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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객석誌] 열정으로 지펴낸 지역 오페라의 불꽃

음악전문잡지-[객석] 기사

 

열정으로 지펴낸 지역 오페라의 불꽃

 

   장일범 (음악 칼럼니스트)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에서 비제 오페라 카르멘이 공연됐다. 39회 한라문화제의 일환으로 제주오페라단 창단 기념공연이 105일부터 8일까지 나흘간 제주문예회관 무대에 오른 것이다.

 

그동안 제주도를 떠올릴 때마다 가장 아쉬웠던 건 밤에 즐길 수 있는 공연문화가 취약하다는 점이었다. 제주도가 진정 세계적인 관광지로 도약하려면 지금처럼 중심가에 한 집 건너 하나씩 있는 듯한 단란주점이 늘어나야 하는 것이 아니라, 관광객이나 현지인 누구나 밤에 공연장에 찾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극장 소프트가 제대로 갖춰져야 한다.

 

5년 전 유럽인들의 휴양 명소인 북아프리카 튀니지의 카르타주 국제 페스티벌을 취재하면서 낮에 지중해변에 기분 좋게 누워있던 관광객들을 밤에는 오페라로, 팝공연으로 끌어 모으는 튀니지인들의 지혜가 부러웠었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오페라단이 창단 기념공연으로 제주 문예회관 무대에 올린 오페라 카르멘은 제주 문화사에서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 공연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제주도 초연이었던 카르멘은 전막 오페라 공연으로는 세 번째 작품. 제주문예회관 대극장은 8백석의 객석을 갖춘 극장으로 대부분의 유럽지방 오페라극장의 객석 수보다 조금 많거나 비슷한 숫자이다. 결코 오페라를 하기에 작은 공간은 아니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돋보인 것은 연출(박병도 교수)이었다. 창작 뮤지컬 애랑이 보레 옵데강으로 제주도와 인연을 맺은 박병도 교수는 자신의 두 번째 오페라 연출 작품(첫번째 연출 작품은 '라 트라비아타-춘희')인 카르멘의 군중 장면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살아 움직이는 생동감 있는 장면을 연출하면서도 청중들의 시선을 주역진에 집중 시키는데 성공했다.

 

또 레치타티보를 연극적인 대사로 바꾸어 오페레타나 뮤지컬적인 연출을 택한 것도 이채로웠으며 에스카미요가 제주도 조랑말을 타고 등장한다든지 거리 장면에서 귤을 다량 이용하는 등 제주 특산물을 적극 활용한 것도 청중을 즐겁게 해주는 요소였다. 오페라가 진행될수록 출연진들이 귤을 까먹어 양이 대폭 줄어들기는 했지만...

 

제주 오페라단 단장 이춘기 교수(제주대)에 의해 3개월 동안 조련된 제주대학생 중심의 오케스트라는 음악적으로 부속한 점은 있었지만 열과 성을 다한 연주로 극을 전개해 나갔다.

 

초청된 주역진 중에서는 카르멘 역의 대명사 김학남이 풍부한 성량과 감정표현으로 열연했으며 같은 역의 김현주는 다채로운 목소리로 연기로 요염한 카르멘을 연기해냈다.

 

이외에도 늠름한 모습의 에스카미요 김재창, 돈 호세 역의 전주배가 이목을 집중시켰다. 상처(喪妻)한 슬픔을 딛고 재기, 국내 오페라무대에 첫선을 보인 테너 전주배는 설익었지만 진실된 연기와 호소력 있는 강질의 소리로 열혈 청년 돈 호세를 연기, 오페라 가수로서의 성공 가능성을 엿보게 했다.

 

음악적 토대가 미약한 제주도에서 이렇게 카르멘' 같은 그랜드 오페라를 열정적으로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실로 감동적인 일이었다. 공연이 끝난 뒤 돈 호세로 참가한 테너 박세원(서울대 교수)연습하면서 매일 매일이 감동의 연속이었다. 오페라 전 출연진이 너무나 열심히 오페라를 준비했다. 요즘 중앙무대에서는 열의 없이 오페라를 만드는 경우도 있는데 반성해야 될 점이 많다. 바로 이런 열의와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 오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제주에서 오페라를 보면서 필자의 뇌리에는 러시아의 도시 카잔의 샬리아핀 오페라 페스티벌이 떠올랐다. 카잔은 모스크바에서 7km 떨어져 있는 타타르스탄 공화국의 수도. 매년 2월이면 러시아 최고의 주역 가수들을 초청해서 그곳 출신의 전설적인 베이스 샬리아핀을 기념하는 오페라 페스티벌을 연다. 지역의 탄탄한 합창단과 오케스트라를 준비해 놓고 말이다.

 

제주도도 마찬가지다. 제주의 음악 인력만으로는 최고급 오페라를 만들 수 없다. 따라서 중앙 무대(서울) 그리고 중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서구의 예술가들도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 장기적인 제주 오페라 발전의 방향이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는 것 같다. 잠시 제주에 머무는 동안에도 제주의 음악인들이 서로 화합하지 못하는 가슴 아픈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이 음악 인력으로 오페라를 이만큼 만들어낸 것만 해도 정말 감천(感天)할 일인데도 말이다. 첫술에 포만감을 느낄 수는 없지 않을까?

 

이번 공연이 일회성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제주 음악인들이 힘을 모아서 제주 도립오페라단을 만드는 일도 적극 고려해보아야 할 것이다. 제주도를 오페라의 섬' (Opera Island)으로 만드는 것은 어떨까?

 

이번 공연에서 두 명의 외국인 관람객을 만났다. 딸아이의 손을 잡고 카르멘'을 구경하러 온 금발의 서양 엄마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오페라 카르멘이 공연된다는 소식에 아이의 손을 이끌고 구경 온 외국인 관객이었다.

 

이런 것이 소중한 시작이 아닐까? ‘섬들의 신' 제주도에 오페라의 신'이 첫발을 디딘 것 같다.

(객석 200011월호)

 

※ 오페라 [카르멘]은 박병도 교수의 연출로 [전라북도립오페라단(단장 김용진)]에 의해 2001년도 전주 삼성문화회관에서 또 다른 시각으로 다시 한번 올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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