니다운 신체기호를 만들어간다. 미륵 역의 배우 역시 어머니 2의 인물변신을 위해 재빨리 탈을 벗고서 어른의 음색으로 그리고 먼 곳에서 뛰노는 아이에게 말하듯 반응연기를 한다. '미륵아 밥먹어라'.

 

역할놀이와 변용의식이 탈놀이 형식을 통해 일시에 힘을 발휘한다. 이는 탈의 의미가 관객과 약속한 연극기호이자 상징기호이기에 가능하다. 배우가 일인이역의 역할을 하는 .과정에서 탈의 활용이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박병도의 창의적인 공연설계 과정을 통해 이루어짐을 살펴보았다.

 

탈놀이의 상징성이 효과적인 연극성 창출로 이어진 경우로 이윤택의 <바보각시>를 들 수 있다.

 

<바보각시> 공연에서 집단 윤간장면이 어떤 연극 기호로 설계되었을까? 배우들이 실제로 벌거벗고 행위를 벌인다면 이 보다 더 혐오스럽고 끔직한 장면은 없을 것이다. 연극은 체험 예술이자 상징의 예술이고 약속된 기호의 예술이다. 집단윤간이 벌어지고 있음에 대한 썸뜩한 체험. 그러면서 이를 심미적 이미지로 표현해내는 작업. 바로 이게 참 연극이고 참 예술이다.

 

여기서 짐승의 이미지, 정욕을 주체 못하는 동물의 이미지. 이런 속의미를 담고 있는 탈이 동원된다. 탈은 관능, 정욕을 주체못하는 형상을 상징한다. 마치 소돔과 고모라에서나 나옴직한 타락한 인간들 창조의 경건한 섭리를 거역한 짐승의 이미지를 방불케한다. 취객, 파출소장, 실직청년. 어느 순간 짐승탈을 쓰고 음산한 푸름 조명을 받으며 포장마차에 모인다. 탈쓴 배우 하나가 담배를 한꺼번에 피워 문다. 짐승탈을 쓴 두 명의 다른 배우들도 이를 따라한다. 기괴한 음향, 비정상적인 담배 피우기 행위에 이들은 또 다시 한덩어리가 된다. 반투명 망사천으로 구분된 무대 후면에서 탈을 쓴 배우가 드럼을 친다. 드럼 소리가 서서히 빨라지고 위기의 순간을 알리는 급박한 리듬, 이 순간 이들은 바보각시를 한 곳에 몰아 넣는다 바보각시. 겁에 질려 소릴 지른다. 그들은 바보각시에게 탈을 씌운다.

 

탈을 쓴 바보각시 일정한 드럼 소리에 맞추어 탈쓴 남정네들과 함께 춤을 춘다. 사랑 결핍. 사랑 부재의 이 어두운 사회에 자신의 몸을 보시함으로써 그들을 구원시키려 왔던 바보각시, 마침내 그녀는 욕정에 굶주린 포장마차 사람들과 함께 탈춤을 춘다. 마치 살보시 설화에 나온 여염집 여인처럼...... 바보각시와 세 남정네들이 함께 더불어 추는 탈춤은 남녀간의 육체적 만남. 성적인 교감을 상징하여 준다. 집단 윤간이 이루어진다. 격렬한 드럼 소리, 무대 조명은 어두워진다. 혼돈의 이미지를 방불케하는 비명 소리, 어둠 속에서 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이 난삽하게 움직이고...... 붉은 핀조명이 땅바닥에 추락한 바보각시의 탈에 집중적으로 투사된다. 비명소리, 극에 달한다. 강력한 힘에 의해 주눅들고 멍들어버린 듯한 소리... 얼마 동안 정적. 침묵이 흐른다.

 

짐승탈은 이 연극에서 정욕, 본능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홍콩의 밤거리' 장면에서 배우들이 탈을 손과 발에 끼우고서 재미있게 대중가요를 부른다.

 

파출소장이 춤추며 각시의 포장마차에 나타난다. "장사 잘 됩니까?" 그는 각시 옆에 은근한 눈웃음으로 앉는다. 파출소장은 각시에게 통정을 요구한다. "각시야 노래 한 곡 해보거라". 이들은 한데 어울려 홍콩의 밤거리를 노랠 부른다.

 

탈의 활용방식이 다채롭다. 지금까지 짐승탈을 배우들이 얼굴에 썼다면 이제는 팔과 다리에 걸고서 해프닝을 벌인다. 다리는 남자의 성기를 상징할 수 있다. 파출소장은 자신의 다리에 짐승탈을 낀다. 각시 역시 각시탈을 손에 끼고서 홍콩의 밤거리라는 대중가요를 부른다. 손과 발 홍동지탈 부네탈이 한데 어울려 농탕한 유희, 노래를 한다. 이는 성적교감을 상징하는 대목이다.

 

파출소장, 취객. 실직청년 모두 탈을 발에 낌으로써 짐승의 이미지로 변신한다. 각시 역시 손에 탈을 낌으로써 창녀의 이미지로 변신한다.

 

3. , 내면심리 변화에 대한 상징

 

탈이야말로 인간의 내면세계를 가시화하는 적절한 수단으로 인식되었으며 이렇게 표현된 무대는 인간의 진실한 리얼리티의 표상으로 받아들여졌다.

 

박병도는 창의적인 탈의 활용을 통해 의식과 무의식의 교차. 인물의 내면심리변화를 효과적으로 창출시켜 나간다. [사로잡힌 영혼] 공연의 중반부에서 배우들은 기괴하게 변형된 탈을 쓴 채 괴상한 춤을 춘다. 그들은 그림 그리는 장승업 뒤에 서서 여러가지 춤과 언어로 그를 유혹한다.

 

사내1: "청록산수도 있잖아. 석도의 파묵조법으로 그린 것.

 

그 식으로 그려 ! 상감께선 그걸 좋아하셔 !".

 

사내2: "풍림산수도 있잖아. 팔대산인의 백묘화법으로 그린 것.

 

그 식으로 그려 ! 상감께선 그걸 좋아하셔 !".

 

사내 3: "화조곡병도 있잖아. 선남전의 몰골풍으로 그린 것,

 

그 식으로 그려 ! 상감께선 그걸 좋아하셔 !".

 

원작 희곡에 사내 1,2,3이 등장한다. 사내 1,2,3을 배우들이 맨 얼굴로 대처해야 하는가? 박병도는 이를 비사실 인물로 해석하고 있다. 올바른 해석이다. 이를 위해 그는 탈 마스크의 추상적 이미지를 도입한다. 추상 이미지의 탈은 불특정 인물이나 가공 내지 상상의 인물을 상징할 수 있다. 배우들 상기의 유흑언어를 내뱉으며 장승업을 향해 말을 건다. 탈을 쓴 비현실 인물들, 비현실적 동작, 비현실적인 음색. 이는 당대의 잘못된 화풍에 영합하고자 하는 장승업의 내적 욕망, 내적 심리를 상징한다. 장승업의 의식 안에서 이처럼 계속 들려나오는 소리. 그것은 상업성과 세속성에 영합하려는 잘못된 작업 방식을 의미한다.

 

일그러짐에 대한 패로디. 이는 익살스런 노래와 해학성 춤을 통해 그 절정에 이른다. 따라서 장승업 역의 배우는 상상의 인물 배역을 맡은 배우들을 향해 그 어떤 반응연기도 하지 않는다. 그가 반응연기를 보이는 대상은 화필과 화선지로 만들어간 그림일 뿐이다. 장승업은 마침내 자기 고유의 독창성을 버린 채 상감의 취향에 맞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세속성을 향한 장승업의 내적 심리변화, 이는 장승업 역의 배우 장명철이 탈쓴 배우들과 잡스런 춤을 추는 과정에서 절정에 이른다.

 

이풍 저풍 바람풍 하레비풍 할미풍

 

파리잡아 회쳐줄까 개구리 잡아 탕해줄까

 

이법 저법 얽을 법 지에비법 지에미법

 

오줌독에 빠질 놈 인두불로 지질놈

 

해야 해야 솟아라 장구치고 솟아라

 

미역감고 솟아라 오고레 동동 우금부금

 

먼데 색씨 물길러 온다.

 

"파리 잡아 회쳐줄까 개구리 잡아 탕해줄까 / 이법 저법 얽을 법 지에비법 지에미법 / 오줌독에 빠질 놈 인두불로 지질놈". 경건성을 상실한 이미지, 순결한 예술성을 상실한 이미지는 노래가사에서부터 시작하여 농탕한 춤사위에서 상징적으로 일깨워진다. 탈쓴 배우들이 먼저 푸른 조명, 비현실 분위기 속에서 춤추고 노래부른다. 이들의 등장, 이들의 노래. 이들의 춤이 궁중 도화서 공간에 실제 펼쳐질리 만무하다. 이는 어디까지나 장승업의 내면이나 그의 주관적 사고나 관념에 불과하다. 주인공 내부 생각이나 주관이 강조됨에 따라 현실의 경계는 그리고 무대의 시공간 법칙은 쉽게 무너져 내린다.

 

첫 번째 노래와 춤이 펼쳐질 때 장승업은 엎드려 있다. 드디어 두 번째 노래와 춤에 그는 반응을 보인다. 이제 신나게 노래 부르며 춤을 춘다. 이 부분 역시 원작에 전혀 없는 부분이다. 두 번째에서야 주인공이 함께 하는 춤과 노래. 이는 그가 세속풍의 그림에 영합되어 가는 내적 변화과정을 상징적으로 일깨워주는데에 기여한다.

 

푸른 조명 아웃되자 비현실, 추상의 현실은 사라지고 그림 그리는 장승업의 현실만이 클로즈 업된다. 장승업 혼자서 노래의 후반부를 다시 한번 흥얼거리며 부르고 있다 : "먼데 색씨 물길러 온다". 그의 그림작업을 돕는 조수는 고개를 15도 기울인 채 졸고 있다. 이 때 핀조명을 받으며 일점도사가 무대 후면 가장자리에 나타난다. 이 처방 역시 그의 내면에서만이 일어나는 사건이다. "흐흐흐 썩을 놈! 더덕더덕 잘 발랐구먼 ! 껍데기 그림, 누더기 그림, 도둑 그림. 네 이놈! 상감의 봉받이 할놈이라구! 당장 치우지 못해!" 이 소리에 장승업 놀란다. 이 소리 역시 장승업 내면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현실 속의 인물인 그의 조수, 그 역의 배우는 스승의 소릴 듣지 않는 것처럼 반응연기를 한다. 그 배우는 이미 탈놀이에 대해서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게 장승업의 내면 속의 일이기 때문이다.

 

탈의 활용은 이처럼 내적 심리변화를 상징하여준다. 이를 위해 추상적인 인물군상, 상상의 인물군상을 만들어 가는 무대작업이 전제되며 이는 결국 주인공의 내면 세계나 심리상태, 그 지향점들을 상징적으로 일깨워 주는 데에 기여한다.

 

연극 <바보각시>(이윤택 작. 연출)에서도 탈마스크와의 만남, 이에 대한 반응 연기가 각시의 내적 딜레머를 상징하는 데에 기여한다. 이미 탈놀이가 집단 윤간을 상징함을 앞에서 살펴보았다. 농탕한 탈놀이. 어둠 속에서 각시의 비명소리. 얼마 후 정적. 침묵, 서서히 무대 밝아진다.

 

조명이 현실로 돌아오고 헝클어진 머리. 쓰러진 바보각시. 눈물로 뒤범벅이 된 바보 각시, 한바탕 카오스의 대변혁이 휩쓸고 간 뒷끝. 사랑의 보시를 위해 왔건만 그 작업이 이토록 고통스러울 줄이야... 각시 배역의 이지하. 한 동안 충격을 감당하지 못한 표정을 짓는다. 각시, 서서히 머리카락 옷매무새를 추스린다. 그녀, 주변현실을 바라 보다가 드디어 각시탈을 마주한다. 각시탈을 볼 때 마다 집단윤간의 악몽이 되살아 난다. 그러나 각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 몸을 보시하기 위해 이 어두운 곳으로 왔음을 재인식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각시는 이 양 갈래에서 고민한다. 그녀 각시탈을 한 손에 높이 쳐들어 본다. 각시 역의 이지하, 각시탈을 마주보며 자신의 살보시 사명을 또 한번 떠올려 본다. 윤간의 고통이 악몽으로 떠오르면 그녀 다시 돌아서서 각시탈을 외면한다. 침묵, 마주보기, 돌아서기, 눈을 지그시 감기, 각시탈과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는 이런 동작들 이는 살보시 행위에 대한 그녀의 내적 갈등과 번민. 섬세한 심리변화과정을 밀도 있게 무대화 하는 데에 기여한다.

 

[바보각시]공연에서 각시탈을 마주하는 행위, 그 탈을 외면하는 행위, 구원사명을 향한 내적 몸부림, 내적 심리변화를 일깨워준다. 탈과의 만남, 겁탈을 유도한 본능의 탈, 이런 탈을 통해 만들어간 배우들의 내면연기, 반응연기는 인물의 내적 갈등 및 심경변화 과정을 상징적으로 살려내는 데에 공헌하고 있다.

 

4. 상징을 겨냥한 소리의 기호학

 

집단 란치와 가학, 그 행위가 중요하다. 가학행위를 누가 하는가. 이게 이게 중요하지 않을 때가 있다. 이를 위해 배우들이 곤장이나 형틀을 설치하는게 기동력 있는 무대 변환작업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있다.

 

이를 위해 박병도는 어떤 공연설계해법을 강구하고 있는가? <사로잡힌 영혼> 공연, 강렬한 타악 소리, 북소리가 무대를 강타한다. 그는 번거로운 장면 그림을 소리효과와 이에 대한 탄력적인 반응연기로 창출시켜 놓는다. 하얀 종이 옷을 입은 허깨비형상의 배우들, 타악 소리에 맞추어 반응연기를 일사불란하게 한다.

 

소리 1: 이 자들은 대궐 경계를 허술히 한 별감들입니다.

 

별감들: 우리는 죄가 없소. 출입표신을 내준 도화서에 책임이 있소!

 

김대감: 매우 쳐라 !

 

별감들: (비명)

 

소리 2: 이년들은 장가가 자주 다니든 주막의 주모와 작부들이 옵니다.

 

주모들: 우리는 장가한테 술판 죄밖에 없소. 장가를 잡거든 우리한테

 

먼저 넘겨주세요. 외상값이 태산같이 밀렸어요.

 

김대감: 매우쳐라!

 

주모들: (비명)

 

소리 3: 이자들은 시회를 열 때마다 장가를 불러 들여 그림을 그리게

 

한 자들 이옵니다.

 

선비들: 이 것 보시오. 선비는 나라의 기강인데 어찌 비천한 환쟁이에

 

연루되어 욕을 보인단 말이오. 이는 필시 배후에

 

김판서: 매우쳐라!

 

선비들: (비명)

 

(비명과 고문소리 낭자한 중에 민판서가 등장하여 외친다)

 

민판서: 그쳐라 ! 그치지 못할까 ?

 

(일시에 모든 소리와 동작 정지)

 

 

민판서와 김판서가 세력 다툼으로 서로 싸우는 과정. 그로 인해 발생한 고문, 고문 받은 자들 역의 배우들, 일시에 앞으로 쓰러진다. 일사불란한 동작, 창호지 부스럭 소리. 고문의 가혹함이 소리 효과. 쓰러지는 그림을 통해 극대화된다.

 

5. 브리지 음악을 통한 볼거리와 들을거리

 

고종과 장승업 사이의 지루한 대화가 시작된다. 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 틀극과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극중극. 그 사이를 박병도는 다양한 볼거리와 들을거리. 이전 장면 그림과 다음 장면 그림을 멋들어지게 연결시켜 놓는다.

 

장승업: 말씀을 사뢰자면 사연이 길어서 ...

 

고종: 애길 해보게나 왜 달아났는지 ?

 

(조명이 장승업의 얼굴로 좁아지며 무대 밖에서 들리는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암전)

 

 

(웃음소리 높아지며 당대 잠영세족의 명류들인 서공, 한공, 주공, 관공들이

 

모여 시회를 하고 있다. 그들 사이에 끼어 앉은 3. 4명의 기생들.

 

장승업이 화선지와 화구일습을 펼쳐놓고 그림 그릴 채비를 하고 있다.

 

이 무렵 장승업은 겉으로는 굽신거려도 속으로는 자만심이 넘친다.)

 

서공: 내기를 해 ? 저네하고 나하고 ?

 

장승업: , 그러하옵니다.

 

 

박병도는 5장과 6장 사이에 경쾌함, 그리고 두 장면 사이의 공통 분모를 설정하려 하고있다.

 

이야기 나라로 떠나기 위한 준비가 이루어진다. 두 대화자는 먼저 관복을 벗고 간편한 복장으로 갈아입는다. 장승업 역의 배우 장명철이 고종역의 배우를 등에 업는다. ", 가시죠!"하면서 배우들이 무대를 경쾌한 음악에 맞추어 몇 바탕 돈다. 옷을 정리하다 잠시 정체한 내관 역의 배우가 헐레벌떡 허둥거린다. "전하 ! 전하 !"

 

이 때 무대좌측으로 이야기 속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 역시 브리지 음악에 맞추어 춤추며 등장한다. 어떤 이는 술동이 소품을 경쾌하게 밀고 들어온다. 어떤이는 또 다른 소품을 짊어지고서 춤추며 들어온다. 소품과 배우의 집단 몸짓이 이루어지고 그 집단춤이 절정에 도달할 때 이야기 속의 첫 장면이 자연스레 만들어진다.

 

이야기극의 지루함이 저절로 희석된다.

 

6. 대조 이미지를 통해본 표현주의 연극성

 

이 연극에서 갈등의 주 요인인 일상성의 모티브와 예술성의 모티브를 대별해 볼 필요가 있다. 일상성의 모티브는 작품 배면에 전반적으로 깔려 있기에 구체적으로 거론 규명함은 별 의미가 없다. 화가 장승업이 그림 그리기 작업을 통해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 이는 당연한 일상성의 모티브라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일상성의 모티브는 예술작품을 만들어 내야한다는 염원, 살아 움직이는 말들의 모습을 그려내야 한다는 염원과 서로 대립되어 나타난다. 살아있는 말들을 그리고자 함은 갇혀 지내는 왕의 심정을 위로하려는 의도이다. 그러나 살아 움직이는 말들의 형상은 공교롭게도 장승업의 손과 눈의 작업에선 이루어지지 못한다. 자신의 잘못된 생각, 비뚤어진 자신의 관점이 원인이라 생각한 장승업, 스스로 자신의 눈을 찌름으로써 거듭 태어나고자 몸부림친다. 장승업의 몸부림, 장승업의 갈등은 관객 모두의 몸부림이자 갈등으로 전이되어 나타난다. 이 갈등의 상황이 첨예화되면서 관객 역시 갈등, 몸부림. 번민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 같은 갈등은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 호흡을 가다듬게 한다.

 

박생도: 제 말이 맞지요. 보세요. 이것도 달리고 있고 이것도 그렇게,

 

그런데 이거와 이건 달리길 멈추고 그냥 서있기만 하잖아요.

 

장승업: .....

 

박생도: 어쨌든 됐습니다. 달리든 서있든 이만한 명품이 이루어졌으니...

 

장승업: 아니야 ! 난 분명히 달리는 말들을 그릴려고 했어 !

 

갈기털을 세우고 바람을 가르며 들판을 달리는 말떼들을 그려서

 

궐내에 갇혀있는 상감마마의 어심을 풀어 드릴려고 했어 !

 

근데 왜 이렇게 됐지? 달려야할 말들이 왜 서있기만 하지?

 

상감마마께 약조한 게 이게 아니었어! 상감께선 이런 말을

 

좋아하실리 없어 !

 

박생도: 그럴리 있겠습니까. 뭘 그리든 잘만 그리면 그만이지

 

그런것 까지 따지지 않으실 겁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까지 그려

 

내겠다고 약조까지 하셨다면서요. 벌써 날이 새고 있는데 오늘

 

은 이만 하시고 붓을 놓으시지요.

 

장승업: 아니야. 이건 아니야! 다시 그려야겠어.

 

어서 이걸 치우고 새물감을 가져오게.

 

박생도: 나으리! 이러시다간 또 저번처럼 찢다가 달아날 수

 

밖에 없습니다. 계속한다고 해서 될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장승업: 아니야! 상감께선 어쩌면 우리보다 더 가여운 분이셨네.

 

하루에도 몇번씩 대궐 담장을 뛰어 넘어 달아나고 싶다 하셨어.

 

나 같이 같잖은 놈에게 속마음을 열어 보이시다니!

 

그런 분에게 내가 할 일은 그림 한 폭이라도 제대로 그려 올려

 

사무친 어심을 풀어 들려야 하네! 이건 아니야 ! 이렇게 해선

 

안돼 !

 

궐내에서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고 몇 번씩 달아나 위기에 처한 적이 있음을 관객은 알고 있기에, 그가 무사하기를 바라는 입장에서 어서 빨리 그림을 완성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장승업은 이미 궐내 생활의 답답함을 익히 체험하였던 바 있다. 이 때문에 그는 어린 상감이 궐내에서 계속 갇혀 있음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살아 움직이는 말들의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왕에게 진정한 해방공간을 창조, 선사하고 싶어한다. 관객은 진정한 예술가로서의 작업 의지에 찬사와 공감을 표시한다. 서로 상충 작용을 하는게 문제다. 갈등의 상황은 초반, 중반부터 잉태되어 왔다가 종반부에서 강렬하게 증폭되기 시작한다.

 

갈등은 마침내 장승업의 내면에 자리한 스승 일점도사의 등장과 더불어 새로운 파국으로 이어진다. 이 파국은 연극의 비극성을 극대화시키며, 스승 일점도사는 장승업의 궐내 작업마저 세속적인 욕망에 영합한 짓거리라 간주하고 그를 강하게 질책한다.

 

일점: 상감이 좋아하실 그림을 그리겠다구? 썩을 놈! 이젠 상감의 봉받

 

이가 됐구나! 울굿불굿 더덕더덕 쳐발라서 또 다시 갈보짓을 해보

 

겠다 그말이지? 갈고 졸이고 버리고 비워서 끝내는 무엇을 그리

 

고자 하는 마음마저 없어져야 한다고 했는데 누굴 위해, 무엇을

 

그려? 이젠 손도 썩고 눈도 썩고 창자속 배알까지 썩었으니 다시

 

태어나긴 글렀군, 영 글렀어. 흐흐......

 

장승업: 도사님! ! ! 날 다시 한번! 다시 한번 태어날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날 다시 한번 !

 

(그림을 밟으며 허우적대는 문득 들려오기 시작하는 말떼들이

 

달려오는 소리!)

 

장승업: 부절따! 가리온! 표절따!

 

부절따! 가리온! 표절따!

 

(일점도사의 대사와 장승업의 대사. 그리고 말발굽 소리는 낮은

 

북소리와 함께 마구 엇갈려 상승된다)

 

살아 움직이는 말들을 그려내야만 하겠는데 그의 눈과 손발은 따라주지 못한다. 내일까지 그림을 완성하여 상감에게 바쳐야하는 상황은 급박하게 다가오는데 진정한 예술가로서의 길. 순수한 예술 창작의 길을 일깨우는 스승 일점의 질책은 무대와 객석을 강타하기 시작한다. 스승 일점도사의 등장과 따가운 질책 언어는 현실의 시공간의 경계를 뛰어 넘는 표현주의 연극의 양식이자 초현실주의 연극의 양식이라 할 수 있다. 말들의 소리 역시 장승업의 내면, 그의 내적 고뇌, 그만의 환영과 환청을 일깨우기 위한 표현주의 연극 기법에 다름 아니다. 주인공 장승업의 내적 고뇌 상황이 이 처럼 강렬한 표현 효능을 발휘함으로써 감상층 모두 그와 동일한 고뇌에 휩싸인다. 갈등의 극한점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해 괴로워하는 장승업. 그러나 그의 유일한 출구는 자신의 눈을 자해하는 길이었으니 ......

 

장승업: 아니야 !아니야 ! 난 다시 태어날 거야 ! 썩은 손, 썩은 눈을 도려내고

 

다시 태어날 거야 !

 

(두 눈을 후벼 파다가 바닥에 꼬구라지며 얼굴을 짓찧는다.)

 

박생도: 나으리 !

 

(놀래서 부둥켜 안는 것과 동시에 배경막의 말들과 모든 소리 사라

 

지고 정적, 박생도가 일으킨 장숭업의 얼굴은 두 눈에서

 

흐르는 피로 피투성이가 되어 있다).

 

박생도: 나으리! (암전)

 

눈을 찔러 피가 솟구치고 윗옷을 벗어 던지고서 몸부림치는 모습, 표현주의 연극의 에너지가 강렬하게 폭발할 때 관객은 숨을 죽인다. 관객은 오금이 저린 채 처절한 자해 행위를 바라보아야 한다. 영혼의 포효, 예술적 투혼의 소리가 단말마적 언어와 소리 그리고 선율과 음향으로 변용된다. 외침 절규에 의한 폭발의 에너지는 마지막 장면에서 새롭게 정리된다.

 

웃옷을 벗어 던지는 배우 그림, 상체를 벗은 상태로 달리는 말처럼 행동하는 그림, 급박함, 격렬함의 소리효과, 뒤이어 갑작스런 정적 이미지, 그리고 고요 속에 느린 동 작 이미지를 만들어 놓는다. 시끄러운 타악 소리와 정적 이미지가 현저한 대조를 이룬다.

 

격렬한 외침과 침묵이 대조를 이룬다. 빠른 움직임과 느린 움직임이 대조를 이룬다. 이를 통해 내면의 혼돈, 달리는 말을 향한 그림, 그를 향한 내적 몸부림이 보다 극대화되어 나타난다. 눈을 찌르는 장면, 거듭남, 박생도의 단말마적 외침 "나리!". 이후의 장중하고 충격적인 이미지를 담은 무거운 선율이 뒤이어진다.

 

7. 선율을 통한 장면의 교차, 이미지의 전환 방식

 

선율이 감상층에게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면 그리고 마음 속의

 

과거와 미래를 회상할 수 있게 만든다면 선율은 지상의 영원한

 

메아리가 되며 우린 그 선율을 통해 영원한 자아를 회복하게 된다.

 

- 도이치 낭만주의 극작가 장 파울 Jean Paul-

 

 

연극에서 선율의 효과는 이미지 창조 내지 이미지 변환 과정에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선율을 어떻게 활용하였느냐. 소리 효과를 적재적소에서 잘 활용하였느냐. 그 여부가 연극 공연의 성패를 좌우하기까지 한다.

 

박병도의 연극 히트작 <>, <오장군의 발톱> 공연에서 그가 설정한 반젤레스(Vanzelles)선율은 작품의 연극성을 새로운 이미지로 창출시켜 나가는 데에 결정적 기여를 한다.

 

이미 박병도의 선율에 대한 선곡 안목은 출품작은 아니지만 <위기의 여자> (87년 전주 황토예술극장) 공연에서 확인된다. 박병도가 설정한 '키타와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이란 극의 주제음악은 주인공 모니크 역을 맡은 김예종의 섬세한 언어 음색과 앙상블을 이룬 바 있다. 남편으로부터의 배신, 분노, 아픔, 아픔을 삭이는 작업, 위기 극복, 결단의 심리변화, 이를 나타내기 위한 처방으로 언어속도, 그 호흡의 빠름과 느림, 긴장과 이완, 열정적인 음색과 차분한 음색을 들 수 있다. 선율 처방으로 상처 난 가슴을 때리는 키타 현 소리, 이를 삭이며 스스로 치유하고자 하는 바이올린 현의 멜로디를 들 수 있다. 선율의 속도, 높음과 낮음, 그 흐름을 잘 타며 김예종은 관객석을 향해 걸어나간다. 선율과 앙상블을 이룬 몸짓 언어, 그의 음색이 관객을 무한한 연극적 아우라에 휩싸이게 만든다.

 

이처럼 선율은 인물들이 처한 내적 딜레머나 그 심리 변화를 간접적이나마 암시하여 준다. 따라서 어떤 선율을 선택하여 그 청각적 이미지가 주제의 층을 두텁게 하였느냐, 그 여부가 공연의 성패를 좌우한다.

 

7-1. 선율을 통한 현실과 초현실의 만남, 교차: <>

 

선율을 통한 이미지 창조의 절정은 88년 대전시민회관 관객들을 완전 매료시킨 <>(오태석 작, 박병도 연출) 공연으로 구체화된다. 제목 태(). 이는 핏줄의 흐름을 이어가려는 우리 고유의 정서. 그 몸부림을 상징한다. 세조는 단종을 죽이지 않기 위해 몸부림친다. 신숙주는 더 많은 신하들이 대역신의 탈을 쓰고 억울하게 죽어서는 안되며, 이를 위해 단종을 죽여야한다고 주장한다. 박팽년의 대를 잇기 위해 여종은 자신의 아들 '창지'가 대신 죽자 완전 실성해 버린다.

 

미침의 언어, 인물들의 음색이 미쳐있음을 알린다는 점에서 그들은 미침이라는 동일한 추상 영역에 머무를 수 있다. 신분이 다른 왕과 여종, 연출자 박병도는 이들이 미쳐있기에 이들의 움직임을 동일 무대 공간으로 설정한다. 이 두 인간의 공통 분모는 핏줄의 흐름이 끊겨있거나 끊길 위험에 처해 있다는 점이며 이로 인한 고통이 극에 달해 실성 상태에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반젤레스의 선율이 설정됨으로써 핏줄의 흐름이 끊겨 몸부림치는 이미지에 의의 흐름이 끊겨 몸부림치는 이미지가 자연스레 첨가되고 상호 교차하기까지 한다. 원래 희곡 대본에 없는 이런 상상의 공간, 비현실 공간의 설정은 창의적인 무대이미지의 제작작업에 의해서 가능하다.

 

이 연극의 절정은 미친 여종과 단종을 살려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세조의 몸부림이 교차하는 장면이다. 원작은 단지 미친 여종이 "창지야!"하고 외치며 몸부림치는 장면만이 있다. 여기서 박병도는 반젤레스의 선율 '무브먼트 4 Movement 4'를 설정한다. 세조 역을 맡은 장제혁이 곤룡포를 벗어 던지고 속옷차림으로, 그리고 한 손에 주걱을 들고 나타난다. "단종을 내놔! 단종을 내놔 !" 거의 미침 상태에 가깝게 소릴 지르며 그는 궁중 이곳 저곳을 배회한다. 이 때 여종이 나타나 창지를 외쳐 부른다. 이들은 지척에 서로를 두고 있지만 미쳐있는 상태라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 여종이 세조의 발목을 붙잡지만 그는 여종에게 반응 연기를 보이지 않고 미침 상태만을 계속한다. 미침의 동작은 "요것이 무엇이냐. 으헤헤헤.. 으헤헤헤.."이란 소리와 더불어 계속된다. '무브먼트' 선율에 또 다른 비장한 음색이 가미된다. 세조의 실성 상태. 신숙주는 놀라고 어찌할 바 몰라 세조를 부른다: "전하! 전하!"

 

그런데 죽은 사육신들이 나타나 '무브먼트' 선율에 맞추어 춤을 춘다. 핏줄의 흐름을 잇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미지는 의()의 흐름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육신들의 몸부림과 교차함으로써 무대는 단순 반복의 형태에서 벗어나 다양성의 이미지로 변용되어 나타난다.

 

사육신들은 이미 죽은 자들이다. 죽은자들 이기에 그들의 언어는 살아있는 인물들의 언어와 구별된다. 그들의 행동, 움직임, 동작선 역시 살아있는 인물들의 동작이나 움직임과 철저히 구별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현재의 왕인 세조를 자신들의 군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오로지 그들은 단종을 가신들의 군주로 받아들일 뿐이다.

 

그런데 단종이 어명을 사칭한 왕방연에 의해 사약을 받고 죽임을 당한다. 비명횡사한 단종, 이는 정상적인 죽음이 아니다. 어명에 의해 이루어진 죽음이 아니다. 단종은 죽었지만 애매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에 사육신은 괴로워한다. 그 괴로움을 어떻게 표현해야할까?

 

이 장면에서 사육신들은 앞서와는 달리 선비복장을 하고 있다.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채 그들은 일련의 질서 리듬에 맞추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들의 표정은 무대 측면을 향해 있거나 무대 위아래를 향해 있어 바로 알아 볼 수 없다. 이들은 죽은 자들이기에 얼굴표정이나 윤곽은 확실하게 드러나 있지 않은 채 감추어져 있다. 관객의 눈에 가끔 비치는 이들의 얼굴은 거의 무표정에 가깝다. 무대 조명은 어둡다. 어두운 잿빛 조명에 반사된 이들의 의상 역시 회색빛을 띠고 있다. 반젤레스의 선율에 맞추어 이들은 무대 좌우측 대각선 방향으로 움직이며 춤을 춘다. 춤의 중간 중간에 간헐적으로 배우들은 고개를 떨군 채 온 몸을 부르르 떤다. 커다란 북소리가 기괴한 이들의 움직임에 질서를 부여한다. 죽으면서 까지도 한 임금을 섬기려했던 사육신들의 충성스런 '의의 정신'이 강조된다. 바닷가의 파도소리가 반젤레스 음악에 첨가된다. 파도가 '' 소리를 내며 몰려 왔다가 다시 ''소리를 내며 밀려간다. 쏴 소리를 냈던 파도는 결국 흰 거품으로 끝을 맺는다.

 

강력한 힘을 지닌 왕권, 서슬이 퍼런 당대 세조의 권력, 이런 것들이 '핏줄의 흐름'이 란 일련의 한국적 정감논리에 의해 힘없이 무너지고 만다. 곤룡포를 입은 세조는 나약한 인간으로 변용되어 있다. 흰거품으로 끝나버릴 파도의 이미지, 사육신들의 회색 및 의상, 기괴한 그들의 움직임 등은 '의의 흐름'을 잇지 못해 허우적거리는 사육신의 절망을 상징하는데 기여한다.

 

'무브먼트' 선율은 흐름의 모티브, 즉 작품 전반에 배어있는 '핏줄의 흐름', '의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조망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다양한 인물들을 상상의 공간, 초현실의 공간에서 상호 만나고 교차하게 만드는 데에 기여한다.

 

7-2. 침묵과 정지를 통한 이미지 창조 방식 : <오장군의 발톱>

 

침묵과 정지언어에서 조망해 볼 수 있는 상징적 의미, 선율이 이 상징적 의미망을 보완, 확대시키는 데에 기여하는 경우가 있다.

 

잘못 전달된 징집 영장으로 인해 아들 '오장군'(성이 오씨, 이름이 장군)을 잃어야 하는 어머니의 아픔, 사랑하는 약혼자를 잃어야하는 꽃분과 일소 먹쇠의 고통을 극대화 시켜주는 끝장면이 있다. 우리는 이를 어떤 무대 이미지로 표현해 내야할까 ?

 

오장군이 역정보 공작의 희생물이 되어 죽어간다. 그는 서쪽나라 사령관으로부터 총살형을 당한다. 그는 무엇 때문에 자신이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엄마", "꽃분아", "먹쇠야",하고 외친다. 이 연극은 동쪽나라 군인들이 오장군의 유해를 가족들에게 전달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동쪽나라 군인들이 흰 장갑,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서 오장군의 유해를 들고 유족들 앞에 등장한다. 이들은 반젤레스의 '메시지 Message' 선율에 맞추어 움직인다. 장중하면서 아픔을 고조시키는 음악 선율. 이는 이들의 절제된 움직임에 애도의 뜻을 부여하기까지 한다.

 

이런 장중한 음악 선율에도 불구하고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죽은 오장군네 가족들이다.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 그 고통이 극에 달할 때의 이미지. 이를 표현하기 위해 연출자는 절제있게 움직이는 애도행렬을 등장시킨다. 이와 대조적으로 가족 역의 배우들은 침묵과 정지의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잘못 전달된 징집영장임을 확인하고 아들 '오장군'을 살려내려 했던 어머니와 꽃분. 이를 행정당국에 호소하여 보았지만 속수무책이고 ... 아들 '오장군'은 사기 입대자로 수배당하다 결국 역정보 공작의 희생물이 되어 적진에서 총살형을 당해야 한다. 절망이 극에 달했을 때 보이는 반응, 기가 막혀 도무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영역. 연출은 이를 위해 가족 역의 배우들을 무대 전면에 내세운다. 이들은 군인 역의 배우들이 애도 행렬의 해프닝을 벌일 때 무언의 동작을 취하고 정지 동작을 취한다. 침묵과 정지 동작은 누군가를 향해 강렬히 이야기하고픈 의도, 억장이 무너져 절망하여 허탈할 수밖에 없는 의도를 내포하 고 있다.

 

침묵 뒤에 터트리는 언어, 그것이 침묵영역과 현저한 대조를 이루기에 이는 더욱 강렬한 연극성을 발휘한다.

 

어머니: 장군아 ! 내 아들아

 

꽃분: 장군아, 우리 애기 아빠야 !

 

먹쇠: "음머어어어 !"

 

배우들은 단지 단 한두 마디의 절규언어 만을 외칠 뿐이다. 어머니와 꽃분의 언어가 짧고 간명하다면 먹쇠의 외침은 오랫동안 무대에 울려퍼진다. 어머니와 꽃분 역의 배우가 이 외침 이외에 다시 침묵으로 우뚝 서있다. 이 때 먹쇠가 그들을 다둑거린다.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서이다. 오죽했으면 소(먹쇠)라는 동물까지도 인간(오장군네 가족)과 아픔을 같이 나누며 이런 행동을 하였을까! 소의 울음소리, 그가 움직일 줄 모르는 가족들을 위로하는 행위 이와 동시에 음악선율이 가세하여 비장미를 극대화시켜 놓는다.

 

오장군의 죽음, 유해 전달의 침통함, 관객들은 유족들과 그 아픔을 같이 나누고 싶어한다. 반젤레스 선율이 이 아픔을 고조시키는데에 기여한다. 그런데 정작 오열을 터트려야 할 가족들은 말이 없다. 아니 수천마디 입말을 속으로 삭인 채 침묵으로 일관한다. 수천의 절망, 수천의 아픔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침묵언어와 정지언어. 반젤레스의 선율은 침묵과 정지가 담고있는 상징적 의미망을 보강해주는데에 결정적 기여를 하고 있다.

 

7-3. '(핏줄의 흐름)의 이미지' 창조 방식

 

핏줄의 흐름, 이를 위해 몸부림치는 형상은 손부, 세조, 여종의 모습으로 구체화된다.

 

첫째 핏줄을 잇기 위해 몸부림치는 여종과 남종의 이미지, 이를 박병도는 어떻게 설계하였는가?

 

l) 여종은 자신의 갓난아기 '창지'가 주인네 순천 박씨 대를 잇기 위해 대신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울부짖는다. 남종은 아내의 저항을 막을 요량으로 그녀의 두 팔을 물지게에 묶어 둔다. 여종은 두 손으로 아들 창지를 안으려 하지만 속수무책이다. 그녀는 자신의 입으로 아기를 껴안아보려 하지만 실천하지 못한다.

 

2) 아들 창지를 찾아 해메다 결국 미쳐버린 여종의 이미지는 아기 모양의 작은 인형을 등에 업고 다니는 행동으로 구체화된다. 여종의 배우는 이 허깨비 인형과 대화를 나누거나 그 허깨비 인형을 실제 자신의 아기처럼 바라보며 젖을 먹이는 시늉까지 한다.

 

3) 젖을 먹이려 하지만 그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음을 알고, 그리고 인형이 자신의 아들 창지가 아님을 알고 여종은 절규를 한다. 이 때 남종의 반응을 유심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남종은 여종의 웃옷을 벗긴다. 여종 역의 배우가 절망의 오열을 터트릴 때, 그는 그녀의 뒤에서 그리고 치마를 걷어 올리고서 정사 씬을 만든다. 정사 씬은 사랑의 형식이다. 진정한 사랑이란 마음과 마음, 정신과 정신, 영혼과 영혼, 육체와 육체, 이 모든 게 상호 하나로 합일될 때 가능하다. 현 상태에서 억지로 이루어지는 정사 씬, 이는 올바른 사랑의 형식이 결코 아니다. 육체와 육체간의 만남이 이루어지지 만 결코 마음, 영혼, 정신간의 상호 합일의 이미지는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이런 비정상적인 억지 정사를 남종은 벌이려 하는가? 이는 남종이 아내를 더욱 사랑하기 때문이리라! 아내에게 이런 억지 정사를 벌여서 라도 제 2의 창지를 잉태케 할 의도이다. 비정상적인 억지 정사, 이런 역설의 사랑 행위, 남종 역시 절규의 언어를 내뱉는다. 오죽 했으면 이런 일을 벌여야 한단 말인가 ...

 

핏줄의 흐름을 잃었을 때의 절망, 고통, 상처를 표현하기 위해 연출자는 이런 기괴하고 절망적인 이미지를 창조해내고 있다.(원작 희곡에는 전혀 쓰여져 있지 않음)

 

둘째 핏줄의 흐름을 잇기 위해 몸부림치는 또 다른 형상으로 세조를 들 수 있다. 세조는 자신의 조카이자 핏줄인 단종을 살리려 하지만 신숙주의 반대에 부딪친다. 신숙주는 단종이 살아있는 한, 더 많은 조신들이 대역의 탈을 쓰고 죽어가야 하며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단종이 죽어야 함을 여러 차례 주장한다. 단종은 어명을 사칭한 왕방연에 의해 결국 죽임을 당한다. 세조는 단종의 죽음을 이미 알고 있는 사육신들의 혼령에 의해 시달리기 시작한다.

 

어린 단종을 살리고자 하는 세조의 몸부림이 연출자 박병도의 상상 체계에 의해 어떤 이미지로 표현되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몸부림이 극에 달한 세조는 이미 정상의 상태를 넘어서 있다. 이런 비정상의 미침 상태는 갓난아이 창지를 잃은 여종의 미친 언어와 상호 교차하여 나타난다. 세조 역을 맡은 장제혁에게선 이미 곤룡포를 입은 상감의 복장을 찾을 수 없다. 그는 속옷 차림이다. 그는 이불을 둘러쓰고 있다. 그의 음색은 왕의 품위나 위엄을 찾아 볼 수 없다. 그의 오른 손에 주걱이 쥐어져 있다. 그는 주걱으로 허공을 내리친다. 세조 역의 배우 장제혁은 헛것을 본 것처럼 불안정한 상태에서 움직이고 행동한다. 눈의 초점은 흐려져 있다. 그는 손으로 무언가를 잡으려하지만 잡으려는 주체가 무언지를 관객은 알 길이 없다. 동시에 그는 허공을 향해 무언가를 지껄인다. "요것이 무엇이냐?" "으헤헤헤... 으헤헤헤..." 이 때 미친 여종이 바로 그 배우 앞에서 죽은 아들 창지를 부르기 시작한다.

 

배우들은 미침 상태나 연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상대를 알아보지 못하는 제스춰를 취한다. 두 배우. 상대를 향해 헛소리를 지껄인다. 이 장면에서 두 배우의 언어나 행위가 상호 부딪치는 것처럼 보인다. 여종이 미친 세조의 발목을 붙잡으며 창지를 외쳐 부른다. 그러나 세조 역의 배우는 전혀 반응 연기를 하지 않는다. 그는 자연스레 발목을 빼면서 허공을 향해 손짓하고 웃어댄다. 그 역시 미쳐있는 상태인지라 헛깨비 즉 관객의 눈에 보이지 않는 환영을 향해 반응을 보일 뿐이다. 궁중에 있는 왕과 비천한 신분인 여종이 만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이런 반현실적 처방은 내면의식의 강조, 강렬한 주관을 표현하고픈 연출의 의지를 반영한다. 자신의 핏줄을 되찾고자 하는 세조와 여종의 몸부림은 미침이라는 동일 이미지로 표현됨으로써 이 작품은 강렬한 표현주의 연극성을 발휘하는데에 성공한다.

 

셋째 핏줄의 흐름을 잇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미지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의의 흐름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육신들의 몸부림과 교차한다. 이로써 무대 이미지는 단순 반복의 형태에서 벗어나 다양성의 이미지로 변용되어 나타난다.

 

7-4. 인형을 통해본 상징 이미지. 내면심리 이미지

 

이 작품에서 인형은 인물들의 또 다른 자아나 분신 내지 간절한 염원을 상징하는데에 기여한다.

 

이 연극에서 두 종류의 인형이 등장한다. 무대 좌측에 배우들 보다 훨씬 더 큰 대형 선비 인형이 세워져 있다. 평소 이 인형은 조명을 받지 않은 상태이기에 관객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장면 사이에 간헐적으로 조명을 받으며 비중있는 의미를 드러낸다.

 

첫째 이 대형 선비인형은 죽은 사육신을 상징한다. 사육신들이 반역의 죄를 뒤집어 쓰고 세조로부터 잔인한 고문을 당한다. 반 어둠의 조명빛 속에서 이들의 단말마적 절규와 저항이 이루어지고 그 저항의 절정 순간 소름끼치는 채찍 소리가 무대에 울려 퍼진다. 채찍 소리에 맞추어 사육신 역의 배우들, 일사불란하게 쓰러지는 동작을 취한다. 원작 대본에는 고문 장면이 인두질로 되어 있지만 인두질 동작이 시각적인 이미지에 지나치게 의존되어 있다. 이를 간파한 연출자 박병도는 상황의 급박성을 일깨워 줄 요량으로 어둠 속에서 강렬한 채찍소리로 인두질 상황을 변용시켜 놓고 있다.

 

쓰러짐의 절정은 고문의 절정이자 사육신들에겐 저항과 의를 지키고자하는 정신의 절정이라 할 수 있다. 뒤이어 무대 전체 조명이 아웃되고 좌측 앞에 위치한 커다란 선비 인형에 핀 조명이 투사된다. 동시에 선비 인형의 언어가 녹음된 소리로 들려나온다:"인두질 하였난데 저 소리를 들어보소. 상감마마 아니하고 수양대군 웬말인가!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낸 까마귀 흰빛을 세올세라 / 청강에 좋이 씻은 몸을 /더러일까 하노라"

 

여기서 선비 인형은 사육신을 상징할 수 있다. 죽은 사육신의 의도와 생각을 배우의 살아있는 음색과 몸짓 언어로 표현하기란 상당히 힘들다. 오히려 선비 인형 말이 없는 그의 모습. 움직일 줄 모르는 그의 이미지, 그렇지만 동시에 울려 퍼지는 녹음된 선비 음성, 이는 대단한 상징성을 내포한다. 즉 이는 몸은 죽어있지만 영혼과 정신이 살아있는 사육신의 다양한 이미지를 한 차원 더 깊이 성찰케 하는 데에 기여한다. 선비 인형은 사육신을 상징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좀 더 포괄적인 의미로 확대되기도 한다.

 

왕방연이 어명을 사칭하여 단종에게 사약을 내린다. 단종이 사약을 먹고 쓰러지자 왕방연은 "전하"하며 크게 울부짖는다. 왕방연 역시 수많은 조신들이 대역의 탈을 쓰고 죽어 가는 것을 막고자 했던 터이다. 만약 단종이 현재에 같이 계속 살아있다면 복위 음모가 계속될 것이고 자칫하다간 단종은 음모의 괴수로 처형될 것이고 수많은 조신들 역시 대역신의 탈을 쓰고 죽어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윽고 단종을 사약으로 죽게 한 후 왕방연은 신숙주를 만나러 한양을 향해 떠난다. 그러나 무대 지문 어디를 보아도 이런 구체적 지시 사항을 찾아볼 길 없다. 대본을 보면 단지 왕방연의 시조만이 쓰여져 있다 .천만리 먼 길에 / 고운 님 여의옵고 / 내 마음 둘데 없어 / 울어 밤길 녜놋다". "천만리 먼 길에 / 고은님 여의옵고"라는 시조구문은 왕방연이 영월을 떠나 한양으로 오고 있음을 은연중 알리고 있다. 이 시조를 통해 인물들이 처한 상황변환, 즉 시간 및 공간의 변화 과정이 자연스레 전달된다.

 

왕방연은 단종을 '고운 님'이라 표현하고 있다. 동시에 그는 단종이 사약으로 죽은 행위를 '여의옵고'로 표현하고 있다. "전하!"하고 울부짖으며 탄식하는 자신의 상황을 이 시조에선 "내 마음 둘데 없어 / 울어 밤길 녜놋다"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핀조명을 받는 대형 선비 인형만이 크게 클로즈업된다. 감정이 극에 달할 때 아픔의 감정은 오히려 고갈된다. 그 극점엔 오히려 무색, 무취, 무미의 상황이 뒤따르기도 한다. 무감정 스타일의 대형 선비 이미지,오히려 그 속에 무궁무진한 울부짖음의 감정이 숨겨져 있다. 오열의 감정을 짓누르고 초연한 듯한 이미지의 음색. 여기에 의와 충성을 기본 삶의 진리이자 도리로 알고 있는 이조 선비들의 세계를 관객은 간접적이 나마 조망해 볼 수 있다.

 

둘째 여종이 들고 다니는 작은 어린애 인형을 들 수 있다. 이 인형은 죽은 아들 '창지'를 그리워하는 여종의 간절한 염원을 상징한다. 조그만 어린애 인형을 여종은 살아있는 자신의 아기인양 등에 엎고 다닌다. 그리고 그 인형에게 인격적인 대우를 한다. 그에게 말을 부치고 심지어 옷고름을 풀고서 젖까지 먹이려 한다. 자신의 아들 '창지'가 주인댁 박팽년의 대를 잇기 위해 대신 죽어야 함은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을 동반한다. 아픔이 극에 달하는 절망 상황, 이는 급기야 미침 상태를 유발시킨다. 미침 상태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연출자는 어린애 인형을 설정한다. 아들 창지와의 만남이 이루어졌다고 좋아라하는 여종. 그러나 얼마 후 그 인형이 가짜 허깨비이자 자신의 친자식이 아님을 알고 또 다시 절규한다.

 

인형은 이처럼 인물들의 내적 심리변화, 딜레머. 간절한 소망 심지어 극단의 미침 상태를 상징적으로 일깨워주는 데에 기여한다.

 

8. 맺는말: 우리다운 정감세계를 수놓는 환타지 설계사 : 박병도

 

박병도 공연설계의 매력은 우리다운 정감 세계가 펼쳐질 때 그 틈새를 놓치지 않고 치열하게 실험하고 공략하려는 장인정신에 기인한다. 박병도의 연극은 기존의 작품 해석 지평을 활짝 열어 젖혀서 기존 예상치를 뛰어넘는 우리다운 정감의 맛과 떨림의 멋을 경험케 한다.

 

그가 연출한 <오장군의 발톱>(7회 전국연극제 대통령상 수상작) 공연은 고발과 비판을 겨냥한 변증법 연극의 틀에 우리다운 질감의 희극성, 삭여낼수록 감칠맛 나는 토속적 정감 에너지를 완벽하게 만들어내 문예회관 및 포항시민회관을 찾은 관객들을 매료시킨 바 있다.

 

주인공 오장군의 억울한 죽음, 유해전달, 오열 터트림 과정. 박병도는 교과서적 연결고리나 반응패턴을 소화하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의 의표를 찌르는 창의적 상징 기호를 설정한다. 오열의 절정, 이를 그는 침묵, 정지의 이미지로 클로즈업시켜 놓고 있다. 침묵과 정지 이미지는 가식과 허위를 상징하는 군인들의 박제된 움직임과 완벽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무겁고 장중한 반젤레스 음향이 오열, 아픔의 극점을 만들어 갈 때 그는 오열의 표현 주체를 인간으로부터 사물 즉 먹쇠로 전이, 확장시켜 놓는다. 일소인 먹쇠가 꽃분과 엄니를 다둑거리며 위로한다. 가족들은 기가 막혀 움직이지 않는데 먹쇠만이 인간다운 감정을 주체못하여 포효한다. 감정이입의 영역이 사람이 아닌 동물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에서 연민과 동정의 공간 영역은 무한대로 확대되기 시작한다.

 

서사극의 교훈성이나 그 건조함을 감동극으로 마무리시키는 박병도의 해법은 감동성과 교훈성이 상보적으로 한 덩어리가 될 수 있다는 실례를 만들어주어 우리다운 변증연극의 발전가능성을 예고하여 준다.

 

박병도 공연 설계의 강점은 철저한 사실주의 공연미학에 자족하지 않고 난해한 표현주의 연극성 창출 과정에서 강렬한 폭발력을 발휘한다는 데에 있다. 그가 연출한 <> 공연은 '핏줄의 흐름''의 흐름', 이 양 갈래에서 고통스러워하며 허우적거리는 이미지를 완벽하게 창출시켜 제 5회 전국연극제 공연장을 찾은 대전 관객들과 전국연극인들을 경악케 한 바 있다.

 

조카 단종과의 관계끈을 잃지 않기 위해 허우적거리는 왕, 이불을 둘러쓰고 주걱을 든 손으로 허공을 내리치며 헛소리하는 왕, 죽은 아들 창지를 찾아 해메다 절규하는 여종, 자신들의 군주로 삼아야 할 단종이 억울하게 비명횡사하였음을 알고 몸부림치는 사육신의 혼령들. 현실과 초현실 사이에서 교차하는 이런 몸부림과 움직임은 반젤리스의 선율을 타고 만들어가는 허느적거림의 이미지와 앙상블을 이루어 유미주의 연극의 진수를 일깨워준다.

 

한을 풀지 못해 허우적거리는 사육신, 살아있지만 혈육을 찾지 못해 미침 상태에 있는 여인, 이런 초현실주의적 표현영역이 빛. 소리. 언어, 신체기호에 대한 정밀한 설계를 통해 섬세하게 살아난다. 죽은자의 신체기호, 미친자의 반응연기, 혼미함과 미침 상황 속에서도 갈구의 이미지가 일관되게 우러나온다. 박병도는 이 장면설계를 통해 한국 고유의 표현주의 연극해법의 놀라운 한 전형을 만들어 냈다고 볼 수 있다.

 

박병도가 설계한 무대표현영역의 최대의 쾌거로 <사로잡힌 영혼>을 들 수 있다. 수백마리의 말들이 달리는 장면, 수십명의 포졸들이 나타나 잡아가는 장면, 수백명의 축하객 등장 상황, 0.5초 만에 이 세 상황이 전환되는 과정. 박병도의 탈놀이 설계를 통해 상징연극과 표현주의 연극의 해법이 한꺼번에 빛을 발한다.

 

불특정 다수, 익명의 다수, 다양한 이미지 변환을 위해 추상의 탈이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더 나아가 이에 걸맞는 집단신체언어설계가 탄력적으로 이루어진다. 탈을 쓴 자와 탈을 쓰지 않은 자, 다수와 개인의 대조 묘미. 동물과 인간의 만남과 반응연기의 묘미를 효과적으로 살려, 박병도는 무대의 시공간의 영역을 무한대로 확대시켜나가는데 성공을 거둔바 있다.

 

무대표현도구들이 갖는 상징성과 비유의 힘,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박병도의 설계정신은 대형선비꼭두, 어린애 놀이꼭두의 활용을 통해 표현주의 연극 스펙트럼의 아름다움을 빚어낸다. <>공연에서 대형선비꼭두와 시조(時調)와의 만남은 특정 인물의 미묘한 정감세계를 개인으로 국한시키지 않고 가장 우리다운 끈끈한 정서를 우주적 원시세계의 차원으로 확대시키는데 기여한 바 크다.

 

시공간의 제약에 허덕이는 연극장르에서 표현영역의 확대를 향한 그의 실험작업, 특히 우리다운 정감 틈새를 공략하기 위해 소리와 발림과 여백, 그 사이의 미학적 아우라를 창의적으로 만들어가기 위한 창무극 <춘향전>의 탐색작업, 무한한 상상력의 근원인 여백, 비유 이미지 창출을 위해 소리와 빛의 스펙트럼 사이를 예민하게 파고들어간 <><부자유친>, 특히 기괴성 모티브를 살리기 위한 집단 꼭두이미지 창조에 성공을 거둔 <부자유친>의 창의적 설계작업, 이는 유무형의 시청각 이미지 창출을 위해 밤샘을 밥 먹듯 하는 그의 예술가적 장인정신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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